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종기, 숭례문 사전 답사, 도구 구입
숭례문 사전 답사, 시너와 사다리 구입
2008년 2월 10일 저녁, 도시계획도로로 수용된 자신의 집 부지의 보상금이 적은 것에 대한 불만을 가진 인물이 서울 국보 1호 숭례문에 방화로 화재 발생. 많은 소방관들이 진화에 나섰으나 불길이 쉽게 잡히지 않았고, 5시간 만인 11일 새벽, 2층 누각 붕괴, 1층 소실. 60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문화재가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자 온 국민이 충격과 허망함에 빠짐. 범인은 23시간 만에 체포. 이후 2013년 5월, 5년여의 복원 작업을 거쳐 숭례문 재건.
참고로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이명박 대통령 취임 5일 전)이었고, 당시 서울시장은 오세훈, 중구청장은 정동일, 문화재청장은 유홍준.
경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후 4시경 전처의 집 나섬. 8시 35분경 숭례문 인근 도착. 10분 후 숭례문 서쪽 석축 비탈 타고 1층 누각 앞으로 올라감. 접이식 알루미늄 사다리로 문을 넘어 1층 누각으로 진입. 1.5L 패트병 1병에 담긴 시너를 바닥에 뿌리고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임. 나머지 2개 패트병에 담긴 시너는 옆에 놓아둠. 불이 붙은 걸 확인 후 도구를 버리고 되돌아 나감.
경찰 조사 결과 다른 곳은 경비가 잘 되어 있고 인명 피해가 클 것 같아서 숭례문 선택했다고 진술.
참고로 이 당시 창경궁 방화로 집행유예 기간이었음.
오후 8시 50분, 서울 중부소방서에 숭례문 2층에서 연기가 난다고 신고 들어옴. 소방방재청은 소방차 32대, 소방관 128명을 현장에 투입.
화재 4시간 만에 지붕 뒷면이 붕괴되기 시작, 2층 붕괴. 5시간이 지나서는 누각 90% 소실, 1층 누각도 심각하게 파손.
43세 이모씨가 연합뉴스와 인터뷰.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쇼핑백을 들고 남대문에 올라갔다 내려온 뒤 연기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고 했으며 경찰에게 그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얘기해줬으나 쫓아가지 않는 것을 보고 답답해 내가 직접 차를 몰고 따라가 봤으나 결국 놓치고 말았다고 답변.
49세 이모씨가 전날 8시 40분에서 5분 사이 숭례문 옆 횡단보도에서 방화범으로 보이는 5대 중반의 남성을 태웠고 이 남성의 몸에서 술 냄새와 함께 특이한 나무 냄새가 났으며 손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
경찰은 방화 전과자 중심으로 3명을 유력 용의자로 지목, 2명이 현재 복역 중인 걸 파악 후 채종기 추적. 오후 4시 50분경 하점면 전처의 집에서 약 봉투 발견하고 추궁. 근처에서 잠복근무를 하다가 7시 40분경 마을회관에서 체포. 범행 발생 23시간 만. 8시 15분경 범행 사실 털어놓음. 서울 남대문경찰서로 이송.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숭례문 방화 소실에 따른 관리 책임을 지고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힘. 화재 당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심사를 받게 될 ‘남해안 공룡발자국’과 ‘조선시대 왕릉’의 원만한 통과를 위해 설연휴 기간을 이용해 출장을 갔던 중이라고 밝힘.
현장 검증 중 여러 발언을 함. "기분이 안 좋다. 순간적인 감정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다. 나 하나 때문에 없어져버렸으니", "그래도 인명피해는 없었다.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 "임금이 국민을 버리는데... 약자를 배려하는 게 대통령 아니냐. 진정을 3번이나 해도 안 됐다", "문화재를 훼손해 국민들에게 죄송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이경춘 부장판사)는 숭례문에 불을 질러 전소시킨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기소된 채종기에게 징역 10년 선고. (서울중앙지방법원 2008고합212) (검찰은 12년 구형)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고의영 부장판사)는 국보 1호 숭례문을 전소시킨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구속기소된 채종기에게 1심과 같이 징역 10년 선고. (서울고등법원 2008노1226)
대법원 형사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채종기에 대한 상고심(2008도7510)에서 징역10년을 선고한 원심 확정.
문화재 방재의 날은 숭례문 화재를 문화재 사랑의 날로 승화시키기 위해 제정한 것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대비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음.
2008년 방화 사건 후 5년 3개월간의 복구 작업을 끝내고, 일반에 개방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