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4년 9월 라이프치히 가을 도서전에 맞춰 바이간트 출판사가 괴테의 서간체 소설 초판을 익명으로 펴냄. 같은 해 《괴츠 폰 베를리힝겐》으로 독일에서 이름을 알린 괴테는 이 작품의 큰 성공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음. 작품은 초기 유럽 베스트셀러이자 슈투름 운트 드랑을 대표하는 소설로 자리매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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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대륙회의 개회
영국 의회의 강압법(Coercive Acts)에 대응하기 위해 북아메리카 12개 식민지의 대표들이 필라델피아 카펜터스 홀에 모여 제1차 대륙회의를 개회했다. 회의는 1774년 10월 26일까지 이어졌으며, 식민지 공동 대응과 영국 상품 불매·비수입 등을 포함한 대륙협회(Continental Association) 채택으로 이어졌다. 9월 5일은 회의가 시작된 날이며, 통상 단절 관련 결의 자체는 이후 회의 과정에서 채택되었다.
프랑스의 국왕 루이 15세. (1710년~)
장바티스트 비오 출생
프랑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장바티스트 비오. (~1862년)
영조, 개천 양안 석축 정비
영조가 앞선 준설 때 충분히 시행하지 못한 양안 석축 공사를 추진함. 군영별로 구간을 나누어 제방을 보강하고 수로를 정리했으며, 버드나무를 심어 유실을 막고자 했음.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공사관 서기 카를 빌헬름 예루잘렘은 1772년 10월 29일 밤 케스트너에게 빌린 권총으로 자신을 쏘았고 이튿날인 10월 30일 사망함. 케스트너가 괴테에게 보낸 상세한 보고는 훗날 베르테르의 최후를 구성하는 핵심 자료가 됨.
데이비드 리카도 출생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 (~1823년)
이현상 (1770년) 출생
조선의 문신, 시인, 외교관, 역사가 이현상. (~1822년)
로버트 젱킨슨 출생
영국의 정치인 로버트 젱킨슨. (~1828년)
영국의 정치인·외교관 캐슬레이 자작 로버트 스튜어트. (~1822년)
바르텔레미 카트린 주베르 출생
프랑스의 장군 바르텔레미 카트린 주베르. (~1799년)
《용비어천가》, 영조 때 목판을 보수해 재간행
영조 41년에 《용비어천가》를 다시 간행함. 1659년 판각한 목판 가운데 훼손된 판을 새로 보충하여 인쇄한 보판본으로, 건륭본이라고도 부름. 기존 목판을 바탕으로 책을 다시 찍어 낸 세 번째 중간본.
조지 3세가 7년전쟁 이후 영국이 확보한 북아메리카 영토의 행정 체계를 정비하고 원주민 영토의 식민 정착과 토지 취득 절차를 규정하는 왕실 포고령을 발표함. 이 포고령은 이후 캐나다에서 왕실과 퍼스트 네이션 사이의 조약 관계와 원주민 권리 논의의 중요한 역사적·법적 기반이 됨.
아이작 윌버 출생
미국의 정치인 아이작 윌버. (~1837년)
영조대 광통교 증축
영조대 개천 준설과 정비가 이어지던 가운데 마들 일대에서 채취한 돌로 광통교를 증축한 사업. 도성의 배수로를 관리하면서 주요 통행시설도 손본 사례이며, 광통교가 한 번 건립된 형태로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도시의 필요에 따라 보수·확장된 시설이었음을 보여주는 변화. 영조가 광통교에서 준천 작업을 살핀 기록도 전하는 시기.
마리 아렐 출생
마리 아렐. (~1844년)
영조, 개천 대규모 준설 실시
도성 인구 증가와 주변 산지의 토사 유입으로 하천이 메워지자 영조가 시행한 대규모 준천. 음력 2월 18일부터 4월 15일까지 57일 동안 본류와 지류의 토사를 걷어내고 다리와 물길을 정비한 사업. 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포함한 여러 계층의 주민이 참여했으며, 공사 경과와 관리 방침을 《준천사실》에 남긴 과정.
광통교 교각에 새긴 ‘경진지평’은 이때의 준설을 기념하고 후대 하천 관리의 기준을 제시한 표시. 교통시설인 다리가 물길의 깊이와 토사 축적을 살피는 도시 치수의 기준점으로도 기능했음을 보여주는 흔적.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이 한문 단편소설 「허생전」을 창작한 것으로 추정됨. 정확한 집필 연대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1780년 열하행 이전 또는 이후에 쓰여 1793년 무렵 『열하일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현재 전하는 형태로 수록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됨.
메테 마리 아스트루프 출생
덴마크의 연극 배우 메테 마리 아스트루프. (~1834년)
퀘벡 시, 영국군에 항복
아브라함 평원 전투 닷새 뒤 퀘벡 시가 영국군에 항복함. 프랑스군은 이후에도 저항을 이어갔지만, 이 사건은 7년 전쟁 북미 전선에서 누벨프랑스의 지배 질서가 무너지는 핵심 전환점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