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미 의회 연설에서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 구상을 담은 14개조 평화원칙을 발표함. 각 민족이 스스로 정치적 운명을 결정한다는 민족자결주의가 그 핵심 원칙의 하나로 제시됨. 식민지 약소민족에게 독립의 명분으로 받아들여져 한국의 3·1운동을 비롯한 각지 독립운동을 자극한 사상적 배경.
우드로 윌슨, 14개조 평화원칙 제시
윌슨은 미국 의회 연설에서 공개 외교, 항해의 자유, 군비 축소, 민족과 영토 문제의 조정, 국제연맹 창설 등을 포함한 전후 평화 구상 14개 항목을 제시함. 이 구상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미국의 전쟁 목표와 평화 원칙을 제시한 것으로, 이후 여러 민족의 독립운동 세력이 국제사회에 독립 문제를 호소하는 데 영향을 미침. 한국 독립운동계에서도 파리강화회의를 독립의 당위성을 국제사회에 알릴 기회로 인식하는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됨.
1918년 2월 6일 영국에서 국민대표법(Representation of the People Act 1918)이 국왕 재가를 받음. 이 법은 일정한 재산·지방선거 자격 요건을 충족한 30세 이상 여성에게 의회선거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부분의 21세 이상 남성에게도 투표권을 확대함.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선거권이 실현된 것은 1928년임.
1918년 2월 일본 농상무성이 독일식 소시지 제조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축산시험장 기사 이이다 요시후사를 나라시노 포로수용소에 파견함. 수용 중인 카를 얀 등 독일인 기술자 5명에게 식육가공 시험을 수행하게 하고 제조법을 습득함. 나라시노시 자료는 얀이 처음에는 비법 공개를 주저했으나 수용소장 사이고 도라타로의 설득 뒤 응했다고 전함. 물리적 강제 여부는 확인되지 않지만 포로와 수용 당국의 비대칭적 관계에서 진행된 만큼 자발적인 기술 교류로 단정하기 어려움. 농상무성은 확보한 제조법을 강습회를 통해 일본 각지의 식육가공업자에게 보급함.
독일의 물리학자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 (1850년~)
미국의 지형학자 그로브 칼 길버트. (1843년~)
정상진 (1918년) 출생
제2차 세계대전의 유일한 소련군 조선인 참전자 정상진. (~2013년)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1988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출생
일본의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 (~2019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자체 제작 서부전선 부록 지도 발행
제1차 세계대전의 프랑스·벨기에 전선을 담은 접이식 지도를 잡지에 수록함. 협회 지도 부서가 전 과정을 직접 제작한 첫 부록 지도로, 전황 보도에 등장하는 작은 지명까지 독자가 찾도록 구성함. 부록 지도 자체는 창간 때부터 있었으므로, 이 사건은 지도 부록의 최초 도입이 아니라 자체 제작 체계의 성과임.
프란코 모디글리아니 출생
미국의 경제학자 프란코 모디글리아니. (~2003년)
하라 다카시가 일본 총리에 취임해 최초의 본격적인 정당 내각을 구성함. 하라 내각은 국제연맹 참여를 지지했으나 정부와 여론 내부의 회의론에 직면한 상황. 인종 평등 제안은 연맹 참여의 국내 정치적 명분을 강화하려는 목적과 미국·영국 자치령의 일본인 이민 문제 해결 목적이 결합된 외교 의제.
이승만이 운영하던 하와이의 교육사업이 남녀공학 한인기독학원으로 확대됨. 한인 자녀의 한국어 교육과 민족교육을 위한 기반이었음.
1918년 9월, 하와이 호놀룰루의 한인 교육기관이 한인기독학원이라는 이름으로 개편됨. 이승만이 1914년 여학생 기숙사를 마련하고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사업이 그 토대였음. 대한인국민회의 지원과 교민사회의 자원을 바탕으로 학교 부지와 교사가 마련되었고, 남녀가 함께 배우는 민족교육기관으로 발전했음.
이승만은 1913년부터 하와이에서 한인 교육과 종교 활동에 힘을 기울였음. 학교와 교회, 한글 간행물은 이민사회에서 언어와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고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기반이 됨. 다만 학원 운영은 재정난을 동반했음. 1923년 학생 고국방문단을 보내 모금하는 과정에서는 일본 영사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문제 때문에 독립운동 원칙과의 충돌을 지적하는 교민사회의 반대도 일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