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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제플린
조직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

1968년 런던에서 결성된 영국의 록 밴드. 기타의 지미 페이지, 보컬의 로버트 플랜트, 베이스·키보드의 존 폴 존스, 드럼의 존 본햄으로 구성됨. 야드버즈 해체 뒤 지미 페이지가 잔여 공연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새 멤버를 규합한 ‘뉴 야드버즈’에서 출발해 같은 해 10월 레드 제플린으로 이름을 바꿈. 블루스에 기반한 강한 기타 리프와 존 본햄의 드럼, 어쿠스틱·포크·소울 등 다양한 요소를 결합하며 1970년대 하드 록과 앨범 중심 록 문화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침.

《Led Zeppelin》·《Led Zeppelin II》·《Led Zeppelin III》를 거쳐 〈Stairway to Heaven〉이 수록된 무제 4집과 《Physical Graffiti》로 전성기를 형성함. 싱글보다 앨범과 장시간 공연을 중시하고, 대형 스타디움 공연과 자체 레이블 스완 송을 운영하는 등 음악 제작뿐 아니라 1970년대 록 밴드의 공연·사업 방식에도 영향을 줌.

1975년 로버트 플랜트의 교통사고와 1977년 아들의 사망, 투어 중 폭력 사건 등으로 활동 후반이 흔들렸고 1980년 존 본햄의 사망 뒤 남은 멤버들이 해체를 선언함. 이후 제한적인 합동 공연과 아카이브 발매가 이어졌으며 2007년 O2 아레나 공연에서 본햄의 아들 제이슨 본햄과 함께 장시간 공연을 다시 선보임. 초기 레퍼토리의 작곡 크레딧을 둘러싼 윌리 딕슨·제이크 홈스와의 분쟁과 〈Stairway to Heaven〉 저작권 소송도 유산의 한 부분이며, 2025년에는 밴드 최초의 공식 승인 다큐멘터리 《Becoming Led Zeppelin》이 공개됨.

33 타임라인
4 사실

추가 정보

편성과 배경

결성 당시 네 멤버의 이력이 크게 달랐던 점이 사운드의 폭을 넓힌 배경. 지미 페이지는 야드버즈를 거친 세션 기타리스트로 스튜디오 관행에 익숙했고, 존 폴 존스 역시 편곡·세션 연주자로 오케스트레이션 감각을 보유. 반면 로버트 플랜트와 존 본햄은 버밍햄 지역 클럽 무대 출신으로 블루스·소울에 기반한 폭발적 연주를 담당. 매니저 피터 그랜트가 계약·투어·수익 배분을 총괄하며 밴드 측 협상력을 앞세운 운영 방식을 구축.

작품 흐름

초기 세 장은 증폭된 블루스에서 어쿠스틱·포크로 축을 넓히는 과정. 1집과 2집이 하드 록의 문법을 굳혔고, 3집에서 켈틱 포크와 어쿠스틱 편성 비중을 크게 늘림. 무제 4집은 〈Black Dog〉·〈Rock and Roll〉·〈Stairway to Heaven〉을 통해 상업적·비평적 정점을 형성. 이후 《Houses of the Holy》의 장르 확장, 더블 앨범 《Physical Graffiti》의 집대성, 《Presence》의 압축된 기타 중심 사운드, 신서사이저 비중을 키운 《In Through the Out Door》로 변화를 이어감. 해체 후에는 미발표 세션 트랙을 모은 《Coda》로 활동기 녹음을 정리함.

라이브와 산업적 실험

싱글 발매를 최소화하고 앨범과 공연으로 승부하는 전략을 고수. 세 시간을 넘기는 세트와 즉흥 확장 연주, 대형 스타디움 단독 공연으로 1970년대 아레나 록 흥행 모델을 선도. 1974년에는 전용 레이블 스완 송을 세워 자사 음반과 외부 아티스트를 함께 관리하는 구조를 시도.

