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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전

X-1 3호기가 B-50에 매달린 시험을 마치고 착륙한 뒤 추진제 배출 준비 중 폭발과 화재가 발생함. 조종사 조지프 캐넌은 탈출했으나 심한 화상을 입었고, X-1 3호기와 B-50은 소실됐음.

터보펌프 방식으로 더 높은 성능을 기대했던 3호기는 본격적인 동력시험 성과를 남기지 못함. 이 손실은 X-1 개발이 성공 기록만이 아니라 추진제 취급과 실험비행의 큰 위험을 동반했음을 보여 줌.

벨 X-1

X-1 2호기가 원래 형상으로 54번째이자 마지막 비행을 수행함. 연료계통을 가압하는 고압 질소 용기의 금속 피로가 우려되어 기존 상태로 비행을 계속하기 어려워졌음.

NACA는 기체를 폐기하는 대신 얇은 날개와 터보펌프 연료계통 등을 갖춘 X-1E로 개조하여 새로운 연구에 활용하는 방향을 택함.

벨 X-1

도쿄에서 한일 간 예비회담이 시작된 사건. 강화조약에 직접 서명하지 못한 한국과 주권 회복을 앞둔 일본이 기본관계, 재일한국인의 지위, 재산·청구권 등 남은 문제를 양자 교섭으로 다루기 시작한 단계. 1965년 국교정상화까지 이어지는 장기 협상의 출발점으로, 강화조약의 일반적 틀만으로 식민지 지배 이후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건.

1951년 10월 3일 뉴욕 자이언츠의 바비 톰슨이 브루클린 다저스를 상대로 9회말 끝내기 3점 홈런을 쳐 내셔널리그 우승을 결정함.

내셔널리그 우승 결정 3차전에서 자이언츠는 9회말까지 1대4로 뒤지고 있었으나 추격에 성공했고, 톰슨이 랠프 브랑카를 상대로 역전 끝내기 홈런을 기록함. ‘Shot Heard ’Round the World’로 불린 이 장면은 야구뿐 아니라 라디오 중계와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적 순간으로 남음.

강화조약 서명 당일 미국과 일본이 별도의 안전보장조약을 체결한 사건. 점령이 끝난 뒤에도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는 안보 관계의 기반 마련. 평화 회복과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 유지가 함께 추진된 사실을 보여주며, 강화조약과 미일 안보조약이 서로 다른 문서임을 구별할 필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일본과 48개 연합국이 대일평화조약에 서명한 사건으로, 일본을 포함하면 총 49개 서명국. 참석국 가운데 소련·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는 서명하지 않은 결과. 일본의 주권 회복과 전쟁상태 종결, 영토 포기, 재산·청구권 처리의 기본 틀을 정했으나 실제 효력은 비준 절차를 거친 1952년 4월 28일부터 발생.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일본을 포함한 52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대일 강화회의가 개막한 사건. 미국·영국이 사전에 조정한 문안을 중심으로 서명을 추진했으며, 소련의 중국 대표 참가 및 조약 수정 요구를 둘러싼 대립의 표면화. 중국의 두 정부와 한국이 정식 서명 당사자로 참여하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되어 전승국 전체와 피해 지역 모두를 포괄한 강화에는 이르지 못한 회의.

미국이 러스크 서한에서 독도의 추가 명시와 일본의 권리 포기 시점 소급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건. 독도에 관한 서한의 판단은 당시 미국의 외교적 견해로서, 조약 본문이나 모든 연합국의 합의와 구별할 자료. 이튿날에는 일본이 미군정의 일본 재산 처분 효력을 인정하는 조항과 한국에 제4조의 이익을 부여하는 문구를 최종안에 넣겠다고 통보하여 한국 요구의 일부 반영.

미국이 관계국에 샌프란시스코 회의 초청장과 7월 20일자 조약 초안을 전달한 사건. 미국과 영국이 공동으로 조약 문안을 추진하되 회의 초청은 미국 단독 명의로 발송한 절차. 각국의 의견을 받은 뒤 최종 문안을 내놓고 9월 서명회의를 개최하는 일정의 구체화.

양유찬 주미대사가 한국 정부의 조약 수정 요구를 미국에 전달한 사건. 한국 독립 관련 문구에 독도를 포함하고 일본의 권리 포기 시점을 소급하며, 미군정의 일본 재산 처분 효력을 보장하고 어업 협정 전까지 맥아더라인을 유지해 달라는 요청. 한국이 서명국에서는 제외됐어도 영토·재산·어업의 후속 문제에 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한 협상 기록.

덜레스가 양유찬 주미대사에게 최신 조약안을 전달하며 한국은 서명국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한 사건. 양 대사는 임시정부의 대일 선전포고와 한국인의 항일전 참여를 들어 반박했으나 미국은 전시 정부 승인과 참가 자격 문제를 근거로 기존 방침 유지. 한국의 직접 서명 대신 조약 문구 수정과 별도 권익 확보에 외교력이 집중되는 계기.

미국과 영국이 런던 협의를 거쳐 수정 공동 조약안을 마련한 단계. 중국 대표권에 대한 입장 차이 속에서 어느 중국 정부와 관계를 맺을지는 주권을 회복한 일본의 후속 선택으로 남기는 방향의 정리. 대만과 펑후에 대한 일본의 권리 포기는 규정하되 귀속 상대를 명시하지 않는 방식으로, 강화 성립을 위해 일부 핵심 문제를 뒤로 미룬 타협.

한국전쟁 중 전선 이동과 철도 시설 피해가 이어지면서 경의선의 남북 연결 운행이 다시 끊어짐. 남측의 운행 구간은 서울~문산을 중심으로 축소되었고, 전쟁 뒤에도 군사분계선을 넘는 열차 운행은 회복되지 못함.

1945년에는 개성이 남측 구간의 종착역이었지만, 전쟁과 정전 체제는 철도의 경계를 다시 바꾸었음. 이 때문에 해방 직후의 38선 단절과 전쟁 이후의 휴전선 단절을 같은 사건으로 보아서는 안 됨.

미국 텍사스주 마셜에서 태어남. 훗날 사회신경과학을 창시하고 외로움 연구를 이끄는 심리학자로 성장하게 될 인물의 출생. 66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심리학과 신경과학을 잇는 연구를 이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