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폰 플로토 출생
독일의 작곡가 프리드리히 폰 플로토. (~1883년)
독일의 작곡가 프리드리히 폰 플로토. (~1883년)
독일의 미스테리 소년 카스파르 하우저. (~1833년)
《첫인상》을 대폭 개작한 《오만과 편견》이 출간됨. 저자 실명 대신 《이성과 감성》의 저자로 소개됐으며 초판이 빠르게 소진되어 같은 해 제2판이 출간됨.
프랑스의 수학자 조제프루이 라그랑주. (1736년~)
프랑스의 화가, 장군 장 프랑수아 카르토. (1751년~)
나폴레옹 전쟁때 활약한 러시아 장군 미하일 쿠투조프. (1745년~)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 (~1855년)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 (~1883년)
1812년 전쟁 중 올리버 해저드 페리가 지휘한 미국 함대 9척이 이리호에서 로버트 헤리엇 바클레이가 지휘한 영국 함대 6척과 교전해 승리. 기함 《로런스》가 큰 피해를 입자 페리가 《나이아가라》로 옮겨 지휘를 계속했고, 결국 영국 전대를 항복시킨 해전.
승리로 미국이 이리호의 제해권을 확보하면서 영국군은 디트로이트와 북서부 전선에서 후퇴하게 되었고, 이어지는 템스 전투의 조건을 마련한 1812년 전쟁 서부전선의 중요한 전환점.
1813년 10월 16일 작센 왕국 라이프치히 일대에서 나폴레옹 1세의 프랑스군과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스웨덴 등을 중심으로 한 제6차 대프랑스 동맹군의 대규모 전투가 시작됨. 프랑스군은 남쪽에서 슈바르첸베르크가 이끄는 연합군과, 북쪽에서 블뤼허의 부대와 교전함.
전투는 19일까지 이어져 프랑스군의 결정적 패배로 끝났으며, 이는 나폴레옹의 독일 지배가 무너지고 연합군이 프랑스 본토로 진격하는 전환점이 됨. 다양한 동맹국의 참여를 단순히 '6개국 연합'으로 고정하지 않고 제6차 대프랑스 동맹이라는 전쟁사적 맥락으로 설명해야 할 사건.
초턴에서 집필한 《맨스필드 파크》가 토머스 에저턴을 통해 출간됨. 이전 두 장편보다 집필 과정에서 새롭게 구성된 작품으로, 오스틴의 생전 출판 경력이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됨.
프랑스의 의사 조제프이냐스 기요탱. (1738년~)
미영전쟁 중 영국 함대가 볼티모어의 포트 맥헨리를 밤새 폭격한 뒤, 프랜시스 스콧 키가 9월 14일 새벽 요새 위에 여전히 게양된 미국 국기를 보고 시 「맥헨리 요새의 방어」를 집필. 이 시에 기존 영국 곡 「To Anacreon in Heaven」의 선율이 붙으면서 「The Star-Spangled Banner」로 널리 알려졌고, 1931년 미국 국가로 지정되는 작품의 출발점.
《확률에 대한 철학적 시론》에서 "어떤 사실이 이례적일수록 그것을 뒷받침하는 데 더 강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명제를 서술함. 주장의 이례성과 요구되는 증거의 무게를 확률적 사고로 연결. 훗날 트루치와 세이건이 다듬은 격률의 직접적 원형으로 자주 인용.
독일의 정치인 외교관 오토 폰 비스마르크. (~1898년)
인도네시아 숨바와 섬의 탐보라 화산(Mount Tambora) 폭발은 인류 역사상 기록된 가장 강력한 화산 분화(화산폭발지수 VEI-7)로 2000년 내 최대 규모. 약 150km³의 물질을 분출하여 산 높이가 4,200m에서 2,730m로 낮아졌으며, 약 9만 명 이상의 사망자와 함께 1816년 세계적인 이상 기후('여름 없는 해')를 초래.
오스틴이 훗날 《설득》으로 출간되는 장편을 집필함. 1816년 7월 18일 첫 초고를 마친 뒤 결말 부분을 다시 쓰고 8월 6일 최종 원고를 완성함.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고 영국에 항복한 나폴레옹 1세를 태운 영국 함선 HMS 노섬벌랜드가 1815년 10월 15일 남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섬에 도착함. 영국 정부는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이 섬을 나폴레옹의 최종 유배지로 정함.
10월 15일은 선박의 도착일이며 하선과 장기 거처인 롱우드 하우스 입주는 별도 일자에 진행됨. 나폴레옹은 1821년 이 섬에서 사망할 때까지 감시 아래 생활함.
존 머리를 통해 《엠마》가 출간됨. 섭정 왕세자의 허락에 따라 작품을 그에게 헌정했으며, 생전에 출간된 마지막 장편이 됨.
영국의 소설가 샬럿 브론테. (~185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