논란과 유산

블루스 레퍼토리 차용과 작곡 크레딧 표기를 둘러싼 비판과 분쟁이 반복됨. 윌리 딕슨과의 〈Whole Lotta Love〉 분쟁은 1987년, 제이크 홈스와의 〈Dazed and Confused〉 분쟁은 2011년 합의로 정리됨. 〈Stairway to Heaven〉 도입부의 유사성을 다툰 소송에서는 2020년 제9연방항소법원 전원합의체가 레드 제플린 승소 평결을 유지했고, 미국 연방대법원이 같은 해 12월 재심리 청구까지 기각하면서 사법 절차가 종결됨. 2025년에는 홈스가 지미 페이지·워너 채플·소니 픽처스를 상대로 과거 합의 위반과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는 새 소송을 제기했으나 같은 해 8월 당사자들이 합의에 도달함. 과도한 투어와 사고·상실이 겹친 후반기의 혼란까지 포함해, 록 밴드의 성공과 소진을 함께 보여준 사례로 자주 인용.

타임라인

33
1968 4건
58년 전

야드버즈의 잔여 공연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지미 페이지가 로버트 플랜트·존 폴 존스·존 본햄을 규합함. 네 사람은 1968년 8월 런던 제러드 스트리트의 작은 연습실에서 처음 합주한 것으로 전해지며, 정확한 날짜는 공식 사이트도 8월 12일이 포함된 주간을 대략적인 시점으로 제시함. 새 편성은 9월 스칸디나비아 공연을 소화한 뒤 레드 제플린으로 이름을 바꿈.

지미 페이지·로버트 플랜트·존 폴 존스·존 본햄 편성이 1968년 8월 런던에서 첫 합주를 가진 뒤 스칸디나비아 투어에 나섬. 9월 7일 덴마크 글라드삭세의 틴 클럽 무대에서 네 명이 처음으로 청중 앞에 함께 연주함. 야드버즈의 잔여 공연 계약을 이행하기 위한 ‘뉴 야드버즈’ 명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새 밴드의 첫 무대.

스칸디나비아 투어 뒤 사용하던 '뉴 야드버즈' 명의를 버리고 10월 25일 레드 제플린으로 이름을 변경. 이름은 키스 문이 새 그룹 구상을 두고 '납 풍선처럼 추락할 것'이라고 농담한 일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미 페이지가 회고. 야드버즈의 잔여 계약을 수행하던 임시 명칭에서 독립된 밴드명으로 전환함.

매니저 피터 그랜트가 미국 애틀랜틱 레코드와 대형 선급금 조건의 계약을 성사. 음악적 결정권과 녹음물 편집권을 밴드 쪽에 남기는 조건을 확보해 이후 앨범 중심 전략의 기반을 마련. 데뷔 앨범이 이미 자체 비용으로 완성된 상태에서 계약이 이뤄진 점도 협상력에 작용.

1969 2건
57년 전

미국 투어 중 데뷔 앨범을 애틀랜틱 레코드를 통해 북미에 발매. 1968년 9~10월 런던 올림픽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블루스 기반 하드 록 사운드가 담기며 〈Good Times Bad Times〉·〈Dazed and Confused〉 등이 수록. 영국 발매는 같은 해 3월 28일에 이어짐.

1970 1건
56년 전

웨일스 시골 오두막 브론이어아우르 체류 중 만든 곡들을 중심으로 3집을 발매. 〈Immigrant Song〉의 강렬한 리프와 함께 켈틱 포크·어쿠스틱 편성 비중을 크게 늘려 하드 록 밴드라는 규정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보임. 발매 직후 평단 반응이 엇갈렸으나 이후 밴드의 폭을 넓힌 전환점으로 재평가.

1971 1건
55년 전

밴드명과 앨범 제목 없이 네 개의 상징 기호만 표기한 4집을 발매. 헤들리 그레인지 합숙 녹음에서 만들어진 〈Black Dog〉·〈Rock and Roll〉과 8분 길이의 〈Stairway to Heaven〉이 수록되며 어쿠스틱과 하드 록을 한 곡 안에서 잇는 구성을 제시. 상업적·비평적 정점을 이룬 앨범으로 미국에서 최다 인증 판매량을 기록한 록 음반 가운데 하나.

