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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0월의 기록 7건

일자가 있는 기록은 날짜순으로,
월까지만 알려진 기록은 마지막에 모았습니다.

현재 7건 표시

17 · 화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국회 해산, 정당 및 정치활동 중지, 헌법 일부 조항의 효력 정지와 전국 비상계엄을 선포한 사건. 남북대화와 안보환경 변화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기존 헌정질서를 중단하고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유신체제 수립을 추진한 조치.

국회의 기능은 비상국무회의가 대행하였으며, 이후 유신헌법 국민투표와 제4공화국 출범으로 이어짐.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한 헌정사적 전환점이자 1970년대 민주화운동 확대의 배경.

박정희

18 · 수

미국 의회가 수질오염 규제 강화 법안에 대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거부권을 재의결로 뒤집어 연방 수질오염방지법 개정안(Clean Water Act)을 성립시킴. 연방정부가 오염물질의 수계 배출을 허가·규제하는 체계가 본격적으로 마련됨. 이후 미국 수질정책과 산업 배출 관리의 기본 틀이 된 전환점.

24 · 화

1972년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컴퓨터통신회의(ICCC)에서 로버트 칸이 주도한 ARPANET의 공개 시연이 진행됨. 여러 기관의 컴퓨터를 연결해 패킷 교환망의 실용성을 보여준 계기로, 24일은 회의 개막일이며 시연은 회의 기간에 걸쳐 실시됨.

1972년 10월 24일 평양에서 제3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이 시작됨. 이산가족의 생사·주소 확인과 재회 등 인도적 의제를 본격 논의했으나 남북 간 이견으로 실질적인 진전은 제한적이었음.

제3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은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평양에서 진행. 1972년 8월의 제1차 평양 회담과 9월의 제2차 서울 회담에 이은 본회담으로, 이산가족 문제를 중심으로 실질적인 논의가 이루어짐.

그러나 이산가족의 생사와 주소 확인, 상봉 추진을 위한 구체적인 실무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음.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남북대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회담.

30 · 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회보장법 개정안(P.L. 92-603)에 서명해 연방 생활보조금(SSI) 제도를 신설하고, 주정부가 SSI 수급자를 메디케이드 대상자로 연계할 수 있도록 함. 1974년 SSI 시행 이후 저소득 노인·시각장애인·장애인의 메디케이드 자격을 결정하는 핵심 경로로 자리잡음. 일부 주에는 1972년 당시보다 엄격하지 않은 기존 기준을 유지할 수 있는 선택권이 부여됨.

31 · 화

울산석유화학단지가 준공되며 나프타분해시설과 계열 공장을 연결한 국내 최초의 대규모 석유화학 일관생산체계가 확립되었다. 1967년 정부의 단지 조성계획 수립과 1968년 기공 이후 기초유분에서 합성수지·합성섬유 원료 등 유도품으로 이어지는 생산 기반이 형성되었고, 이후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대형화와 수출산업화를 가능하게 한 출발점이 되었다.

일자 미상

댄 잉걸스가 데이터 제너럴 노바에서 동작하는 스몰토크-72의 최초 인터프리터를 BASIC으로 구현함. 앨런 케이가 메시지 전달 기반 언어의 핵심을 “한 페이지 분량의 코드”로 만들 수 있다고 내기를 건 뒤, 잉걸스가 이를 실제 실행 가능한 형태로 구현한 결과물.

이 인터프리터는 1972년 10월 처음으로 3 + 4를 평가했으며, 종이 위 언어 설계에 머물던 스몰토크를 실행 가능한 시스템으로 전환한 사건. 이후 스몰토크-72는 객체와 메시지 전달을 중심으로 한 스몰토크 계열의 실제 출발점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