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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estone 조인된 대독 강화조약

연합국과 독일, 베르사유 조약 서명

1919년 6월 28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독일과 연합국 대표들이 제1차 세계대전의 대독 강화조약인 베르사유 조약에 서명한 사건. 조약은 독일의 영토 상실과 군비 제한, 배상 책임 등을 규정하고 국제연맹 창설을 위한 틀을 마련함.

사라예보 암살 사건이 발생한 지 정확히 5년 뒤에 이루어진 조인. 유럽의 전후 질서를 재편했으나 독일 내부의 강한 반발과 국제적 갈등을 낳음. 조약의 서명일은 1919년 6월 28일, 발효일은 1920년 1월 10일로 구별됨.

인종 평등 제안 (1919)

1919년 1월 18일 개막한 파리 강화 회의, 한국 독립 문제를 정식 의제로 다루지 않은 채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 체결과 함께 폐막. 김규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로 독립 청원서와 항고서를 제출하고 각국 대표단에 한국 문제의 의제 상정을 요청했으나, 승전국 일본의 방해와 열강의 외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음. 민족자결주의가 승전국의 식민지에는 적용되지 않는 선택적 원칙이라는 한계가 드러났으며,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도 큰 타격을 받음.

김규식 (우사)

1919년 6월 28일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에 정식 취임함. 연통제와 교통국을 조직하고 《독립신문》 발행을 주도하며 통합 임시정부 수립을 이끎. 초기 임시정부 운영의 실질적 중심 역할.

안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