1973 2건
53년 전

미국에서 5집 《Houses of the Holy》를 발매하고 이틀 뒤 영국에도 출시. 〈The Song Remains the Same〉·〈No Quarter〉·〈D'yer Mak'er〉 등에서 레게·펑크·신서사이저를 끌어들여 장르 실험 폭을 넓힘. 자이언츠 코즈웨이 사진을 바탕으로 한 커버 미술로도 널리 알려진 앨범.

1973년 북미 투어 중 플로리다 탬파 스타디움 단독 공연에 5만 6,800명이 입장하고 3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기록. 1965년 비틀즈의 셰이 스타디움 공연 관중 5만 5,000명을 넘어서 단일 아티스트 미국 최다 유료 관중 기록을 경신. 스타디움 단독 흥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아레나·스타디움 록 시대의 상징적 사건으로 언급.

1974 1건
52년 전

애틀랜틱과의 기존 계약이 끝난 뒤 매니저 피터 그랜트 관리 아래 자체 레이블 스완 송을 1974년 5월 출범시킴. 5월 7일 뉴욕과 10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범 행사를 열었으며, 자사 음반과 외부 아티스트의 작품을 애틀랜틱 유통망을 통해 발매하는 구조를 마련함. 공식 자료도 레이블 출범 시점을 1974년 5월로 제시함.

1975 2건
51년 전

스완 송 레코드의 첫 자사 발매작으로 두 장 구성의 6집을 미국에서 출시. 신곡과 이전 세션의 미발표 트랙을 함께 실어 〈Kashmir〉·〈Trampled Under Foot〉·〈In My Time of Dying〉 등 폭넓은 스타일을 한 앨범에 집대성. 발매 직후 미국·영국 차트 1위에 올라 활동기의 정점을 다시 확인.

그리스 로도스섬에서 휴가 중 타고 있던 차량이 도로를 이탈하는 사고로 플랜트와 가족이 다침. 플랜트는 발목과 팔꿈치 등에 중상을 입었고 아내 모린도 크게 다쳐 예정된 투어가 연기됨. 장기간 회복하는 동안 다음 앨범 《Presence》 작업이 진행됨.

1976 1건
50년 전

플랜트의 부상 회복 기간에 단기간 집중 작업으로 완성한 7집을 발매. 어쿠스틱·건반 편성을 덜어내고 기타 중심의 건조한 사운드를 택했으며 10분 길이의 〈Achilles Last Stand〉가 대표 트랙. 투어 없이 발표된 앨범으로 밴드 후반기의 불안정한 상황이 반영된 작품으로 평가.

1977 2건
49년 전

오클랜드 앨러미다 카운티 콜리시엄의 ‘데이 온 더 그린’ 공연 뒤 프로모터 빌 그레이엄 측 직원이 백스테이지에서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함. 이후 매니저 피터 그랜트, 드러머 존 본햄, 투어 매니저 리처드 콜, 경호원 존 빈던이 사건과 관련해 체포됨. 밴드는 다음 날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공연했으나 이후 미국에서 다시 공연하지 않음.

뉴올리언스로 이동하던 중 로버트 플랜트가 다섯 살 아들 카락이 위장 질환으로 숨졌다는 소식을 접함. 남은 미국 일정 열 차례 공연이 전면 취소되며 밴드는 2년 가까이 무대에 서지 않음. 직전 오클랜드 공연이 결과적으로 미국에서의 마지막 무대가 되며 활동 후반기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남음.

1979 2건
47년 전

아들을 잃은 뒤 약 2년, 영국 공연으로는 4년 만에 네브워스 하우스 야외 무대에 복귀. 8월 4일과 11일 두 차례 헤드라이너로 출연함. 결과적으로 해체 전 밴드가 영국에서 가진 마지막 공연으로 남음.

