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강기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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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코믹 공장 앞 경찰 발포에 항의하는 노동자 집회가 헤이마켓 인근 데스플레인스가에서 개최.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되던 집회 말미에 경찰이 해산을 명령하자 신원 미상의 인물이 경찰 대열에 폭탄을 투척했고, 뒤이어 총격과 혼란이 발생.
경찰관들과 시민들이 사망·부상했으나 폭탄 투척자의 신원과 시민 측 정확한 사망자 수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 사건은 노동운동가 체포와 논쟁적 재판으로 확대.
시카고 매코믹 수확기 공장 앞의 파업 노동자들과 경찰이 충돌하고 경찰 발포로 노동자들이 사망. 다음 날 헤이마켓 항의 집회를 촉발한 사건으로, 사망자 수는 자료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기록.
조직노동직능연맹(FOTLU)이 제시한 목표일에 맞춰 미국 여러 도시에서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파업과 시위가 전개. 시카고는 숙련·비숙련 노동자와 노동조합·개혁가·급진 활동가들이 함께 참여한 운동의 중심지. 이후 매코믹 공장 충돌과 헤이마켓 집회로 이어진 배경.
오시마 히로시 출생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 외교관 오시마 히로시. (~1975년)
에드워드 톨먼 출생
미국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톨먼. (~1959년)
브와디스와프 타타르키에비치 출생
폴란드의 철학자 브와디스와프 타타르키에비치.(~1980년)
제중원 의학교의 의학교육 시작
제중원에서 선발된 학생 16명을 대상으로 서양의학 교육 시작. 진료와 의료인 양성을 함께 수행하는 기반 형성.
파스퇴르의 예방접종 성과 보고와 연구소 설립 운동
파스퇴르가 광견병 예방접종을 받은 수백 명의 경과를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 보고한 사건. 접종을 원하는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찾아오면서 지속적인 진료와 연구를 위한 전담 기관의 필요성이 부각된 상황. 뒤이어 연구소 설립 계획과 국제 모금으로 이어진 예방의학 제도화 과정.
한성주보가 신문 발행 사업 계승
한성순보가 중단된 뒤 재건된 박문국에서 《한성주보》를 창간하여 정부의 신문 간행 사업을 계승. 열흘 간격의 순보에서 주간 발행으로 전환하고, 순한문 위주의 지면에 국한문 혼용과 한글 기사를 함께 수록. 상공업 종사자의 구독과 광고 참여도 장려하여 독자층 확대를 시도. 이후 재정난과 신문대금 미납 등이 겹치면서 1888년 7월 발행 종료.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성당에서 첫 미사 거행
지하성당 성 요셉 경당에서 첫 미사를 거행함. 건설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예배 장소로 사용되기 시작한 단계.
고종과 왕비의 주된 생활공간으로 자리잡음
고종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돌아온 뒤 건청궁이 왕과 왕비의 주요 거처가 됨. 화재로 소실된 강녕전·교태전 등 침전의 복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생활과 집무의 중심 역할을 맡음.
지석영, 『우두신설』 저술
지석영이 종두 지식과 시술 경험을 바탕으로 『우두신설』을 저술함. 상·하 2권 1책으로, 제너의 우두종법 발견과 종두법 시행, 한역 종두서, 우두 치료법, 두묘 제조·보존법, 종우 사양법과 채장법 등을 정리한 저술. 조선에서 간행된 최초의 종두서이자 우두법의 지식과 기술을 체계화한 문헌.
1885년 11월 7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크레이겔러키에서 캐나다 태평양 철도의 마지막 철도 못을 박는 행사가 열려 대륙횡단철도의 선로 연결이 완성됨. 철도회사 이사 도널드 A. 스미스가 마지막 못을 박았으며, 몬트리올에서 태평양 연안을 연결하는 철도망이 구축됨. 이는 연방의 서부 확장과 교역·인구 이동을 촉진했으나, 철도 건설에 동원된 다수의 중국계 이주노동자가 차별적 처우와 위험한 노동 조건에 노출됐다는 역사도 함께 남김. 정기적인 대륙횡단 여객열차 운행은 1886년에 시작됨.
파스퇴르 연구진의 조제프 마이스터 광견병 노출 후 예방접종
광견병이 의심되는 개에게 여러 차례 물린 아홉 살 조제프 마이스터에게 예방접종을 시작한 사건. 의사 자크조제프 그랑셰가 파스퇴르 연구진의 백신을 투여했으며, 열흘에 걸친 접종 뒤 아이가 발병하지 않은 결과. 이미 증상이 나타난 광견병을 치료한 사례가 아니라, 노출과 발병 사이의 시간을 이용한 예방의 가능성을 보여 준 전환점.
이풍한 출생
일제강점기의 조선귀족 이풍한. (~1950년)
빅토르 위고 사망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 (1802년~)
광혜원을 제중원으로 개칭
광혜원의 이름을 제중원으로 변경. 1904년 세브란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전의 병원 명칭.
헤르만 호트 출생
독일의 군인 헤르만 호트. (~1971년)
조선 정부와 선교의사 알렌이 참여한 광혜원 개원. 오늘날 세브란스병원이 창립의 기점으로 삼는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