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창건과 함께 흥례문 전신 건립
1395년 경복궁 창건 당시 정전 남쪽에 오문 3칸과 행랑, 뜰의 석교가 마련됨. 흥례문으로 이어지는 문의 기원에 해당하며, 당시의 배치는 《태조실록》에 기록됨.
서울 경복궁에서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에 자리한 중문이자 외전으로 들어가는 문. 궁궐 중심축을 따라 근정전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안쪽의 영제교·금천과 주변 행각이 함께 이루는 의례 공간의 입구. 정면 3칸·측면 2칸의 중층 목조 문루에 다포 공포와 우진각지붕을 갖춘 건축물.
1395년 경복궁 창건 때 세워진 문에서 비롯되어, 1426년 세종 때 홍례문(弘禮門)이라는 이름을 얻은 유산.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고종 때 경복궁 중건과 함께 다시 세워졌으며, 이 과정에서 현재의 흥례문(興禮門)으로 이름 변경.
일제강점기 조선물산공진회 준비와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 과정에서 문과 행각·금천 주변이 훼철된 공간. 문이 사라진 터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들어서면서 궁궐 중심부의 경관과 공간 질서도 크게 변형됨. 총독부 청사 철거 뒤 진행된 복원사업으로 흥례문·행각·유화문·기별청·영제교 등이 제자리를 되찾고, 2001년 10월 26일 낙성식을 거행함.
현재의 흥례문은 조선시대 목조 건물 자체가 그대로 남은 것이 아니라 문헌과 옛 모습에 관한 자료를 토대로 복원한 건물. 광화문에서 근정문으로 이어지는 궁궐의 공간 질서를 회복한 사례이자, 식민지기의 훼손과 현대 문화유산 복원의 역사를 함께 보여 주는 장소.
1395년 경복궁 창건 당시 정전 남쪽에 오문 3칸과 행랑, 뜰의 석교가 마련됨. 흥례문으로 이어지는 문의 기원에 해당하며, 당시의 배치는 《태조실록》에 기록됨.
세종이 집현전 수찬에게 경복궁 문과 다리의 이름을 정하도록 하여 근정전 앞 둘째 문을 홍례문, 셋째 문을 광화문으로 명명함. 근정문 앞 석교에도 영제라는 이름을 부여함.
1592년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면서 궁성의 정문인 광화문과 그 안쪽 중문인 홍례문도 소실됨. 궁궐의 남쪽 출입·의례 공간이 함께 훼손된 사건으로, 이후 약 270년 동안 본격적인 중건이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고종 대에 복구됨.
1865년 시작한 고종 대 경복궁 중건을 통해 1867년 주요 전각과 출입 공간의 재건을 마무리함. 광화문은 궁성과 함께 이른 시기에 공사를 진행하여 1865년 상량하였으며, 그 앞에 월대를 조성함.
안쪽의 흥례문과 주변 행각도 다시 세워 금천과 영제교를 품은 마당을 구성하고, 광화문에서 근정문으로 이어지는 의례 동선을 회복함. 이 중건 과정에서 중문의 이름을 홍례문에서 흥례문으로 바꿈.
1915년 9~10월 경복궁에서 식민 통치의 성과를 선전하는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함. 행사 준비 과정에서 흥례문 권역 등 궁궐 건물들을 해체하여 전시 공간으로 전용한 사건. 흥례문 권역의 훼철은 1916년 이후 같은 자리에 진행된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과 구분되는 과정.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맞아 옛 조선총독부 청사 첨탑부터 철거를 시작함. 흥례문 권역을 차지하던 청사를 해체하여 궁궐 중심부의 전통 건축과 공간을 복원하기 위한 기반 마련.
경복궁 복원정비 제3단계인 흥례문 권역 복원사업을 시작함. 흥례문과 주변 행각·유화문·기별청, 영제교와 어구를 함께 복원하는 사업으로 2001년까지 추진됨.
2001년 10월 26일 흥례문 권역 복원을 마무리하고 낙성식을 거행함. 흥례문과 주변 행각·유화문·기별청 등 건물 6동 및 영제교·어구를 복원하여 광화문에서 근정문으로 이어지는 궁궐 중심 공간을 회복한 사업.
조선물산공진회 준비와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 과정에서 훼손된 권역을 총독부 건물 철거 후 다시 조성한 결과. 경복궁 복원정비사업의 제3단계 완공을 알리는 이정표.
흥례문의 옛 이름 홍례문에서 ‘홍(弘)’을 ‘흥(興)’으로 바꾼 까닭은 청나라 건륭제의 이름 홍력(弘歷)을 피하기 위한 피휘. 고종 대 중건 과정에서 영건도감이 건의하여 채택한 명칭.
흥례문은 근정문과 규모·양식이 같다고 기록된 문. 2001년 복원에서는 《궁궐지》 등의 기록과 현존하는 근정문을 건축 형태를 되살리는 근거로 활용함.
영제교의 석재는 일제강점기 해체 후 여러 곳으로 옮겨졌다가 복원에 사용된 부재. 1950년대 수정전 앞과 1970년대 건춘문 안쪽을 거쳐 2001년 흥례문 안 원래 자리로 복귀.
흥례문 안마당은 근정전 의례 참석자들이 대기하고 조참에 참여하던 공간. 문관은 동쪽, 종실과 무관은 서쪽에 자리하고, 품계에 따라 금천의 남북을 달리 사용한 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