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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6월 28일

10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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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연합국과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하며 대독 강화가 확정. 독일은 협상에서 배제된 채 막대한 배상과 영토 상실, 군비 제한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임. 회의의 핵심 산물이자 이후 독일의 반발과 국제 정세 불안의 불씨가 된 조약.

인종 평등 제안 (1919)

1919년 1월 18일 개막한 파리 강화 회의, 한국 독립 문제를 정식 의제로 다루지 않은 채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 체결과 함께 폐막. 김규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로 독립 청원서와 항고서를 제출하고 각국 대표단에 한국 문제의 의제 상정을 요청했으나, 승전국 일본의 방해와 열강의 외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음. 민족자결주의가 승전국의 식민지에는 적용되지 않는 선택적 원칙이라는 한계가 드러났으며,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도 큰 타격을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