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청나라 열하 방문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황제 건륭제의 칠순연을 축하하기 위해 사신단을 따라 청나라 열하를 방문함. 청의 상업·유통·기술·도시 문화를 직접 관찰한 경험은 이후 「허생전」에 나타나는 북학적 문제의식과 조선 경제 비판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으로 평가됨.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황제 건륭제의 칠순연을 축하하기 위해 사신단을 따라 청나라 열하를 방문함. 청의 상업·유통·기술·도시 문화를 직접 관찰한 경험은 이후 「허생전」에 나타나는 북학적 문제의식과 조선 경제 비판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으로 평가됨.
1781년 9월 28일 조지 워싱턴과 로샹보가 이끄는 미·프 연합군이 윌리엄스버그를 떠나 요크타운으로 진군해 영국군 진지 포위를 시작함. 이 작전은 같은 해 10월 콘월리스의 항복으로 이어지며 미국 독립전쟁의 결정적인 군사적 전환점이 됨.
1781년 10월 19일 미국 독립전쟁 중 버지니아주 요크타운에 포위되어 있던 영국군이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미국군과 프랑스군 연합군에 공식 항복. 10월 17일 항복 협상 요청, 18일 조건 협의를 거쳐 이날 무기를 내려놓았으며, 미국 독립전쟁의 주요 전환점이 됨.
독일의 교육자 프리드리히 프뢰벨. (~1852년)
미국의 소설가 워싱턴 어빙. (~1859년)
나폴레옹의 의붓딸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 (~1837년)
북경에서 조선인 최초로 영세를 받고 돌아온 이승훈이 명례방(현 명동) 역관 김범우의 집에서 이벽을 지도자로 정기 신앙 집회를 염. 평신도들이 스스로 미사·교리를 나눈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신앙공동체로, 오늘날 연구자들이 '명례방 공동체'로 부름. 이 김범우의 집터가 한 세기 뒤 명동성당이 들어선 자리로, 한국 천주교회가 발원한 곳으로 기억됨.
스웨덴의 화학자 칼 빌헬름 셸레. (1742년~)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레오폴트 모차르트. (1719년~)
필라델피아 헌법제정회의에 참석한 대표들이 최종 미국 헌법 문서에 서명. 42명의 참석자 가운데 39명이 서명했으며, 연합규약을 대체할 새로운 연방정부 구조를 제시하고 이후 각 주의 비준을 거쳐 미국 헌정질서의 토대가 된 사건.
알렉산더 해밀턴이 ‘퍼블리어스’라는 필명으로 《인디펜던트 저널》에 미국 헌법 비준을 지지하는 첫 논설을 발표함. 제임스 매디슨과 존 제이가 집필에 참여하며 공동 논설 작업으로 이어졌음.
제1편은 새 헌법을 둘러싼 논쟁을 시민이 숙고하고 선택할 문제로 제시함. 이후 제도별 설명으로 이어지는 논집의 출발점이지만, 이때부터 완성된 85편이 한꺼번에 공개된 것은 아니었음.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작곡하고 로렌초 다 폰테가 대본을 쓴 2막 오페라 《돈 조반니》가 1787년 10월 29일 프라하의 노스티츠 극장(현 에스테이트 극장)에서 초연됨. 초연은 일정이 여러 차례 연기된 끝에 이루어졌으며, 모차르트가 직접 지휘한 것으로 전해짐. 희극적 인물과 비극적 결말을 함께 다루는 음악극으로, 이후 오페라 레퍼토리의 고전이 된 작품의 공연사적 출발점.
매디슨의 제10편이 뉴욕의 《데일리 애드버타이저》에 실림. 자유를 없애지 않고도 파벌의 해악을 줄일 수 있는지 묻고, 다양한 이해관계와 대표제가 특정 집단의 지배를 어렵게 할 수 있다고 논증함.
후대에 대표제와 다원주의를 논의하는 핵심 텍스트로 읽히게 되었음. 일부 판본에 적힌 11월 23일은 《뉴욕 패킷》 게재일이며, 최초 발표일과 구분할 필요가 있음.
제인 오스틴이 가족을 독자로 삼아 《Love and Freindship》, 《Lesley Castle》, 《Lady Susan》 등 훗날 ‘Juvenilia’로 묶이는 청소년기 작품들을 집필함. 초기부터 감상소설과 사회적 관습을 희화화하는 풍자적 문체를 발전시킴.
미국 조지아주 대표들이 1788년 1월 2일 신연방 헌법 비준 문서에 서명하여 조지아가 네 번째 비준 주가 됨. 비준 찬성 의결은 직전 해 12월 31일 만장일치로 이루어졌으며, 문서 서명 날짜인 1월 2일을 공식 비준일로 기록함. 새 연방헌법 체제가 성립하기 위해 각 주의 비준을 모으던 과정의 한 단계임.
《인디펜던트 저널》에 제51편이 발표됨. 정부가 시민을 통치할 힘을 갖되 스스로도 통제받도록, 각 부문의 권한과 이해관계를 서로 견제하는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고 설명함.
매디슨의 글로 널리 인정되지만 과거에는 해밀턴과 저자 귀속이 다투어졌음. 신문 당시 번호와 단행본 번호도 달라, 여기서는 오늘날 통용되는 제51편이라는 번호를 사용함.
뉴욕의 J. 앤드 A. 매클린이 논설들을 묶은 제1권을 출간함. 신문에서 흩어 읽던 주장을 책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해밀턴의 서문과 교정이 포함됨.
비준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출판한 책이므로, 정치적 개입과 이론적 설명이 결합된 성격을 지님.
프랑스의 철학자 오귀스탱 프레넬. (~1827년)
제2권이 출간되며 오늘날 통용되는 85편이 모두 수록됨. 마지막 여덟 편은 신문보다 책에 먼저 실렸으며, 사법부의 독립과 헌법에 따른 법률 판단을 논하는 제78편도 여기에 포함됨.
헌법 옹호 논리를 완결한 단행본과 이후 신문 재수록을 구분하는 기준점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