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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렬

편집일 기준 · 한국 시간

6건

동아일보가 장기 정간 끝에 1937년 6월 발행을 재개함. 복간 과정에서 사장 송진우와 주요 간부·사원이 물러나고 백관수가 새 사장으로 선임됨. 조선총독부가 요구한 핵심 간부 임명 사전 승인과 편집·검열 지침을 수용한 결과로, 일장기 말소사건이 개별 기사 제재를 넘어 한글 신문의 인사와 편집 방향을 통제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보여줌. 정간 해제와 복간의 정확한 날짜가 자료별로 6월 1일부터 3일까지 다르게 제시되어 월 단위로 기록함.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1936년 8월 27일 동아일보에 무기정간을 통보함. 동아일보는 이미 인쇄한 8월 28일자를 마지막으로 29일부터 발행을 중단함. 이길용·이상범 등 직접 관련자뿐 아니라 사회부장 현진건과 잡지 편집 관계자 등 다수가 연행되어 취조받음. 총독부가 복간 조건으로 사장 송진우를 비롯한 주요 간부와 관련 사원의 퇴직, 핵심 간부 임명에 대한 사전 승인, 편집 지침 수용 등을 요구하면서 언론사 인사와 지면에 대한 통제로 확대됨.

일장기 말소사건

1936년 8월 9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19초 2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 당시 넘기 어렵다고 여겨지던 2시간 30분의 벽을 깬 기록이며, 같은 경기에서 남승룡이 3위로 동메달 획득. 한국인이 올림픽에서 처음 따낸 금메달이지만 국적은 일본으로 기재되었고, 시상대에서 월계수 화분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린 모습이 널리 회자.

경기

한국 시간으로 8월 9일 밤 11시에 출발한 경기로, 한밤중임에도 신문사 앞에 군중이 모여 소식을 기다림. 초반을 앞서 가던 선두 주자를 중반 이후 따라잡고 선두로 나선 뒤 그대로 결승선 통과. 12만 명이 들어찬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2시간 29분 19초 2를 기록.

시상식과 파장

월계관을 쓰고 시상대에 섰으나 이름과 국적은 일본식 표기로 호명되었고, 부상으로 받은 참나무 화분을 가슴께로 들어 올려 일장기를 가린 자세로 고개를 숙임. 이 장면을 담은 사진이 조선 내 신문에 실리는 과정에서 일장기를 지운 편집이 이뤄지며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이어짐.

일장기 말소사건

조선중앙일보가 1936년 8월 13일자 지면에 손기정과 남승룡의 마라톤 시상식 사진을 게재하면서 두 선수의 유니폼에 있던 일장기를 삭제함. 체육부 기자 유해붕이 사진부원들과 협의해 표식을 지운 것으로 확인됨. 같은 날 동아일보에도 손기정의 일장기가 흐릿하게 나타난 사진이 실렸으나, 남승룡의 표식은 남아 있었고 고의적 수정 여부를 뒷받침하는 기록도 확인되지 않음. 사진 상태가 좋지 않아 검열 당국은 조선중앙일보의 삭제를 알아채지 못함.

동아일보가 1936년 8월 25일자 석간 제2판 2면에 손기정의 마라톤 시상식 사진을 게재하면서 유니폼 가슴의 일장기를 완전히 제거함. 석간 제1판에는 일장기가 그대로 보였으나 제2판에서는 삭제된 상태로 인쇄됨. 운동부장 이길용의 제안으로 화가 이상범이 원본 사진의 표식을 흐리게 했고, 장용서·신낙균·서영호 등 사회부와 사진부 관계자들이 삭제 작업에 관여함. 검열관이 이를 발견하면서 당일 지면의 발매·배포 금지와 관련자 연행으로 이어짐.

일장기 말소사건

조선총독부가 동아일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선중앙일보의 8월 13일자 보도를 확인하고 1936년 9월 1일부터 수사를 시작해 관계자 4명을 연행함. 조선중앙일보는 동아일보와 같은 정간 처분을 예상해 9월 4일자 석간을 마지막으로 5일부터 자진 휴간에 들어감. 이후 경영 내분과 재정 문제 속에서 복간하지 못하고 발행 허가 실효로 이어짐.

14건

기존 인력조정 프로그램과 별도로 전 세계 약 5만 개 직위를 추가 조정하는 계획을 감독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승인한 사건.

관리직을 포함한 추가 인력 조정과 함께 모델 포트폴리오·투자자산·그룹 의사결정 구조를 축소하는 계획. 유럽의 수요 대비 생산능력이 50만 대 이상 많다고 판단하고 엠덴·츠비카우·하노버·네카줄름 공장에 2031~2034년 이후 배정할 경쟁력 있는 차종을 현재 확보하기 어렵다고 명시하는 한편 대체 용도도 검토하기로 결정.

