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감독주간 첫 개최
1968년의 위기 이후 감독들이 주도한 독립 병행 행사 감독주간이 처음 열림. 피에르앙리 들로가 이끈 첫 행사는 ‘자유로운 영화’라는 방향 아래 폭넓은 작품을 소개함. 공식 선정과 별개의 통로가 생기면서 칸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의 범위가 확장됨.
1968년의 위기 이후 감독들이 주도한 독립 병행 행사 감독주간이 처음 열림. 피에르앙리 들로가 이끈 첫 행사는 ‘자유로운 영화’라는 방향 아래 폭넓은 작품을 소개함. 공식 선정과 별개의 통로가 생기면서 칸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의 범위가 확장됨.
마드리드 대회에서 스페인·영국·프랑스·네덜란드가 각각 18점을 얻어 공동 우승함. 당시에는 최상위 동점을 해소할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한 나라만을 우승자로 정할 수 없었음. 단순한 이변이 아니라, 경쟁 규모와 방송의 긴장감에 맞추어 심사 규칙을 정비해야 한다는 과제를 드러낸 사건이었음.
트랜싯 성능개선계획(TIP)이 시작됨. 방사선에 더 잘 견디고 지상에서 새 궤도 정보를 보내지 않아도 더 오래 정확하게 작동하는 위성을 목표로 삼음. 위성에 작용하는 미세한 외력을 보상하는 기술도 이 과정에서 시험됨.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게 된 가족의 변화. 병든 아버지와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훗날 《위험한 가계·1969》와 《엄마 걱정》 등을 읽을 때 함께 살펴보는 유년의 배경.
예수의 탄생을 소재로 한 《구주 성탄》 발표. 전통 다섯 바탕 밖의 이야기에 판소리의 음악과 서술 방식을 적용한 성서 판소리 작업의 한 갈래.
전년 《흥보가》에 이어 《춘향가》를 약 여덟 시간 동안 완창. 긴 서사를 한 무대에서 듣는 공연 방식을 확장한 연창.
WHO가 1955년 시작한 세계적 퇴치 시도의 목표 달성에 이르지 못하고 기존 노력을 일시 중단. 살충제 하나의 성능만으로 복잡한 질병 전파와 보건체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음을 드러낸 전환점. 지역 여건에 맞는 지속적 방제와 치료의 중요성 부각.
야코프 비에르크네스가 열대 태평양의 동서 수온 차이, 무역풍과 대기 순환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연구를 발표함. 해양의 엘니뇨와 대기의 남방진동을 하나의 결합 현상으로 이해하는 현대 ENSO 연구의 토대가 됨.
맥박이 지나치게 느린 서맥 환자에게 심장박동기 삽입술 시행. 병원 연혁 자료에서 국내 첫 도입으로 기록하는 사건으로, 체내 장치가 전기 자극을 보내 심장 리듬을 보조하는 치료의 시작.
유나이티드 아티스츠가 《호빗》과 《반지의 제왕》의 영화·무대·상품화 관련 권리를 취득. 톨킨 측의 도서 출판 권리와 분리된 계약을 바탕으로, 이후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 등 다양한 각색 사업이 전개될 제도적 토대의 형성.
도쿄총회가 국제우편의 수취국 처리·배달 비용을 보상하는 종착국배달비 제도를 채택함. 우편물을 보내는 양과 받는 양이 비슷하다는 기존 가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결정. 실제 제도는 1971년 7월부터 시행되어 발송국이 수취국의 초과 수취분에 대한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출발함.
호주 정부의 영화 제작기관 커먼웰스 필름 유닛(Commonwealth Film Unit)에 합류. 공공기관의 영화 제작 환경에서 경험을 쌓고 단편·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연출로 활동을 넓히기 시작한 시기.
1948년 무렵 중국의 정치적 대립을 배경으로 첩보원 연인의 탈출을 그린 임권택의 액션 드라마. 당의 규율 때문에 결혼하지 못하던 한파와 자청이 납치 사건을 겪고, 연인을 구하려는 정보 제공과 배신의 위험을 지나 상해를 벗어나는 이야기. 이순재·윤소라·김성옥 출연, 김용진 각본, 김명제 촬영, 황문평 음악의 제일영화사 제작 작품.
삼국시대의 암살 임무와 배신, 검객들의 대결을 다룬 임권택의 무협영화. 신라로 파견된 고풍이 임무를 버리고 권세를 택하자 뒤이어 파견된 주용이 독침의 위기를 이겨내고 그와 맞서는 이야기. 안길원·이훈·김청자·오경아 출연. 한국영상자료원이 《비검》·《요검》과 함께 검객 3부작으로 소개한 작품으로, 일본 검술영화와 홍콩 무협영화의 영향을 보여주는 연출.
인도에서 시타르를 배우려는 영국 팝스타와 그의 스승을 통해 서구인의 문화적 동경과 실제 만남의 충돌을 그린 영화. 아이보리와 자브발라의 공동 각본으로 음악 수련과 영적 탐색을 풍자한 머천트·아이보리의 세 번째 장편.
1952년 체포 이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1969년 말 출소한 리두균. 연합뉴스가 1975년 보안감호 처분에 앞선 경과로 기록한 석방.
조지 루카스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영화 제작사 아메리칸 조이트로프를 설립. 젊은 영화인들의 독립적인 제작 활동과 새로운 영화 기술을 지원하는 기반 마련.
모리사키 가즈에가 지쿠호·기타큐슈의 노동자와 청년들이 결성한 ‘오키나와를 생각하는 모임’에서 활동. 오키나와의 투쟁을 생활지역의 노동 문제와 연결하여 논의하고, 서로 다른 지역 사람들의 경험을 나누려 한 연대 활동.
대종상 독립 시상식을 중단하고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영화 부문에 통합함. 1969년에는 수상자가 없었고 1970년에는 최금동이 시나리오상을 받은 뒤 통합 운영을 종료함.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함. 이후 군 복무와 베트남전 참전을 거쳐 1974년 법주사에서 사미계를 받고 본격적인 승려 생활을 이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