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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조직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Catholic Priests' Association for Justice

1974년 천주교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것을 계기로 결성된, 한국 로마 가톨릭교회 일부 사제들의 사회운동 단체. "행동하는 신앙의 양심"을 표어로 내걸고 정의를 기초로 한 인간의 존엄·인권·민주화·평화·통일을 목적으로 활동. 한국 천주교회 내의 비인가 사설단체로, 교회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음.

1970~8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과 군부 독재 아래에서 유신헌법 반대운동, 긴급조치 무효화 운동, 민주헌정 회복 요구,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 규명 등 반독재 활동을 전개하고 가난한 이들의 생존권 확보 운동을 병행. 1987년 6월 항쟁 국면에서는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조작 사실을 폭로해 항쟁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 함세웅·지학순·김승훈·문정현 신부 등이 핵심적으로 참여.

민주화 이후에도 국가보안법 폐지운동, 삼성 비자금 폭로, 4대강 사업 비판, 부정선거 규탄 시국미사 등 정치·사회 현안에 지속적으로 개입한 진보적 종교운동의 대표 단체. 교회의 현실 참여가 적절한가를 두고 내부 논란과 보수 진영의 비판이 따랐으나, 한국 현대사에서 종교가 민주화·인권운동에 조직적으로 결합한 대표 사례로 평가.

16 타임라인

타임라인

16
1974 2건
52년 전

천주교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명동성모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신헌법과 비상군법회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의 〈양심선언〉을 발표함. 지학순은 유신헌법이 민주헌정을 파괴한 뒤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와 관계없이 만들어졌다며 무효라고 주장하고 자신의 군법회의 출석 거부 의사를 밝힘.

지학순이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해 구금·기소된 데 대한 천주교 사제들의 반발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됨. 이후 사제들이 공동으로 인권 회복과 민주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면서 같은 해 9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결성으로 이어짐.

천주교 사제들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순교찬미기도회를 열고 〈제1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발족과 활동을 공식화함. 선언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이 침해될 때 피해자의 편에 서서 권리 회복을 위해 저항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천명함.

앞서 9월 23일 원주에서 열린 성직자 세미나에 참석한 사제 약 300명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명칭과 지속적인 인권·민주화 활동에 합의한 뒤 공식 출범으로 이어진 것임. 이날 기도회 뒤 사제·수도자·평신도들이 명동 일대에서 가두시위를 벌이며 유신체제에 대한 공개적인 저항에 나섬.

1976 1건
50년 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사제 20여 명이 공동 집전한 명동성당 3·1절 기념미사에서 재야 인사들이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함. 이우정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윤보선·김대중·함석헌·정일형·문동환 등 10명이 서명함.

선언은 긴급조치 철폐와 민주주의 회복, 사법권 독립, 경제적 자립, 평화적 민족통일 등을 요구하며 유신체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함. 정부는 관련자들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했으며 사제단 소속 함세웅·신현봉·문정현·김승훈 등도 재판을 받음. 종교계와 정치·재야 세력이 결합한 유신체제 후반기의 대표적인 민주화운동으로 발전함.

명동성당 발표 장소
1979 1건
47년 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가톨릭농민회 청기분회장 오원춘의 납치·감금 사건을 전국에 공개하고 경찰에 사건 진상에 대한 답변을 요구함. 오원춘은 불량 감자종자 피해 농민들의 보상운동을 주도한 뒤 1979년 5월 5일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납치돼 울릉도에 감금됐다가 5월 19일 귀가했으며, 6월 13일 자신의 피해 사실을 양심선언으로 공개함.

안동교구가 사건을 조사한 뒤 사제단을 통해 전국적으로 폭로하면서 농민운동 탄압과 국가기관 개입 의혹이 사회 문제로 확대됨. 이후 관련 사제들과 가톨릭 인사들이 연행·구금되며 유신정권과 천주교회의 정면 충돌로 발전함.

1980 1건
46년 전

5·18 광주 민주화운동 현장을 목격하고 서울로 올라온 광주 남동성당 김성용 신부의 증언과 〈어느 목격자의 증언〉 문건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모임에서 약 40명의 사제에게 전달됨. 언론 통제와 계엄당국의 발표로 광주의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던 가운데 천주교 인적망을 통해 계엄군의 폭력과 시민 피해 상황이 확산되기 시작함.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도 이후 작성한 문건에서 5월 30일 사제단 모임을 통해 해당 증언이 전파됐다고 기록함. 사제단과 광주대교구 사제들은 뒤이어 관련 증언과 성명서를 국내외에 알리며 5·18 진상규명 활동에 참여함.

1987 1건
39년 전

1987년 5월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미사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성명을 발표함. 김승훈 신부가 낭독한 성명은 경찰이 발표한 고문 가담자가 2명이 아니라 5명이었으며,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과 유정방·박원택 등 대공수사 간부가 사건 축소·조작에 관여했다고 폭로함.

진실은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이부영에게 전달된 뒤, 안유 보안계장과 한재동 교도관, 재야 인사 김정남 등을 거쳐 사제단에 전해짐. 정권이 물고문 사실을 감추고 일부 경찰관만 희생양으로 내세워 사건을 종결하려 했다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확인된 것임.

폭로 직후 박종철 사건은 다시 전국적 쟁점으로 떠오름.

