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트 1세 퇴위와 보리스 3세 즉위
1918년 10월 3일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불가리아의 페르디난트 1세가 퇴위하고 아들 보리스 3세가 왕위를 계승함.
불가리아가 살로니카 휴전으로 전쟁에서 이탈한 뒤 군주제의 책임 문제가 불거졌고, 페르디난트 1세는 아들 보리스에게 왕위를 넘김. 보리스 3세는 전후 정치·경제적 혼란 속에서 재위를 시작해 1943년 사망할 때까지 불가리아를 통치함.
1918년 10월 3일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불가리아의 페르디난트 1세가 퇴위하고 아들 보리스 3세가 왕위를 계승함.
불가리아가 살로니카 휴전으로 전쟁에서 이탈한 뒤 군주제의 책임 문제가 불거졌고, 페르디난트 1세는 아들 보리스에게 왕위를 넘김. 보리스 3세는 전후 정치·경제적 혼란 속에서 재위를 시작해 1943년 사망할 때까지 불가리아를 통치함.
1918년 10월 28일 프라하의 체코슬로바키아 국가위원회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체코슬로바키아 국가의 성립을 공표하고 독립국가 수립에 관한 첫 법률을 발표.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진행된 체코인·슬로바키아인의 민족자결 운동과 해외 망명정부의 외교 활동이 국내의 정치적 선언으로 이어진 사건임. 같은 해 11월 14일에는 새 국회의 첫 회의에서 토마시 가리크 마사리크가 대통령으로 선출됨.
제1차 세계대전 말인 1918년 10월 31일 부다페스트에서 국화혁명(Aster Revolution)이 성공하며 기존 정권이 무너지고 카로이 미하이가 총리로 취임함.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체 과정에서 헝가리의 정치적 독립과 체제 전환을 가속한 사건으로, 헝가리 인민공화국 선포일인 11월 16일과 구분해야 함.
1918년 11월 1일 브루클린 말본 스트리트의 급커브 터널 구간에서 고가철도 열차가 탈선하여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함. 파업 중 투입된 경험이 부족한 대체 운전자의 과속과 목조 차량의 취약성이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적됨.
오늘날 프로스펙트 파크역 인근에서 일어난 사고로, 지하철의 발전을 노선 확장의 역사만으로 볼 수 없게 하는 안전상의 전환점임. 노동쟁의라는 배경과 별개로 운전자 훈련·속도 관리·차량 구조를 책임지는 운영 체계의 중요성을 드러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가 안상호의 일본인 배우자와 자녀들을 소개하며 그의 가정을 ‘일선동체’와 ‘내지화’의 성공 사례로 선전함. 기사에서 안상호는 자신을 일본 사람과 같다고 표현하고 조선식 생활과 조선인 사회에서 거리를 두고 있다고 밝힘.
1918년 말 나라시노 포로수용소에 인플루엔자가 유행해 독일군 포로 25명이 사망함. 수용소장 사이고 도라타로도 1919년 1월 1일 고열에도 신년 인사를 위해 수용소를 찾은 뒤 같은 날 사망함. 사망한 포로 25명은 수용 중 다른 원인으로 숨진 5명과 함께 현재의 후나바시 시영 나라시노 영원에 안장됨.
1918년 경성전수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 서기로 임용됨. 이후 공주지방법원 서산지청·홍성지청 등에서 서기로 근무하며 사법 실무에 종사함.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을 전후해 결성된 신한청년당에 김규식이 참여하고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할 한국 대표로 선정됨. 영어와 국제 정세에 능통했던 김규식을 통해 한국 독립 문제를 국제사회에 호소하기로 결정.
이리·챔플레인·오스위고·카유가–세네카 운하를 재편한 뉴욕주 바지선 운하 체계가 완공됨. 동력선 운항을 전제로 일부 구간에 강과 호수를 활용하고, 전기로 작동하는 대형 갑문을 도입했음.
이때의 이리 운하는 1825년 노선을 그대로 보존한 수로가 아니었음. 말이나 노새가 둑길에서 배를 끌던 운송 방식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수운 시설로 바뀌었으며, 이후에도 상업선과 레저선의 통행에 이용되었음.
1918년 새 인플루엔자 A(H1N1)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이 세계적으로 확산함. 제1차 세계대전기의 병력 이동과 대규모 집단생활은 전파에 영향을 주었고, 1918~1919년 여러 차례의 유행 물결이 발생해 세계적으로 막대한 사망을 초래함. 흔히 ‘스페인 독감’이라 부르지만 스페인이 발원지라는 뜻은 아니며 실제 기원은 확정되지 않았음.
《여자계》에 여성 유학생을 중심인물로 삼은 소설 「경희」를 발표함. 교육을 받은 여성이 기존의 삶의 방식과 자신의 가능성을 되묻는 과정을 담아 여성의 자아 발견을 문학의 중심에 놓았음.
일본 여자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정신여학교에서 잠시 미술을 가르침. 전문교육을 받은 화가가 자신의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하는 활동으로, 이후 여성 미술교육을 시도하기에 앞선 교직 경험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