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민공회, 왕정 폐지
프랑스 국민공회가 첫 회의에서 왕정 폐지를 만장일치로 결정함. 다음 날 공문서의 연호를 ‘프랑스 공화국 원년’으로 표기하기로 하면서 프랑스가 군주제에서 공화정 체제로 전환하는 제도적 분기점이 됨.
프랑스 국민공회가 첫 회의에서 왕정 폐지를 만장일치로 결정함. 다음 날 공문서의 연호를 ‘프랑스 공화국 원년’으로 표기하기로 하면서 프랑스가 군주제에서 공화정 체제로 전환하는 제도적 분기점이 됨.
파리의 뷔송이 프랑스어 번역본 《Le Fédéraliste》를 두 권으로 출판함. 미국의 비준 논쟁에서 나온 저작이 다른 언어권에 소개되는 중요한 출판 단계였음.
초기 번역본은 세 저자의 이름도 제시했으며, 공동 필명으로 발표된 글을 실제 저자들의 저작으로 읽는 흐름을 보여줌.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워싱턴 D.C.의 미국 국회의사당 남동쪽 기초에 초석을 놓음. 의식은 프리메이슨 의례와 행렬을 포함해 진행됐으며, 연방 수도 건설과 의회 청사 조성의 상징적 출발점이 됨.
프랑스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1793년 10월 16일 프랑스 혁명재판소에서 반역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뒤 파리 혁명광장(오늘날 콩코르드광장)에서 단두대에 처형됨. 루이 16세가 같은 해 1월 처형된 뒤 왕실은 프랑스 공화정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몰락함.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은 프랑스 혁명기 왕정 폐지와 공포정치, 혁명재판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 처형일과 이후 작성된 사망 신고 문서의 날짜를 구별할 필요가 있음.
「허생전」은 독립된 제목의 단행 작품이라기보다 『열하일기』 속 「옥갑야화」에 삽입된 이야기로 전승됨. 원래 제목이 명시되지 않아 후대에 편의상 「허생」 또는 「허생전」으로 불리게 됨.
버몬트·켄터키의 연방 가입을 반영해 줄무늬와 별을 각각 15개로 늘리는 1794년 국기법에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서명함. 새 국기의 시행일은 1795년 5월 1일로 정해졌으며, 주가 늘 때마다 줄무늬까지 함께 늘리려 한 처음이자 마지막 시도였음. 줄무늬가 계속 불어나는 문제는 훗날 1818년 국기법에서 13개로 되돌려 해결됨.
미국의 함대사령관 매슈 페리. (~1858년)
프랑스의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 (1743년~)
1794년 국기법에 따라 1795년 5월 1일부터 줄무늬와 별이 각각 15개인 성조기가 공식 시행됨. 미국 역사상 줄무늬가 13개를 넘은 유일한 국기로 1818년까지 23년간 쓰임. 이 깃발이 바로 1814년 포트 맥헨리 상공에 휘날리며 미국 국가의 영감이 된 '별이 빛나는 깃발(Star-Spangled Banner)' 실물로, 현재 스미스소니언에 보존됨.
프랑스 혁명 이후 공화력 3년 헌법에 따라 5인의 총재가 국가 행정권을 행사하는 총재정부 체제가 시작됨. 공포정치와 국민공회 뒤 권력 분산을 시도한 체제였으나 정치·군사적 불안정 속에 1799년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로 나폴레옹의 통령정부로 대체됨.
훗날 첫 출간 장편 《이성과 감성》으로 발전하는 《엘리너와 메리앤》을 집필함. 17971798년과 초턴 정착 뒤인 18091810년에 다시 개작함.
정조의 명령으로 이순신이 남긴 글과 그의 생애에 관한 기록을 모아 《이충무공전서》를 출판. 책의 제5~8권 부분에 일기를 싣고 《난중일기》라는 제목을 붙인 작업. 나중에 손글씨 원본의 일부가 없어지고 난 뒤에도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준 국가 차원의 출판 사업.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에 감염된 젖 짜는 여성 세라 넬름스의 병변에서 채취한 물질을 여덟 살 제임스 핍스에게 접종함. 핍스는 가벼운 증상을 겪은 뒤 회복했으며, 제너는 약 6주 뒤인 7월 천연두 물질을 이용한 인두 접종으로 예방 효과를 시험함. 핍스에게 천연두가 발병하지 않으면서 우두 감염이 천연두에 대한 방어 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관찰의 핵심 사례. :contentReference[oaicite:1]{index=1}
미국의 정치인 프랜시스 M. 다이몬드. (~1859년)
프랜시스 버니의 소설 《카밀라》 구독자 명단에 Miss J. Austen, Steventon이라는 이름을 올림. 오스틴이 자신의 이름을 인쇄물에 공개하도록 허용한 매우 이른 사례이자, 버니의 작품에 대한 관심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임.
훗날 《오만과 편견》으로 발전하는 《첫인상》을 집필함. 아버지 조지 오스틴이 1797년 출판사 토머스 카델에게 원고를 제안했으나 거절됨.
프랑스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 (~1863년)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의 원인과 효과에 관한 연구』를 자비로 출간함. 우두 감염 또는 우두 접종이 천연두에 대한 방어 효과를 보인다고 판단한 사례들을 정리한 저술. 우두법의 방법과 근거를 널리 알리며 이후 유럽 각지의 접종 확산에 영향을 준 문헌.
훗날 《노생거 사원》으로 출간되는 《수전》을 집필함. 당시 유행한 고딕소설의 관습과 독서 경험을 작품 속에서 패러디하고 비평하는 장편으로 발전함.
프랑스의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 (~185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