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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 모여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한국의 독립을 선언함. 같은 시각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시민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섬. 비폭력 만세 시위로 시작된 이날의 선언이 전국으로 번지는 3·1운동의 출발점.

3·1 독립선언

천도교·기독교·불교 세 종교계가 연합해 추진한 민족대표 33인은 당초 탑골공원에서 독립을 선언하려 했으나, 유혈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장소를 인사동 음식점 태화관으로 옮김. 1919년 3월 1일 오후 이곳에 모인 대표들은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만세를 부르고 스스로 일제 경찰에 연락해 체포됨.

한편 같은 날 탑골공원에는 학생과 시민 수천 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에 나섬.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의 함성은 곧 평양·의주 등 전국으로, 나아가 국외 한인 사회로까지 들불처럼 번져 거족적 항쟁으로 발전함.

국제통화기금이 회원국의 국제수지 문제를 지원하기 위한 금융업무를 개시. 1945년 12월 27일 설립협정 발효와 1946년 조직 구성을 거쳐 실제 자금 운영에 들어간 단계. 같은 해 5월 프랑스가 처음으로 IMF 자금을 인출하며 회원국 금융지원의 실행 시작.

제주북공립국민학교에 열린 3.1절 기념식을 마친 직후 기마경관이 탄 말에 어린이가 채여, 소란 발생. 기마경관이 어린이가 채인 사실을 무시하자 주변 군중이 몰려들어 돌을 던지고 경찰서까지 쫒아감. 경찰은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판단, 시위대를 향해 발포, 6명이 사망, 8명이 중상. 희생자 중에는 평범한 일반인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