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vent

3·1절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 모여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한국의 독립을 선언함. 같은 시각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시민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섬. 비폭력 만세 시위로 시작된 이날의 선언이 전국으로 번지는 3·1운동의 출발점.

3·1 독립선언

천도교·기독교·불교 세 종교계가 연합해 추진한 민족대표 33인은 당초 탑골공원에서 독립을 선언하려 했으나, 유혈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장소를 인사동 음식점 태화관으로 옮김. 1919년 3월 1일 오후 이곳에 모인 대표들은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만세를 부르고 스스로 일제 경찰에 연락해 체포됨.

한편 같은 날 탑골공원에는 학생과 시민 수천 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에 나섬.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의 함성은 곧 평양·의주 등 전국으로, 나아가 국외 한인 사회로까지 들불처럼 번져 거족적 항쟁으로 발전함.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사제 20여 명이 공동 집전한 명동성당 3·1절 기념미사에서 재야 인사들이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함. 이우정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윤보선·김대중·함석헌·정일형·문동환 등 10명이 서명함.

선언은 긴급조치 철폐와 민주주의 회복, 사법권 독립, 경제적 자립, 평화적 민족통일 등을 요구하며 유신체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함. 정부는 관련자들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했으며 사제단 소속 함세웅·신현봉·문정현·김승훈 등도 재판을 받음. 종교계와 정치·재야 세력이 결합한 유신체제 후반기의 대표적인 민주화운동으로 발전함.

함석헌 선언 서명자 명동성당 발표 장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기념미사 공동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