기존 약 5만 명 규모의 조정과 합치면 잠재적 인력감축 규모는 약 10만 명. 다만 추가 감축분의 시기와 지역·브랜드별 배분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노동자 대표와의 후속 협상이 필요한 상태.

차종·사양·생산능력·관리구조를 전면 재편하는 12개 과제와 2030년 목표상을 감독이사회에 제시한 사건.

차종 수를 최대 50%, 사양 복잡성을 최대 75% 축소하고 글로벌 생산체계를 연간 900만 대 수준에 맞추는 계획. 기술·개발·생산의 지역화, 관리단계 축소, 비핵심 투자자산 정리 등을 포함한 그룹 전반의 구조개편안.

중국 합작사들의 2025년 소매판매 점유율이 낮아져 BYD와 지리에 이어 3위를 기록한 사실이 집계된 사건.

폭스바겐 합작사들의 중국 승용차 소매판매 점유율이 2024년 12.2%에서 2025년 10.9%로 하락. 약 25년간 유지했던 중국 시장 선두 지위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 결과로, 이후 일부 월간 판매 반등에도 현지 전기차·소프트웨어 경쟁력 강화가 핵심 과제로 지속.

‘미래의 폭스바겐’ 협정을 통해 2030년까지 독일 사업장 인력과 생산능력을 장기간 축소하기로 한 합의.

독일 사업장 인력을 3만5천 명 이상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방식으로 줄이고 연간 생산능력을 73만4천 대 감축하기로 결정. 즉각적인 공장 폐쇄를 피하는 대신 자연감소·조기퇴직 등을 중심으로 비용과 설비를 조정하고 2030년까지 고용보장을 재설정한 절충안.

중국·유럽 판매 감소와 높은 생산비에 대응해 독일 공장 폐쇄 및 기존 고용보장 협정 종료 검토를 발표한 사건.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 내 완성차 공장 폐쇄 가능성을 공식 의제로 제시. 장기 고용보장 관행을 흔드는 방안이 공개되면서 경영진·노조·니더작센주 사이의 구조조정 갈등 본격화.

2030년까지 그룹을 소프트웨어 기반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하는 전략 발표.

전기차·배터리·차량 플랫폼·자율주행·모빌리티 서비스를 브랜드 간 공통 기술체계로 통합하고 전기차 시장 주도권 확보를 목표로 설정. 기존 자동차 제조 중심 사업모델을 기술 플랫폼과 서비스 수익으로 확장하는 두 번째 전환 단계.

미국에서 배출가스 시험 조작과 사법방해 등에 관한 중범죄 혐의를 인정하기로 합의한 사건.

형사 벌금 28억 달러와 환경·관세·금융 관련 민사 합의금 15억 달러 등 총 43억 달러 부담 수용. 독립 준법감시인 선임과 재발방지 조치도 포함된 디젤게이트의 주요 법적 결말.

디젤게이트 수습 과정에서 지속 가능한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하는 그룹 전략 발표.

전기차·디지털화·모빌리티 서비스와 파트너십을 핵심 과제로 설정. 향후 10년 동안 순수 전기차 30종 이상을 개발하는 전동화 공세와 조직문화·수익구조 재편 제시.

세 고급·슈퍼카 브랜드를 같은 해 그룹에 포함하며 럭셔리 부문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사건.

대중차 중심 기업에서 고급차와 초고성능차까지 아우르는 브랜드 연합으로 전환. 브랜드별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기술·생산·판매 자원을 공유하는 그룹 전략 강화.

체코 정부의 민영화 파트너 선정 뒤 스코다가 폭스바겐 그룹에 합류한 사건.

중앙·동유럽의 생산기반과 시장을 확보하고 서유럽 중심이던 다중 브랜드 전략을 구사회주의권으로 확장. 폭스바겐은 이후 단계적으로 지분을 늘려 2000년 스코다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

전륜구동·수랭식 전방 엔진을 채택한 골프 생산을 시작한 제품·경영 전환점.

후륜구동·공랭식 비틀과 다른 기술 체계를 적용한 신세대 소형차의 등장. 골프의 성공을 통해 노후화된 비틀 중심 제품군에서 현대적인 다차종 체제로 전환하고 당시 경영 위기 극복.

폭스바겐이 지분 50%를 보유한 중국 합작사 상하이 폭스바겐 설립.

1984년 체결한 합작 협정에 따라 출범한 중국 자동차산업 초기의 외국계 합작사업. 이후 현지 생산·유통망을 확장하며 폭스바겐이 약 25년간 중국 판매 선두를 유지하는 기반으로 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