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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의 기록 13건

일자가 있는 기록은 날짜순으로,
월까지만 알려진 기록은 마지막에 모았습니다.

현재 13건 표시

01 · 토

1948년 5월 1일 제주읍 오라리 연미마을에서 가옥이 불에 탄 사건. 공식 진상조사보고서는 앞선 무장대의 우익계 인사·가족 납치와 살해, 장례식 뒤 우익청년단원들의 방화, 이어진 무장대의 청년단 추격과 경찰 출동을 구분하여 서술하고, 가옥 방화는 우익청년단원들의 행위로 판단한 내용.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김익렬 제9연대장은 현장 조사를 거쳐 경찰의 후원 아래 우익청년단체가 불을 질렀다고 판단하여 보고한 경위. 당시 경찰은 무장대 소행이라고 보고했으며, 김익렬의 조사 결과와 미군정 측 대응의 구체 경위는 그의 회고와 관계자들의 후대 증언을 함께 토대로 정리된 내용.

불타는 마을을 공중과 지상에서 촬영한 미군 영상 《제주도의 메이데이》가 남아 있는 사건. 공식보고서는 이 영상의 구성과 무장대 책임론을 강경 진압 정당화의 맥락에서 분석한 내용이며, 영상의 존재만으로 미군이 방화를 사전에 직접 지시했다는 사실까지 입증되는 것은 아닌 자료적 한계. 4월 말 협상이 이행되지 못한 과정의 중요한 사건으로, 이후 공격 명령과 지휘관 교체까지 이어진 정책 변화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경위.

04 · 화

05 · 수

대한민국의 소설가, 기자, 문학평론가 김훈.

1948년 5월 5일 제주에서 딘 군정장관, 안재홍 민정장관, 조병옥 경무부장, 송호성 경비대사령관과 김익렬 제9연대장 등이 참석한 수뇌회의. 딘 일행의 이날 제주 방문은 다음 날 기자회견을 전한 당시 신문 보도로도 확인되는 일정.

공식 진상조사보고서가 인용한 김익렬의 회고에 따르면, 김익렬은 무력에 의한 위압과 선무·귀순공작을 병용하고 무장세력과 일반 주민을 구분하며 경찰을 통합 지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입장. 조병옥의 강경 진압 주장과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에 맞서 몸싸움으로 이어졌다는 구체 경위는 김익렬의 회고 증언.

김익렬은 다음 날 제9연대장직에서 해임되고 박진경 중령으로 교체된 경과. 당시 방문 보도, 당사자의 후대 회고, 공식보고서의 정책 전환 해석을 서로 구분하여 이해해야 하는 사건.

06 · 목

1948년 5월 6일 통위부 특명 제52호에 따라 제주 주둔 국방경비대 제9연대장이 김익렬 중령에서 박진경 중령으로 교체된 인사. 후임 박진경은 중령으로 취임한 뒤 대령으로 진급한 지휘관.

김익렬이 전날 군정 수뇌회의에서 선무·귀순공작과 경찰 통합지휘를 주장하고 조병옥과 충돌한 뒤 이루어진 교체. 공식 진상조사보고서는 이를 5·10선거를 앞두고 사태를 조기에 진압하려는 군정 수뇌부의 정책 전환과 연결하여 설명한 내용. 회의 중 충돌만을 유일한 사유로 명시한 인사문서가 확인된 것은 아니며, 연대장직 해임을 군에서의 파면이나 제적으로 확대해서는 안 되는 인사 구분.

후임 박진경의 지휘 아래 진압작전이 확대되고 뒤이어 제11연대 편제로 이어진 부대 개편. 5월 6일의 연대장 교체와 이후의 부대 개편은 서로 구분되는 과정.

10 · 월

event 제주도 3개 선거구 중 2곳 무효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 실시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남한 지역에서 제헌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거가 실시됨. 남한에 배정된 200개 의석 가운데 제주 4·3의 영향으로 선거가 무효가 된 북제주 갑·을을 제외하고 198명의 의원이 선출됨. 이승만은 서울 동대문 갑구에서 당선되었고, 5월 31일 열린 국회에서 의장으로 선출됨.

소련이 위원단의 북한 입경을 거부하면서 남북 총선거가 실현되지 못하자 유엔소총회는 선거 가능 지역에서의 선거를 권고했음. 이승만과 한국민주당은 이를 지지했지만 김구·김규식 등은 분단 고착을 우려해 남북협상을 추진했고, 좌익세력도 단독선거에 반대했음. 총선거는 대한민국 정부를 구성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동시에 통일정부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치러졌음.

15 · 토

18 · 화

국회선거위원회에서는 북제주군 갑, 을의 투표가 원만히 시행되지 못하여, 군정장관에게 무효선포를 건의. 결국 무효 처리됨

  • 북제주군 갑구: 73투표구 중 31개구 투표 (등록유권자 27,560명 투표자 11,912명)
  • 북게주군 을구 -61투표구 중 32개구의 투표 (등록한 유권자 20,917명, 투표자 9,724명)

선거 후 이날까지 제주도의 선거결과만이 국회선거위원회에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고 함.

19 · 수

21 · 금

김규식, 남북협상을 마치고 귀환한 뒤 5·10 총선거에 대해 반대하지도 참여하지도 않았다는 ‘불반대·불참가’ 입장을 표명. 남한 단독정부 수립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선거를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노선과는 거리를 둠. 이후 제도권 정부 수립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김구와 함께 통일정부 수립운동을 계속함.

김규식 (우사)

26 · 수

일자 미상

1948년 5월 국제결제은행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제국은행으로부터 받은 금 가운데 벨기에·네덜란드 중앙은행에서 약탈된 것으로 밝혀진 약 3.7톤을 연합국의 통화용 금 반환위원회에 인도하기로 합의. 독일 제국은행이 금의 출처를 감추기 위해 녹여 재주조했던 사실은 종전 후 조사로 드러난 내용.

같은 과정에서 미국 당국이 BIS 자산 동결을 해제하고 1944년 브레턴우즈 회의의 BIS 청산 결의를 적용하지 않기로 합의. BIS는 전후 유럽 중앙은행 협력과 다자 결제 업무에 중심을 두며 존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