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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의 기록 3건

일자가 있는 기록은 날짜순으로,
월까지만 알려진 기록은 마지막에 모았습니다.

현재 3건 표시

01 · 월

연산 35만 톤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과 12개 계열 공장으로 구성된 여천석유화학단지가 완공되었다. 울산에 이어 호남권에 두 번째 대규모 생산거점이 조성되면서 국내 기초유분과 합성수지 공급 능력이 확대되었고, 한국 석유화학 산업이 복수의 대형 단지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준공식은 1979년 10월 26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박정희 대통령 피살로 연기되어 1980년 1월 29일 거행되었다.

06 · 토

폴 볼커가 1979년 10월 6일 토요일 긴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새로운 통화정책 운용 방식을 발표함. 이른바 ‘토요일 밤의 특별조치’로 불린 발표로, 연준은 연방기금금리의 일일 수준을 좁은 범위에서 관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은행 시스템의 지급준비금 공급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전환함.

볼커는 지급준비금 공급을 제약하면 단기간에 통화량 증가를 더 확실히 통제할 수 있다고 설명함. 그 대가로 시장금리의 변동폭은 커졌고, 연방기금금리는 1980년 말 약 20%까지 상승함. 이 정책 전환은 인플레이션 통제 책임을 연준이 정면으로 떠안은 결정으로, 이후 고금리·경기침체를 동반한 ‘볼커 쇼크’의 출발점이 됨.

연방준비제도 폴 볼커 당시 연준 의장

26 · 금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함. 이 사건은 이른바 10·26 사건으로, 18년간 이어진 박정희 정권의 종결과 이후 정치적 격변의 출발점이 됨.

박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