천궁-II, 양산 착수
전투용 적합 판정을 마친 천궁-II의 양산에 착수함. 이후 최초 포대 물량 생산과 군 인도로 이어짐.
편집일 기준 · 한국 시간
전투용 적합 판정을 마친 천궁-II의 양산에 착수함. 이후 최초 포대 물량 생산과 군 인도로 이어짐.
천궁-II가 시험평가를 거쳐 전투용 적합 판정을 획득함. 탄도탄과 항공기 공격에 동시 대응하는 중거리·중고도 요격체계의 전력화 기반이 마련됨.
호크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천궁 기본형이 대한민국 공군에 배치되기 시작함. 항공기 요격 중심의 중거리 방공 임무를 담당함.
LIG넥스원이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이라크 국방부와 천궁-II 공급 계약을 체결함. 계약 규모는 약 3조7,135억 원으로, UAE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천궁-II가 중동의 세 번째 국가로 수출되는 계약이 됨. 계약 공시는 다음 날인 9월 20일 이루어짐.
LIG넥스원과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가 2023년 11월 체결한 천궁-II 10개 포대, 약 32억 달러 규모의 계약 사실이 한·사우디 국방장관 회담을 계기로 공개됨. UAE에 이은 천궁-II의 두 번째 대규모 해외 수출 사례에 해당함.
UAE가 천궁-II 도입을 결정하고 UAE TTI와 LIG넥스원·한화시스템·한화디펜스가 각각 공급 계약을 체결함. UAE가 대한민국 이외의 첫 천궁-II 운용국이 되는 계약으로, 천궁 계열의 첫 해외 수출 사례가 됨.
《비열한 거리》가 개봉 25주년을 맞아 극장에서 재개봉함.
독립 제작으로 완성된 《비열한 거리》의 배급을 워너 브라더스가 맡음.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등록한 뒤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함. 장례는 1960년 2월 25일 국민장으로 치러짐.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 지명대회 표결에서 조병옥이 세 표 차이로 승리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됨. 이후 대통령 후보 등록을 마쳤으나 발병해 미국으로 치료를 떠남.
사사오입 개헌 이후 반이승만 야권 세력이 결집해 민주당을 창당함. 민주국민당을 모체로 흥사단계와 자유당 탈당 의원 등 범야권 세력이 참여했으며, 조병옥은 최고위원으로 당 지도부에 참여함.
이승만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의 책임을 물어 내무·법무·국방부 장관에게 사임을 요구함. 당시 법무부장관 김준연의 증언에 따르면 조병옥은 김준연과 함께 즉석에서 사임 의사를 밝힘.
한국전쟁 발발 뒤 이승만 대통령이 조병옥을 내무부장관으로 임명함. 조병옥은 경찰과 지방행정을 관할하는 내무부를 지휘하게 됨.
철도경찰 350명과 제6·8관구 경찰관 100명 등 총 450명이 경무부 지령에 따라 제주로 출발함. 제주4·3평화재단은 같은 시기 조병옥 경무부장이 강경 진압 방침을 발표하고 응원경찰을 추가 파견했다고 정리함.
4월 3일부터 제주 각지에서 경찰관서 습격 등이 발생한 뒤 조병옥 경무부장이 경찰 당국이 파악한 사태와 피해 상황을 발표함. 제주에 약 480명의 경찰관이 배치되어 있으며 전남에서 응원경찰을 파견했다고 밝힘.
제주에서 돌아온 조병옥 경무부장이 3·1절 발포사건과 관공서 총파업에 관한 경찰 당국의 조사 결과를 발표함. 조병옥은 3월 18일까지 약 150명을 검거해 파업 수습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힘.
제주 3·1절 경찰 발포에 항의해 도내 166개 기관·단체가 참여한 민·관 총파업이 벌어진 가운데 조병옥 경무부장이 제주에 내려옴. 다음날 조병옥이 파업 주모자 검거 명령을 내렸고 전남·전북 응원경찰 222명이 제주에 도착함.
대구에서 노동자·학생·시민과 경찰의 충돌이 벌어진 뒤 미군정 경무부장 조병옥이 경찰 당국이 파악한 사건 경위와 응원경찰 파견 등 대응 상황을 발표함.
미군정이 조병옥을 경찰조직의 최고 책임자인 경무부장으로 발령함. 조병옥은 10월 26일 기자회견에서 경찰행정을 새롭게 하고 일제식 압박·위협 경찰을 청산하겠다는 방침을 밝힘.
1940년 8월 경성복심법원이 1심 무죄를 뒤집고 이광수에게 징역 5년, 김동원 등에게 징역 3~4년, 조병옥에게 징역 2년 6월 등 다수 회원에게 실형을 선고. 나머지 다수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음. 검거된 회원들의 전향이 본격화되던 시기의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