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지기 뒤 평화기도가 거리의 공개 시위로 이어짐
여름 휴지기를 마친 평화기도에 약 1천 명이 모이고, 예배 뒤 시민운동가들이 교회 앞에서 현수막을 펼침. 슈타지 요원들이 이를 빼앗는 장면이 박람회를 취재하던 서방 언론을 통해 알려짐. ‘우리는 여기에 남겠다’는 외침은 출국의 자유뿐 아니라 동독 안에서 삶과 정치를 바꾸려는 요구가 함께 존재했음을 보여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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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지기를 마친 평화기도에 약 1천 명이 모이고, 예배 뒤 시민운동가들이 교회 앞에서 현수막을 펼침. 슈타지 요원들이 이를 빼앗는 장면이 박람회를 취재하던 서방 언론을 통해 알려짐. ‘우리는 여기에 남겠다’는 외침은 출국의 자유뿐 아니라 동독 안에서 삶과 정치를 바꾸려는 요구가 함께 존재했음을 보여 줌.
경찰과 국가보안기관이 평화기도 뒤 모인 사람들을 강경하게 해산하고 다수의 참가자를 체포함. 일부는 벌금형이나 구금형을 받았으며,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후 집회에서 중요한 의제로 떠오름. 월요 시위의 ‘평화로움’은 처음부터 안전이 보장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억압의 위험 속에서 비폭력을 지키려 했다는 의미를 지님.
데즈먼드 투투와 앨런 보잭, 케이프타운 시장 고든 올리버 등이 약 3만 명의 시민과 함께 케이프타운 도심을 행진. 인종분리 선거를 둘러싼 경찰의 유혈 진압에 항의하고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을 요구한 평화 시위로, 이후 다른 도시의 대규모 평화 행진으로 이어진 민주화 전환기의 주요 사건.
다마소 페레스 프라도가 1989년 9월 14일 멕시코시티에서 사망함. 그는 피아니스트·작곡가·편곡가·밴드리더로 활동하며 1950년대 맘보의 국제적 유행을 이끈 음악가임.
가요계 은퇴를 발표한 뒤 홍콩 콜리세움에서 33회의 고별 공연을 진행함. 정상급 가수로 활동하던 시기의 음악 활동을 일단락하고 영화 활동에 집중하는 전환점이 됨.
의회도서관장이 첫 국립영화등기부 선정작 25편을 발표함. 법률로 마련한 제도가 실제 작품 목록을 선정하는 단계로 이어졌음.
최근 흥행작을 즉시 평가하는 시상식과 달리, 제작 후 적어도 10년이 지난 작품을 대상으로 시간적 거리를 두고 가치를 판단하는 방식이었음. 이후 매년 이루어지는 선정은 개별 작품에 관심을 모으는 동시에 영화유산 전체의 보존 필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음.
펜 질레트와 텔러가 각본과 주연을 맡은 코미디 《Penn & Teller Get Killed》가 개봉함. 아서 펜이 연출·제작함.
약 5천 명의 시위대가 교회 주변의 경찰 봉쇄를 뚫고 도심을 둘러싼 순환도로인 링으로 진출함. 한 장소에 머무르던 항의가 도심을 행진하는 형태로 확대되면서 더 많은 시민이 시위를 직접 보고 참여할 수 있게 됨. 이후 링은 라이프치히 월요 시위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음.
할리 베리가 에밀리 역으로 출연한 ABC 시트콤 《리빙 돌스》(Living Dolls)의 첫 방송. 모델 지망생들을 다룬 코미디에 고정 출연하며 텔레비전 연기를 시작했고, 이후 《노츠 랜딩》 등으로 방송 경력을 이어 간 인물. 장편영화 《정글 피버》에 앞선 초기 배우 활동.
뉴욕 국제현대미술센터(CICA)에서 《Yayoi Kusama: A Retrospective》가 개막함. 미국 활동 이후의 작업을 미술사적으로 재조명한 본격적인 국제 회고전으로 이후 국제적 재평가의 중요한 계기가 됨.
제인 캠피온의 장편 데뷔작 《스위티》가 호주에서 개봉함. 두 자매와 가족의 불안정한 관계를 블랙코미디와 낯선 구도로 다뤘으며, 같은 해 칸 경쟁 부문에서 소개되면서 호평과 반발을 함께 불러온 작품임.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지지 야외공연으로 확대함. 대학 총학생회·지역 단체와 함께 노래와 연극, 풍물을 결합하여 해직 교사 문제와 민주화 요구를 공연에 담음.
소극장 대화형 공연에서 대규모 사회참여 공연으로 활동 범위가 넓어진 계기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