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군이 1841년 5월 27일 광저우를 점령한 뒤, 청 측 협상 대표 이산과 영국 전권대표 찰스 엘리엇이 전투 중단과 철수 조건을 협의함. 청 측은 광저우를 보전하는 대가로 60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고, 영국군은 5월 31일까지 호문 해협 바깥으로 철수함. 이른바 ‘광저우 몸값’ 협정으로 광저우 일대의 전투는 일시 중단되었으나, 영국 정부는 엘리엇의 제한적 합의에 불만을 품었고 전쟁은 이후 저장·장쑤 연안으로 확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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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북부 싼위안리 일대에서 주민과 향병 수천~수만 명이 주둔 중이던 영국·인도군 부대를 포위·공격함. 영국군의 약탈과 민가 침입에 대한 반발이 집결의 배경으로 거론되며, 빗물에 젖은 인도군의 화승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도 충돌에 영향을 미침. 청 지방 관리가 광저우 보복 공격을 우려해 주민들에게 해산을 요청하면서 교전은 마무리됨. 이후 이 사건은 청 말기 민중이 외세에 자발적으로 맞선 대표적 사례로 중국의 민족주의 역사 서사에서 상징적으로 기억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