스웨덴 폴라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8집을 스완 송 레코드로 발매. 존 폴 존스의 신서사이저·키보드 비중이 크게 늘고 라틴 리듬과 팝적 편곡이 도입되어 이전 앨범들과 뚜렷이 다른 질감을 형성. 여섯 종의 서로 다른 커버를 갈색 종이봉투에 넣어 유통한 패키지로도 화제를 모으며 미국·영국 차트 1위 기록.

1980 2건
46년 전

본햄 사망 두 달여 뒤 남은 세 멤버와 매니저가 공식 성명을 내고 활동 종료를 선언. 새 드러머를 들여 활동을 잇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1968년 결성 이후 12년의 활동이 마무리. 멤버 교체로 명맥을 유지하는 관행과 달리 원 편성의 완결성을 택한 결정으로 자주 인용.

1982 1건
44년 전

해체 이후 계약 정리와 아카이브 정돈을 겸해 1969년부터 1978년 사이 정규 앨범에 실리지 않았던 녹음을 모은 《Coda》를 발매함. 본햄의 드럼 솔로 〈Bonzo's Montreux〉를 비롯한 미발표 세션 트랙이 수록됨. 밴드 해체 이후 레드 제플린 명의로 정리된 첫 주요 아카이브 앨범.

1985 1건
41년 전

필라델피아 JFK 스타디움에서 열린 자선 공연에 페이지·플랜트·존스가 함께 올라 해체 후 첫 합동 무대를 가짐. 필 콜린스와 토니 톰프슨이 드럼을, 폴 마티네즈가 베이스를 맡아 〈Rock and Roll〉·〈Whole Lotta Love〉·〈Stairway to Heaven〉을 연주. 리허설 부족으로 연주가 흐트러져 멤버들 스스로 실패한 무대로 회고했고, 이후 오랫동안 공식 영상 공개를 꺼린 계기.

1987 1건
39년 전

윌리 딕슨이 자신의 곡 〈You Need Love〉와 레드 제플린의 〈Whole Lotta Love〉 사이의 가사 유사성을 문제 삼아 1985년 제기한 저작권 소송이 법정 밖 합의에 도달함. 합의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으며, 이후 후속 발매물에서 딕슨의 작곡 크레딧이 추가됨. 법원 기록상 소송은 같은 해 9월 최종적으로 정리됨.

1995 1건
31년 전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에서 열린 제10회 헌액식에서 공연자 부문으로 이름을 올림. 에어로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와 조 페리가 헌액사를 맡고, 페이지·플랜트·존스와 본햄의 자녀 제이슨·조이가 함께 무대에 오름. 블루스·켈틱 포크·소울을 결합해 록의 틀을 넓힌 공적이 헌액 사유로 제시.

2007 1건
19년 전

애틀랜틱 레코드 공동 창업자 아메트 어티건을 추모하는 자선 공연의 헤드라이너로 나서 1980년 해체 이후 처음으로 약 두 시간 규모의 레드 제플린 세트를 공연함. 드럼은 존 본햄의 아들 제이슨 본햄이 맡아 열여섯 곡을 연주함. 한 차례의 공연이었지만 2천만 건이 넘는 티켓 신청이 몰리며 밴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줌.

2011 1건
15년 전

제이크 홈스가 2010년 〈Dazed and Confused〉의 저작권 침해와 작곡 크레딧 문제를 제기하며 소송을 낸 뒤 지미 페이지와 법정 밖 합의에 도달함. 이후 레드 제플린의 관련 발매물에는 홈스의 원곡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나타내는 수정 크레딧이 사용되기 시작함.

2012 2건
14년 전

2007년 O2 아레나 공연을 담은 콘서트 영화를 전 세계 극장에서 한정 상영. 같은 해 11월 음반·영상 매체로도 발매되며 재결합 무대의 전곡 실황이 정식 공개. 밴드가 직접 관리해 온 공연 기록을 대중에게 내놓은 사례로 이후 아카이브 발매 흐름과 이어짐.

