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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여자고등학교

Jinmyung Girls' High Schoolen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에 있는 사립 여자고등학교로, 1906년 창성동에서 문을 연 진명여학교의 후신. 순헌황귀비의 교지·재정 후원과 엄준원의 설립·학교 운영, 여메례의 설립 실무 참여를 바탕으로 출발한 근대 여성교육 기관

보통과에서 중등과와 기예과로 교육과정을 넓히며 기초 교과와 외국어·과학·예체능을 함께 가르친 학교. 일제강점기 학생들의 만세운동·항일시위와 1930년대 초 농촌계몽·문자보급 활동이 이어진 여성교육의 현장

광복 뒤 중·고등학교 분리를 거쳐 1987년 중학교를 폐교하고, 1989년 창성동에서 목동의 신축 교사로 이전한 학교. ‘진덕계명’의 뜻을 교명에 담고 나혜석·김명순 등 근대 여성 문화인들의 학업과도 연결된 교육기관

17 타임라인
7 사실
33 관련 링크
진명여자고등학교

타임라인 17건 · 1906–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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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부터 1989년까지 수록 이벤트가 없는 구간 접힘
1906년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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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없음 13건

개교 기념행사를 마친 뒤 영휘원으로 향하던 진명여학교 학생들을 태운 전차가 적선동 경복궁 서쪽 굽잇길에서 탈선·전복. 차량에 탄 학생 약 120명 가운데 다수가 중경상

운전사의 급커브 감속 소홀뿐 아니라 만원 운행과 숙련 운전사 부족 등 경성전기회사의 안전관리 문제를 둘러싼 책임 논쟁. 같은 해 여름까지 학생들의 병원 치료와 학부형위원회 활동 지속

6년제 진명여자중학교를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나누고 각 과정의 수업연한을 3년으로 조정. 개편 시기는 총동창회의 『진명 100년 인물 100년』에 1950년 6월 1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1951년으로 기록

진명여자고등학교가 종로구 창성동을 떠나 양천구 목동의 신축 교사로 이전. 앞서 1987년 2월 28일 중학교를 폐교하고 고등학교 단독 체제로 전환

광주학생항일운동 2건

진명 학생들이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항일행동과 동맹휴학에 참여. 배화·중앙보육·정신 등 서울 여러 학교의 학생들도 광주 학생 지원과 일제 규탄에 동참

학생운동의 확산을 막으려는 식민 당국이 같은 날 조기 겨울방학 조치. 시위와 동맹휴학을 억제하기 위해 학교 수업을 앞당겨 중단

1월 14일 가회동에 모인 진명·숙명·이화 등 여학교 대표들이 공동 행동을 논의. 광주학생운동을 지지하고 구속학생 석방과 식민지 교육정책 철폐 등을 요구하며 운동을 준비

1월 16일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숙명·경성여자상업·협성실업 등 여러 학교와 함께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 이튿날 식민 당국의 참가 학교 휴교 조치와 경찰의 학생 검거

엄준원 1건

여성에게 신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한성부 창성동에서 진명여학교가 개교. 순헌황귀비가 교지를 지원하고 엄준원이 설립을 추진해 초대 교장을 맡았으며, 2년제 보통과에 여학생 70명이 입학

3·1운동 1건

그 외 사실들 7건

트리비아

갱신 20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