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출생
조선의 제15대 국왕 광해군. (~1641년)
조선의 제15대 국왕 광해군. (~1641년)
훈련원별과에서 낙마해 실격한 지 4년 뒤 식년무과 병과에 급제해 권지훈련원봉사로 관직 생활을 시작. 무관 경력의 출발점.
덴마크, 노르웨이의 국왕 크리스티안 4세. (~1648년)
조선 중기의 무신, 충무공 이순신의 조카 이완. (~1627년)
1577년 플리머스를 출항한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골든 하인드가 약 3년에 걸친 항해를 마치고 영국 플리머스로 귀환. 마젤란-엘카노 원정 이후 초기 세계일주 가운데 하나를 완수하며 잉글랜드의 해양 팽창을 상징하는 항해로 남음.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도입한 새로운 역법인 그레고리력이 1582년 10월 15일부터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과 스페인·포르투갈 등 가톨릭 국가에서 시행됨. 이들 지역에서는 율리우스력 10월 4일 다음 날짜를 그레고리력 10월 15일로 정하여 누적된 달력의 오차를 보정함.
태양년과 달력 사이의 차이를 줄인 역법 개혁으로, 다른 국가들은 수세기에 걸쳐 차례로 채택함. 역사 기록의 날짜를 비교할 때 국가·시기별 적용 달력을 구별해야 하는 근거가 된 사건.
조선의 왕족 정혜옹주. (~1638년)
조산보만호로 재직하던 중 녹둔도에서 여진 세력의 침입을 막는 과정에서 책임을 추궁받아 문책. 사전에 병력 증원을 요청했던 사정이 참작되어 중형은 면했으나 첫 번째 백의종군.
임진왜란 직전 전라좌도수군절도사에 임명되어 전라좌수영에 부임. 전선 제조와 군비 확충, 군사 훈련, 군량 확보 등을 추진하며 일본의 침략에 대비.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이 파견한 일본군 선봉이 부산포 일대에 상륙하며 조선 침공을 개시함. 부산진·동래를 돌파한 일본군이 빠르게 북상하면서 1598년까지 이어지는 전쟁이 시작됨.
조선의 이조판서-찬성 송상현. (1551년~)
고니시 유키나가가 지휘한 일본군 선봉이 부산진성을 공격함. 부산진첨사 정발과 조선군이 항전했으나 성이 함락되면서 일본군이 부산 일대의 교두보를 확보함.
부산진을 함락한 일본군이 동래성을 공격함. 동래부사 송상현을 비롯한 군사와 주민이 항전했으나 성이 함락되면서 일본군의 경상도 내륙 진격로가 열림.
관군의 방어체계가 급속히 무너지던 전쟁 초기에 곽재우가 경상도 의령에서 의병을 조직함. 이후 낙동강과 경상우도 일대에서 일본군의 이동과 보급을 견제하며 각지 의병 봉기의 대표적 사례가 됨.
순변사 이일 등이 이끄는 조선군이 상주에서 북상하던 일본군과 맞섰으나 패배함. 상주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일본군이 충주와 한양 방면으로 빠르게 진격할 수 있게 됨.
삼도순변사 신립이 지휘한 조선군이 충주 탄금대에서 일본군과 결전을 벌였으나 크게 패함. 조정이 수도 방어의 핵심 전력으로 기대했던 부대가 무너지면서 한양 방어가 사실상 어려워짐.
탄금대 패전 이후 일본군의 한양 접근이 임박하자 선조와 조정이 수도를 떠나 북쪽으로 피난함. 이후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이동하면서 조선의 중앙 지휘체계가 전시체제로 전환됨.
일본군이 개전 뒤 빠른 속도로 북상해 조선의 수도 한양을 점령함. 선조와 조정은 이미 북쪽으로 이동한 상태였으며 일본군은 이후 평양과 함경도 방면으로 진격함.
이순신의 전라좌수영 함대가 원균의 경상우수영 전력과 합류한 뒤 옥포에서 일본 군선을 공격함. 임진왜란 초기 조선 수군이 거둔 첫 승전으로, 총통과 활을 활용한 해상 공격의 가능성을 보여줌. 한산도 대첩에 앞서 함대의 실전 경험과 연합작전의 기반을 쌓은 전투였음.
옥포 해전 승전 직후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달아나는 일본 전선을 합포까지 추격해 격파. 임진왜란 첫 출전 당일 옥포 승리에 이어 거둔 연속 승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