워싱턴 D.C.에서 열린 2012년 케네디 센터 명예상 행사에서 레드 제플린이 버디 가이, 더스틴 호프먼, 데이비드 레터맨, 나탈리아 마카로바와 함께 수훈 대상으로 선정됨. 생존 멤버 지미 페이지·로버트 플랜트·존 폴 존스가 참석했으며, 헌정 공연에서 레드 제플린의 음악이 연주됨.

2016 1건
10년 전

스피릿의 기타리스트 랜디 캘리포니아 유산 관리인이 2014년 제기한 소송의 로스앤젤레스 연방지방법원 배심 재판이 마무리. 배심원단은 〈Stairway to Heaven〉 도입부가 1968년 기악곡 〈Taurus〉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 1909년 저작권법 아래 등록 악보만 보호 대상이 되는지, 유사성을 어떻게 판단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다뤄짐.

2020 2건
6년 전

제9연방항소법원 전원합의체가 2016년 배심 평결을 그대로 인정해 레드 제플린 측의 승소를 유지함. 1909년 저작권법 아래 보호 범위를 등록 악보에 한정하고, 접근 가능성이 높을수록 유사성 입증 기준을 완화하던 ‘역비례 규칙’을 폐기함. 이후 원고 측이 연방대법원에 상고 허가를 신청해 분쟁 자체는 아직 최종 종결되지 않은 상태였음.

미국 연방대법원이 2020년 10월 5일 원고 측의 상고 허가 신청을 거부한 뒤, 원고가 다시 낸 재심리 청구도 12월 7일 기각함. 이에 제9연방항소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그대로 유지되며 2014년 제기된 〈Stairway to Heaven〉 저작권 분쟁의 사법 절차가 종결됨.

2025 2건
1년 전

버나드 맥마흔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Becoming Led Zeppelin》이 북미 IMAX에서 개봉함.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가 레드 제플린 결성 이후 처음으로 밴드의 공식 승인을 받은 영화라고 밝힌 작품으로, 멤버 인터뷰와 미공개 공연·아카이브 자료를 이용해 결성과 초기 활동을 다룸. 2월 14일 북미 일반 상영관으로 확대 개봉함.

제이크 홈스가 2025년 5월 지미 페이지·워너 채플·소니 픽처스를 상대로 2011년 합의 위반과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함. 홈스 측은 야드버즈 시절 실황 음원과 다큐멘터리 《Becoming Led Zeppelin》에서 〈Dazed and Confused〉가 적절한 크레딧·보상 없이 사용됐다고 주장함. 8월 1일 당사자들이 연방법원에 분쟁 해결에 합의했다고 알렸으며 구체적인 합의 조건은 공개되지 않음.

그 외 사실들

발언

  • "우리의 소중한 친구를 잃은 일과 그 가족에 대한 깊은 존중, 그리고 우리 자신과 매니저가 느끼는 온전한 화합의 감각이,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는 계속할 수 없다는 결정에 이르게 했음을 알리고자 함."

    1980년 12월 4일 발표된 해체 성명. 새 드러머 영입 대신 활동 종료를 택한 근거로 인용

    1980년 12월 4일 | 출처: 레드 제플린 공식 웹사이트

기록

  • 미국 음반산업협회가 2021년 11월 8일 《Led Zeppelin IV》를 24배 멀티플래티넘 앨범으로 인증함.

    2021년 11월 8일 | 출처: RIAA Gold & Platinum — Led Zeppelin
  • 2007년 O2 아레나 재결합 공연 티켓에 약 2천만 건의 온라인 신청이 몰려 단일 음악 공연 최고 티켓 수요 기록으로 집계.

    2007년 12월 10일 | 출처: Guinness World Records
  • 로큰롤 명예의 전당은 헌액 사유로 블루스·켈틱 포크·소울·모달 리프를 결합해 록의 틀을 확장하고, 헤비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록, 연극적 스타디움 공연 문화의 길을 연 점을 제시.

    1995년 | 출처: Rock & Roll Hall of F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