1989 2건
37년 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임수경의 귀환을 돕기 위해 문규현 신부를 사제단 대표 자격으로 북한에 파견했다고 발표함. 문규현은 일본과 중국 베이징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가 임수경과 합류함.

정부 승인 없이 북한을 방문한 행위였기 때문에 검찰과 공안당국은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수사하고 사제단 지도부에 대한 법적 책임도 검토함. 사제단이 민주화·인권운동을 넘어 남북 교류와 통일 문제에 직접 개입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큰 정치적 논란을 일으킴.

문규현 신부가 임수경과 함께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 대한민국으로 귀환함. 정부의 사전 허가 없이 북한을 방문한 뒤 판문점을 통해 직접 귀환한 전례 없는 사건으로 국내외의 큰 관심을 받음.

귀환 직후 문규현과 임수경은 공안당국에 연행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음. 사제단의 문규현 파견과 두 사람의 판문점 귀환은 냉전 말기 한국 사회에서 민간 통일운동의 방식과 국가보안법 적용을 둘러싼 논쟁을 확대함.

1999 1건
27년 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사제 약 40명이 전국 각 교구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함. 사제단은 국가보안법을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기본권과 정치적 자유를 억압해 온 대표적인 법률로 규정하고 폐지를 요구함.

1987년 민주화와 1989년 문규현 신부 방북 이후 사제단의 인권·통일운동이 제도 개혁 요구로 이어진 대표적인 활동임. 이후에도 사제단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요 의제로 유지했으며 2004년 국회에서 폐지 논의가 본격화되자 다시 단식기도를 진행함.

2007 1건
19년 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통해 삼성그룹이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 등을 이용해 대규모 비자금을 관리해 왔다는 의혹을 폭로함. 김용철은 자신의 명의로 관리된 것으로 주장한 자금과 금융자료 등을 근거로 제시함.

삼성은 관련 의혹을 부인했으나 김용철과 사제단은 이후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열어 정·관계 및 법조계 로비 의혹까지 추가 제기함. 논란이 확대되면서 특별검사 도입 요구가 제기됐고, 같은 해 11월 국회에서 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특별검사법이 의결되는 계기가 됨.

2008 1건
18년 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서울광장에서 '국민존엄을 선언하고 국가권력의 회개를 촉구하는 비상 시국회의 및 미사'를 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의 재협상을 요구함. 사제단은 정부가 쇠고기 협상과 촛불집회 대응 과정에서 국민의 요구를 외면했다고 비판하고 비폭력 원칙을 강조함.

미사 뒤 사제단은 십자가를 앞세워 시민들과 서울 도심을 행진하고 단식기도에 들어감.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격화되던 촛불집회에 종교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평화·비폭력 집회 기조가 다시 강조되는 계기가 됨.

2009 1건
17년 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모인 사제 약 200명이 서울 용산참사 현장에서 유가족과 시민 등 약 1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국미사를 집전함. 전국 사제 1,178명이 참여한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용산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사회적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함.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이어 이명박 정부 시기 사제단이 철거민·사회적 약자의 문제에 적극 개입한 대표적인 사건임. 같은 해 11월에는 서울광장에서 용산참사 희생자와 4대강 사업을 주제로 다시 대규모 위령미사를 개최함.

2010 1건
16년 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추기경의 궤변〉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정진석 추기경의 4대강 사업 관련 발언을 공개적으로 비판함. 정진석이 앞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입장은 4대강 사업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고 해석하자 사제단은 주교회의의 결정을 왜곡한 것이라고 반박함.

주교회의는 같은 해 3월 4대강 사업이 자연환경에 치명적 손상을 줄 위험이 있다고 우려를 표명한 상태였음. 사제단이 현직 추기경을 공개적으로 강하게 비판하면서 4대강 사업을 둘러싼 한국 천주교 내부의 견해 차이가 표면화됨.

2013 1건
13년 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이 전북 군산 수송동성당에서 '불법 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집전함. 문규현 신부를 비롯한 사제들은 국가기관의 제18대 대통령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책임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며 사퇴를 요구함.

미사 뒤 참석자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행진을 진행함. 대통령 사퇴 요구와 미사 과정에서 나온 일부 발언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보수단체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사제의 정치·사회 참여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확대됨.

2014 1건
12년 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농성하던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사제·수도자 단식기도회를 시작함. 사제단은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유가족의 요구를 반영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열흘간 단식기도를 이어감.

사제단이 민주화·노동·통일 문제에 이어 대형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문제에 조직적으로 참여한 대표적인 활동임. 같은 해 창립 40주년 행사에서도 세월호 참사를 주요 사회적 과제로 제시하며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강조함.

2023 1건
3년 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전북 전주 풍남문광장에서 '검찰독재 타도와 매판매국 독재정권 퇴진 촉구' 시국미사를 열고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함. 사제단은 윤석열 정부의 3·1절 기념사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 제3자 변제안, 한일 정상회담 등을 비판함.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사제단이 정권 퇴진을 명시적으로 요구하며 개최한 첫 시국미사임. 사제단은 미사 뒤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전국 각지에서 정기적으로 시국미사를 이어가기로 결정하면서 정부 비판 활동을 전국 단위로 확대함.

윤석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