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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의 기록 5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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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부민관에서 문인 약 250명이 참여한 조선문인협회 창립식이 열리고 발기인으로 참여한 이광수가 회장에 선출됨. 이광수는 취임사에서 국민문학 건설과 내선일체 구현을 협회의 목적으로 제시함. 이후 전선의 일본군을 위한 위문문 모집과 문예 행사 등 문단 차원의 전쟁 협력을 이끈 친일 문인단체의 출범.

이광수 (춘원)

1939년 11월 조선총독부의 지원으로 조직된 조선유도연합회의 상임참사로 선출됨. 조선유도연합회는 전시체제 아래 유림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고 황도정신에 입각한 유교를 보급하기 위해 조직된 관변 유림단체였음.

이명세 (1893년)

뉴욕 현대미술관이 알프레드 H. 바 주니어의 기획으로 피카소의 약 40년 작업을 망라한 회고전 개최. 시카고 미술관과 공동으로 준비되었으며, 《게르니카》와 관련 습작을 미국 관람객에게 소개한 중요한 전시.

《게르니카》가 스페인 구호를 위한 순회와 동시대 정치의 맥락을 지니면서도 현대미술사의 핵심 작품으로 자리 잡아 간 장면. 전쟁으로 유럽 정세가 악화된 가운데 작품의 장기 미국 체류로 이어진 뉴욕 전시사의 이정표.

게르니카 (피카소) 뉴욕 현대 미술관 (MoMA)

폰 미제스가 이스탄불 대학교 이학부 학술지에 논문 「Über Aufteilungs- und Besetzungswahrscheinlichkeiten」을 발표하며 생일 문제의 한 형태를 처음 활자화함. 이후 이 문제가 확률론 입문의 고전 사례로 자리 잡는 출발점이 된 첫 공식 출판.

생일 문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뒤 민간 승용차 대량생산 계획이 중단되고 군수생산·강제노동 체제로 전환된 시기.

전쟁 발발로 국민차의 민간 대량생산 계획이 중단되고 군용차와 군수품 생산 중심으로 전환. 유럽 점령지 출신 노동자·전쟁포로·강제수용소 수감자 등 약 2만 명을 강제노동에 동원했으며, 1944년에는 강제노동자가 전체 노동력의 약 3분의 2를 차지.

기상업무의 경제·기술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IMO의 비정부기구적 구조를 정부간 체제로 바꾸려는 협약 초안 마련. 제2차 세계대전으로 승인 절차가 지연되는 가운데 사무국을 중립국 스위스로 이전하며 전후 WMO 설립 논의로 연결된 준비 단계.

세계기상기구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1939년부터 1943년까지의 노벨평화상이 수상자 없이 남음. 1940년 독일의 노르웨이 점령으로 위원회의 활동 환경이 크게 제약되었으며, 위원들이 흩어진 1943년부터는 회의도 중단됨. 전쟁이 끝난 뒤 위원회가 다시 모여 국제적십자위원회에 1944년분 평화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함. 수상 대상 연도와 실제 선정·시상 시점이 어긋난 전시 상황을 보여 주는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