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아드 메바자 출생
튀니지의 정치인 푸아드 메바자. (~2025년)
이광수, 조선일보 부사장에 취임
이광수가 1933년 8월 조선일보사 부사장에 취임함. 1934년 5월까지 재직하며 신문사 운영과 언론 활동에 참여.
경성·평양 대표팀, 배재고보에서 제3회 경평축구대항전 개최
조선체육회와 조선체육계사가 공동 주최하고 조선중앙일보가 후원한 대항전이 서울 정동의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열렸음. 양 팀은 세 경기에서 각각 1승 1무 1패를 기록했음.
1929년과 1930년 대회를 잇는 행사로 소개되었지만 주최·후원 체계는 달라졌음. 같은 해에 열린 여러 경평 경기와 뒤이은 정기전을 구분하면, 자료마다 대회 회차가 다르게 보이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됨.
나치 독일, 군축회의와 국제연맹 탈퇴 선언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제네바 군축회의 철수와 국제연맹 탈퇴를 발표. 독일 정부는 다른 국가와 동등한 군비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을 결정의 명분으로 제시하고, 11월 12일 국민투표를 통해 이를 추인.
탈퇴는 국제연맹 규약에 따른 통고 기간을 거쳐 발효됐으며, 독일 정부는 이후 공군 창설과 징병제 부활 등 베르사유 조약의 군비 제한을 위반하는 재무장 정책을 추진.
약 3년의 제정 작업과 1년의 수정을 거친 통일안을 10월 19일 임시총회에서 확정하고, 10월 29일 한글날 기념식에서 발표함. 한국어 정서법의 근간을 처음으로 통일한 규정. 오늘날 한글 맞춤법의 직접적 토대.
경성축구단·평양축구단, 평양에서 정기 대항전 시작
경성축구단과 평양축구단이 평양에서 정기 대항전을 열었음. 두 도시의 축구단이 서로 초청하는 틀을 갖추면서 봄·가을에 교대로 경기를 치르는 방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음.
이 정기전은 1929년 처음 열린 경평축구의 전통을 이어받았지만, 주최 방식과 대회 명칭이 달라진 새로운 단계였음. 자료에 따라 세부 경기일과 회차 서술에 차이가 있어 월 단위로 표시함.
덕수궁 공원화와 석조전의 미술관 전환
일제강점기 궁역 축소와 전각 철거가 이어진 가운데 덕수궁이 일반에 공개되는 공원으로 바뀜. 석조전도 미술품을 전시하는 덕수궁미술관으로 사용되기 시작함. 시민의 출입이 가능해진 변화와 함께, 황실의 생활·정무 공간이 해체되고 식민지기의 관람 공간으로 재편된 역사를 지닌 조치.
벨연구소 해고 이후 특허 실무로 진로 전환
대공황으로 벨전화연구소에서 해고된 뒤 특허사무소를 거쳐 P. R. 맬러리의 특허 부서에서 근무. 문서 사본을 만들기 어렵다는 현장의 문제를 직접 경험했으며, 1936년부터 야간 법학 공부를 병행한 기술·법률 전문성의 형성.
서울에서 다방 제비를 운영하기 시작한 시기. 생계를 위한 영업 공간인 동시에 문인과 예술가가 만나고 대화하는 도시의 공간이라는 의미. 이상의 문학을 개인의 내면만이 아니라 카페·신문·잡지와 동료들의 교류 속에서 살펴보게 하는 생활의 무대.
《꽃나무》·《이런 시》·《거울》 발표
《가톨릭청년》에 한국어 시 《꽃나무》·《이런 시》·《거울》 등을 발표한 시기. 거울 안팎의 자아처럼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배치하여 자기 인식의 균열을 드러내는 시적 실험. 뜻을 매끄럽게 요약하기보다 화자의 위치와 반복되는 표현을 따라 읽는 접근이 유용한 작품군.
건강 악화와 건축 직장 퇴직
각혈 등 건강 문제로 건축 기수직을 그만두고 배천온천에서 요양한 시기. 안정적인 직장 생활에서 벗어나 문학과 카페 운영으로 생활의 중심이 이동하게 된 전환. 질병은 생애를 이해하는 중요한 조건이지만, 이후의 모든 실험적 작품을 질환의 증상으로 설명해서는 안 되는 구별.
버나드 허먼, 뉴 체임버 오케스트라 조직
현대음악을 소개하기 위한 악단을 조직하고 지휘함. 상업영화 음악가로 알려지기 전에 연주회에서 동시대 작품을 옹호했던 활동임.
도라 마르, 바르셀로나와 토사데마르의 거리 생활 촬영
마르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토사데마르를 방문하여 거리의 사람들과 생활을 사진으로 기록함. 잡지 작업을 위한 여행 중 구걸하는 여성, 시장의 상인과 음악가 등 서로 다른 사람들을 포착했으며, 도시의 빈곤과 일상의 표정을 함께 담음. 이 사진들은 스튜디오의 주문 작업과는 다른 사회적 관찰을 보여주는 작업군이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