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 모여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한국의 독립을 선언함. 같은 시각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시민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섬. 비폭력 만세 시위로 시작된 이날의 선언이 전국으로 번지는 3·1운동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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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 모여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한국의 독립을 선언함. 같은 시각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시민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섬. 비폭력 만세 시위로 시작된 이날의 선언이 전국으로 번지는 3·1운동의 출발점.
개전 수 시간 만에 이란이 "진실한 약속 IV" 작전으로 이스라엘 텔아비브·하이파와 페르시아만 일대 미군 기지·친미 아랍국가를 향한 미사일·드론 공격을 개시. 바레인·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의 미군 시설과 영사관 등이 표적이 됨. 동시에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사실상 마비되어 오일 탱커를 포함한 150여 척의 화물선이 발이 묶이며 세계 연료 위기를 촉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중앙기념식이 열림.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독립유공자, 일본군 위안부·강제동원 피해자 등 각계 인사와 시민 약 1만 명이 참석함. 100년 전 만세의 함성을 기리며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긴 대규모 국가 기념행사.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많은 국민이 함께 읽고 3.1운동의 정신을 함께 나누는 취지에서 100년 전에 쓰여진 「3.1독립선언서」를 각계의 감수를 거쳐 현대 말로 풀어쓴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를 펴냄.
미국 멤피스대학교에서 최초의 인공 일반 지능 학술회의 AGI-08이 열림. 범용 지능의 공학적 구현과 이론·인지과학·평가를 한자리에 모으면서 AGI가 별도의 국제 연구 공동체와 정례 학술행사를 갖추기 시작함.
뉴욕 현대미술관 MoMA와 P.S.1이 영화·사진·설치를 아우르는 대규모 전시 《Abbas Kiarostami: Image Maker》를 개최함. 미국에서 조직된 가장 포괄적인 키아로스타미 전시로, 그의 작업이 영화관을 넘어 미술관의 맥락에서도 해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줌.
대한민국 정부가 제70주년 3·1절을 맞아 김규식에게 건국훈장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서. 조소앙·안재홍 등과 함께 한국전쟁 당시 납북된 독립운동가들을 포상한 조치의 하나로, 파리강화회의 독립 외교와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 등의 공적을 국가적으로 기림.
충남 서천 출신의 노상원이 1981년 육군사관학교(41기)에 수석으로 입교한 뒤, 1985년 3월 1일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함. 이후 소령 시절 보병에서 정보 병과로 옮겨 777사령관·정보사령관 등 군 정보 분야 요직을 걷는 출발점이 됨.
MTV가 유명 음악가들이 시청자에게 케이블 사업자에 MTV 편성을 요구하도록 독려하는 「I Want My MTV!」 광고 캠페인을 시작함. 낮은 초기 보급률을 끌어올리고 채널 구호를 대중문화의 유행어로 만든 마케팅 전환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사제 20여 명이 공동 집전한 명동성당 3·1절 기념미사에서 재야 인사들이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함. 이우정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윤보선·김대중·함석헌·정일형·문동환 등 10명이 서명함.
선언은 긴급조치 철폐와 민주주의 회복, 사법권 독립, 경제적 자립, 평화적 민족통일 등을 요구하며 유신체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함. 정부는 관련자들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했으며 사제단 소속 함세웅·신현봉·문정현·김승훈 등도 재판을 받음. 종교계와 정치·재야 세력이 결합한 유신체제 후반기의 대표적인 민주화운동으로 발전함.
블랙홀이 흑체처럼 열복사를 방출한다는 결과를 담은 두 쪽짜리 논문 게재. 양자역학적 효과로 블랙홀이 입자를 생성·방출하며 서서히 질량을 잃는다는 예측 제시. 호킹 복사 개념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이 논문은 이후 블랙홀 물리학의 방향을 바꾼 전환점.
《네이처》 논문 〈블랙홀 폭발?〉에서 양자효과로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입자가 생성되어 블랙홀이 질량에 반비례하는 온도의 열복사를 방출한다고 예측함. 이 호킹 복사로 블랙홀이 서서히 증발할 수 있음을 보임. 일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열역학을 잇고 블랙홀 정보 역설 논쟁을 촉발한 성과.
찰스 새커가 주설계한 알토(Alto) 최초 기종이 가동을 시작. 비트맵 디스플레이, 마우스, 겹치는 창과 아이콘, 이더넷 연결을 한 기계에 통합해 GUI를 전제로 설계된 최초의 컴퓨터 가운데 하나로 거론됨. 이후 워크스테이션과 개인용 컴퓨터의 원형을 제시한 기계.
스페인의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
미국의 배우, 영화 감독 론 하워드. (~2020년)
제주북공립국민학교에 열린 3.1절 기념식을 마친 직후 기마경관이 탄 말에 어린이가 채여, 소란 발생. 기마경관이 어린이가 채인 사실을 무시하자 주변 군중이 몰려들어 돌을 던지고 경찰서까지 쫒아감. 경찰은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판단, 시위대를 향해 발포, 6명이 사망, 8명이 중상. 희생자 중에는 평범한 일반인 포함.
대한민국의 배우 주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3·1독립선언 1주년을 맞아 첫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함. 임시정부 주최 기념식과 교민단 주최 축하식, 시가행진·기념공연 등이 열렸고,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은 이날을 '국경일'로 부르며 경축함. 임시정부 시기 3·1절의 정식 명칭은 '독립선언일'이었으며, 이날이 해마다 기념되는 민족 명절로 자리 잡는 출발점이 됨.
1919년 3월 1일 시작된 3·1운동에서 전국의 시위 군중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침. 일제가 금지한 태극기를 거리에 내건 행위 자체가 독립 의지의 표현이었고, 이를 계기로 태극기는 광복 이전까지 한국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굳어짐. 같은 해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태극기를 국기로 계승함.
민족대표들이 태화관으로 자리를 옮긴 가운데,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과 시민 앞에서 정재용이 팔각정 단상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함. 낭독이 끝나자 군중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와 서울의 만세시위가 시작됨. 이 시위를 신호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국 각지로 들불처럼 번진 3·1운동의 출발점.
민족대표 33인은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는 독립선언서를 발표함. 당일 태화관에는 29명이 모여 선언식을 진행한 뒤 일본 경찰에 연행됨. 독립운동 준비 과정에서 유림계에도 참여가 요청됐으나 곽종석의 회신이 늦어 민족대표에 합류하지 못했고, 이후 유림은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는 별도의 운동을 전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