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904년의 기록 28건

122년 전.한 해의 기록을 월별로 살펴보세요.

가장 많은 기록
5월 · 7건
관련 엔티티
28개
날짜가 확정된 기록
68%
월을 선택해 기록 보기 5월 · 7건

석방된 이승만이 미국 유학과 대한제국의 독립 보전을 위한 외교활동을 위해 서울을 떠남.

1904년 11월 4일, 이승만이 미국으로 가기 위해 서울을 출발했음.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이 번역한 영문일기는 이날 오후 서울에서 출발하는 기록으로 시작함. 그는 같은 해 8월 한성감옥에서 풀려난 뒤, 민영환과 한규설 등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 한국의 독립 보전을 호소할 길을 찾았음.

그의 미국행은 유학과 외교활동이 함께 진행되는 출발점이었음. 1905년 조지워싱턴대학교에 입학한 뒤 미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한국 문제를 알렸고, 같은 해 8월에는 윤병구와 함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독립 보전을 요청했음. 그러나 미국의 대일 정책을 바꾸거나 한국의 주권을 보호할 구체적 성과를 얻지는 못했음.

일본계 이민자 미야모토 조타로가 하와이 호놀룰루에 포목·양품점 '무사시야'를 엶. 일본 기모노 직물을 다루던 이 점포는 뒷날 아들 미야모토 고이치로 대에 화려한 무늬의 셔츠를 지어 파는 가게로 이어짐. 알로하 셔츠의 기원으로 거론되는 초기 점포 중 하나의 출발점.

1904년 귀국한 뒤 언더우드의 비서로 일하는 한편 황성기독교청년회에서 교사·학관장·학생부 간사 등으로 활동하고 경신학교 교사와 교감을 역임. 1910년 새문안교회 장로로 선출되고, 1911년 경기·충청도 장로교연합회 서기, 1912년 전국주일학교연합회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을 맡는 등 교육계와 개신교계에서 활동. 1913년 4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면서 국내 활동을 마무리함.

김규식 (우사)

프랑스 공교육 확대와 함께 일반 학급의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아동에게 어떤 교육을 제공할 것인지가 정책 과제로 떠오르자 1904년 공교육부가 관련 위원회를 구성함. 비네도 위원으로 참여해 교사나 의사의 주관적 인상에만 의존하지 않는 판별 방법을 모색함.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적·의학적 검사와 함께 아동의 현재 지적 수행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방법이 요구됨. 비네와 테오도르 시몽의 연구가 이듬해 첫 지능 측정 체계 발표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제도적 배경이 됨.

맨체스터에서 미술을 공부한 팽크허스트가 장학금을 받아 런던 왕립예술대학에서 수학하기 시작함. 1906년까지 이어진 교육으로 회화와 디자인의 기반을 쌓았으며, 이후 그 기술을 여성 참정권 운동의 배지·현수막·포스터 제작에 활용함. 예술가로서의 진로와 정치 활동을 함께 모색하던 시기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