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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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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기록

2025년 6월 28일 쾰른 나치기록박물관 앞에서 한시 전시됐던 평화의 소녀상 ‘동마이’가 독일 본 여성박물관 안뜰에 영구 설치됨. 소녀상은 여성주의 기억 문화의 일부로 전시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 식민 폭력, 군사적 성착취 문제를 알리는 기념물로 자리 잡음.

쾰른의 단기 전시가 상설 기억 공간으로 이어진 사례로, 해외 소녀상 운동이 철거·반대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제도적·문화적 기반을 확보한 사건으로 볼 수 있음.

평화의 소녀상

1950년 6·25전쟁 발발 사흘째인 6월 28일 새벽 2시 30분경, 북한군의 한강 이남 진격 저지를 목적으로 국군 공병이 한강의 철교 3개와 한강인도교를 폭파. 폭파 당시 다리 위를 지나던 차량과 시민, 군인이 휩쓸리며 다수의 사상자 발생. 서울 외곽 방어를 위해 남아 있던 국군 주력부대와 피란 시민 다수가 강북에 남겨지고, 한강 도하 경로 상실.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의 명령에 따라 최창식 공병감이 폭파 지시를 내린 사건.

한강대교

호놀룰루의 무사시야 쇼텐이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에 ‘Aloha shirts—well tailored, beautiful designs and radiant colors’라는 광고를 게재함. 이 광고는 ‘알로하 셔츠’라는 표현이 신문 인쇄물에 등장한 현존 확인 자료상 가장 이른 사례, 또는 가장 이른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됨.

광고는 기성품과 맞춤 제작 셔츠를 모두 95센트부터 판매한다고 알림. 1935~1936년 무렵 하와이 상품 전반에 ‘알로하’라는 표현이 널리 붙기 시작한 흐름 속에서, 셔츠를 가리키는 명칭이 상업적으로 정착해 가는 계기를 보여주는 기록.

1919년 1월 18일 개막한 파리 강화 회의, 한국 독립 문제를 정식 의제로 다루지 않은 채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 체결과 함께 폐막. 김규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로 독립 청원서와 항고서를 제출하고 각국 대표단에 한국 문제의 의제 상정을 요청했으나, 승전국 일본의 방해와 열강의 외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음. 민족자결주의가 승전국의 식민지에는 적용되지 않는 선택적 원칙이라는 한계가 드러났으며,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도 큰 타격을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