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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프랭클린이 연과 열쇠를 이용해 대기의 전기적 성질을 실험한 것으로 전해짐. 실험의 구체적인 수행 날짜는 확인되지 않으며, 프랭클린 자신의 1752년 기록과 약 15년 뒤 조지프 프리스틀리의 서술이 주요 근거임. 프랭클린은 번개와 전기의 성질이 같다는 가설을 연구했고 피뢰침 개발에도 기여함. 전해지는 연 실험이 실제로 어느 날 어떤 방식으로 실시됐는지는 학술적 논쟁이 있음.

미국의 정치가이자 과학자 벤저민 프랭클린이 전기에 관한 연구 업적으로 코플리 메달을 받음. 번개가 전기 현상임을 보인 실험 등 그의 전기학 연구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사례. 대서양 건너 식민지 과학자에게 수여되며 상의 국제적 위상을 보여준 수상.

1755년 11월 1일 포르투갈 리스본에 강진이 발생하고 해일과 대형 화재가 뒤따라 도심 대부분이 파괴됨. 피해 인구는 사료별 추정에 차이가 있지만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폼발 후작의 도시 재건과 건축·방재 개혁으로 이어짐. 재난의 종교적 해석을 둘러싼 볼테르 등 계몽주의 사상가의 논쟁과 근대 지진 연구에도 영향을 줌.

도성 인구 증가와 주변 산지의 토사 유입으로 하천이 메워지자 영조가 시행한 대규모 준천. 음력 2월 18일부터 4월 15일까지 57일 동안 본류와 지류의 토사를 걷어내고 다리와 물길을 정비한 사업. 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포함한 여러 계층의 주민이 참여했으며, 공사 경과와 관리 방침을 《준천사실》에 남긴 과정.

광통교 교각에 새긴 ‘경진지평’은 이때의 준설을 기념하고 후대 하천 관리의 기준을 제시한 표시. 교통시설인 다리가 물길의 깊이와 토사 축적을 살피는 도시 치수의 기준점으로도 기능했음을 보여주는 흔적.

영조대 개천 준설과 정비가 이어지던 가운데 마들 일대에서 채취한 돌로 광통교를 증축한 사업. 도성의 배수로를 관리하면서 주요 통행시설도 손본 사례이며, 광통교가 한 번 건립된 형태로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도시의 필요에 따라 보수·확장된 시설이었음을 보여주는 변화. 영조가 광통교에서 준천 작업을 살핀 기록도 전하는 시기.

조지 3세가 7년전쟁 이후 영국이 확보한 북아메리카 영토의 행정 체계를 정비하고 원주민 영토의 식민 정착과 토지 취득 절차를 규정하는 왕실 포고령을 발표함. 이 포고령은 이후 캐나다에서 왕실과 퍼스트 네이션 사이의 조약 관계와 원주민 권리 논의의 중요한 역사적·법적 기반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