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월 14일 16건

여러 해의 같은 날을 한곳에서.
1697 — 2026

올해의 이날 →

현재 16건 표시

새벽 1시,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 (위원장 윤민우)가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 결정문에서 "피조사인(한동훈) 가족이 행한 것으로 인정되는 조직적 게시글 활동은 그 내용과 활동 경향성으로 볼 때 당헌·당규의 위반이 분명히 인정된다." 라고 명시.

한동훈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라고 게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당일 기자들에게 "이미 윤리위원회 결정이 나온 마당에 그 결정을 곧바로 뒤집고 어떤 다른 해결을 모색하는 것은 우선은 따로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고 인터뷰.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류지미 판사 심리로 열린 설탕 담합 사건 공판(2025고단5821)에서 피고인 측은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한다고 함. 그러나 일부 피고인이 사실관계를 다투겠다는 의사를 전하면서 공판 절차는 진행. 재판부는 2월 12일 CJ제일제당 공판 진행, 3월 26일 삼양사 공판 진행한다고 함.

히가시노 게이고가 《한여름의 방정식》(真夏の方程式)을 문예춘추의 주간지 《주간문춘》에 연재. 제1회는 2010년 1월 14일호(52권 2호) 90–94쪽, 최종회는 같은 해 11월 25일호(52권 45호) 80–84쪽에 수록.

이듬해 단행본 출간에 앞서 독자와 만난 최초 발표 단계. 날짜는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의 기사 서지에 기재된 잡지 호수 기준이며, 각 호의 실제 서점 발매일과는 구별되는 기록.

ESA의 하위헌스 탐사정이 타이탄의 짙은 대기 속을 낙하산으로 하강하여 표면 착륙에 성공. 하강 중 대기와 지형을 관측하고, 지표에서 촬영한 얼음 자갈 등의 영상과 측정자료를 카시니 궤도선을 거쳐 지구로 전송한 탐사.

외태양계 천체에 성공적으로 착륙한 최초의 탐사정으로, 궤도 관측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타이탄의 대기·표면 환경을 직접 조사한 성과. 카시니–하위헌스 전체 임무 안에서 수행된 착륙이며 이후 카시니 궤도선의 토성계 탐사는 계속된 구성.

토머스 카터 감독의 《코치 카터》 미국 개봉. 실존 고교 농구 코치 켄 카터가 학업 기준을 지키지 않은 선수들의 체육관 출입을 막은 사건을 바탕으로, 운동선수의 미래와 교육을 다룬 스포츠 드라마. 사무엘 L. 잭슨이 승률보다 학생의 학업과 책임을 앞세우는 켄 카터 역으로 출연.

배리 레빈슨이 감독과 제작을 맡은 스릴러의 한국 개봉. 컴퓨터 회사 직원 톰 샌더스와 과거 연인이자 새 상사인 메러디스 존슨 사이의 성희롱 공방과 기업 내 권력관계를 다룬 작품. 마이클 크라이튼의 동명 소설을 폴 아타나시오가 각색하고, 마이클 더글라스가 톰, 데미 무어가 메러디스 역으로 출연.

한국이 오존층 보호를 위한 특정물질의 제조규제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국제 규제에 참여할 국내 기반을 마련한 조치. 제조업 허가, 물질별 제조·수입 관리와 사용 합리화 등을 통해 생산·소비를 통제할 체계의 준비. 1992년 1월 1일부터 법령을 시행한 뒤 비엔나 협약과 몬트리올 의정서 가입으로 연결한 경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경찰들이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을 불법연행한 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선배 박종운의 행방을 추궁하며 물고문을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함. 경찰은 사인을 단순 쇼크사로 설명했으나 언론 취재와 의료진의 소견 등이 고문 의혹을 드러냈음. 사건은 전국적인 추모와 고문 규탄운동을 촉발했으며, 이후 가해 경찰의 범위와 은폐 사실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저항을 증폭시킨 계기가 되었음.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뒤,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이 사건의 축소·은폐 조작에 관여함. 실제 고문 가담자가 5명이었음에도 경찰은 2명만 가담한 것으로 발표하며 책임을 축소하려 했고, 이 조작은 5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로 무너짐. 박처원은 같은 달 29일 범인도피 혐의로 구속됨.

은폐·축소 조작 관여

1987년 1월 14일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이 고문 끝에 사망한 뒤,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은 대공수사 지휘라인의 핵심 인물로서 사건 축소·은폐 조작에 관여함. 경찰은 실제 고문 가담자가 5명이었음에도 조한경·강진규 두 명만 가담한 것으로 발표하며 책임 범위를 축소하려 함.

경찰 발표와 진상 은폐

경찰은 처음 박종철의 사망을 단순 쇼크사로 설명하며 고문 사실을 부인했고, 이후 부검 결과와 여론 압박으로 물고문 사실을 시인함. 이른바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표현은 1월 15일 강민창 치안본부장의 공식 발표에서 나온 것으로, 박처원은 그 발언의 직접 화자는 아니었음.

폭로와 구속

5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로 고문 가담자가 2명이 아니라 5명이고, 치안본부 간부들이 범인 축소·은폐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짐. 박처원은 유정방·박원택 등과 함께 5월 29일 범인도피 혐의로 구속됨. 사건 은폐의 붕괴는 전두환 정권의 국가폭력과 민주화 요구를 결집시키며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됨.

최은희가 홍콩에서 북한으로 납치되어 이송. 국가안전기획부가 1984년 발표에서 제시한 납치일은 1978년 1월 14일. 당시 최은희는 안양영화예술학교 운영과 영화 제작 협의를 위해 홍콩을 방문한 상황.

당시 안기부는 김정일의 지령에 따른 계획적 납치라고 발표. 최은희도 북한을 탈출한 뒤인 1986년 미국 기자회견에서 홍콩에서 강제로 붙잡혀 배로 북한에 끌려간 경위를 증언.

박정희 정부가 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한 대통령긴급조치 제3호를 선포함. 석유파동 이후 물가와 경제 상황에 대응한다는 취지로 저소득층 조세 감면, 사치성 소비 억제, 자원 절약 및 노사협조 등을 규정한 조치. 1974년 1월 14일 시행됨.

한국 정부가 「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한 대통령긴급조치」를 제정·시행. 석유 파동으로 심화한 경제적 충격에 대응하여 저소득층 조세부담 경감, 생활 안정, 사치성 소비 억제와 자원 절약 등을 추진한 경제조치.

물가 부담과 생활 불안을 완화하려는 국내 대응으로, 이후 종합물가안정대책 등 후속 정책으로 이어진 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