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폰 린네 출생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 (~1778년)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 (~1778년)
영국의 소설가 헨리 필딩. (~1754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레오폴트 1세. (1640년~)
1704년 2월 29일 앤 여왕 전쟁 중 프랑스군과 여러 원주민 동맹 세력이 영국령 매사추세츠의 디어필드 정착지를 기습한 사건. 주민 약 50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포로로 잡혀 겨울철 캐나다 방면으로 이동해야 했으며 정착지 일부가 파괴됨.
북아메리카에서 영국·프랑스 식민세력의 경쟁과 원주민 동맹·전쟁이 복잡하게 얽힌 국경 분쟁의 사례. 당시 포로 경험과 원주민의 입장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는 사건.
프랑스의 작가 샤를 페로. (1628년~)
앤 여왕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여왕으로서 즉위 선포. 장소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집례는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테니슨 (Thomas Tenison)
코네티컷 식민지 총회가 ‘컬리지에이트 스쿨을 세울 자유를 위한 법’을 채택해 고등교육기관 설립을 승인함. 이 학교는 이후 뉴헤이븐으로 이전하고 1718년 예일 칼리지로 개칭되며 오늘날 예일 대학교로 발전함.
프랑스의 작가 장 라신. (1639년~)
프랑스의 소설가 아베 프레보. (~1763년)
공적인 금식과 기도의 날에 새뮤얼 시월이 회중 앞에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함. 재판의 권위가 무너진 뒤 판사 개인이 잘못을 돌아본 사례였으나, 사과만으로 피해자의 법적 지위가 복구된 것은 아니었음.
프랑스의 경제학자 프랑수아 케네. (~1774년)
남은 수감자들이 석방되면서 대규모 재판이 마무리됨.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가족의 죽음과 구금 비용, 평판의 손상이라는 문제가 남았으며, 석방과 명예회복은 서로 다른 과정이었음.
프랑스의 작가 라파예트 부인. (1634년~)
새 상급법원이 세일럼에서 처음 개정함.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유령 증거를 배척했으며, 주 대법원 연혁에 따르면 심리한 26명 가운데 23명이 무죄를 받았고 나머지 3명도 뒤에 총독의 사면을 받았음.
총독 윌리엄 핍스가 오이어 앤드 터미너 법정을 해산함. 다만 법정의 폐지가 곧 모든 피고인의 석방이나 마녀 범죄 개념의 폐지를 뜻하지는 않았으며, 남은 사건들은 새 법원에서 다루게 되었음.
마사 코리·메리 이스티 등 8명이 교수형에 처해짐. 이로써 네 차례의 교수형으로 희생된 사람은 모두 19명이 되었으며, 이날이 세일럼 마녀재판에서 마지막으로 교수형이 집행된 날이었음. 이후 특별법정 해산과 남은 사건의 재심리가 이어졌음.
자일스 코리가 유무죄 답변을 거부하자 몸 위에 무거운 돌을 올리는 강제 절차가 시행되었고, 끝내 사망함. 유죄판결 뒤 교수형을 받은 사례와 구분해야 하며, 재판 절차 자체가 치명적인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드러냄.
목사 조지 버로스, 존 프록터, 조지 제이컵스, 존 윌러드, 마사 캐리어가 교수형에 처해짐.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도 마녀 혐의의 희생자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집행이었음.
리베카 너스·새라 굿·엘리자베스 하우·수재나 마틴·새라 와일즈가 교수형에 처해짐. 고발 대상은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사람들에 한정되지 않았으며, 공동체 안에서 존중받던 사람도 보호받지 못했음.
조선의 소설가 김만중. (163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