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 올드리치 록펠러·릴리 P. 블리스·메리 퀸 설리번이 발의해 1929년 뉴욕에 근대미술 전문 미술관을 설립함. A. 콩거 굿이어를 초대 회장, 알프레드 H. 바 주니어를 초대 관장으로 두고, 5번가 헥셔 빌딩의 임대 공간에서 월스트리트 대폭락 9일 뒤인 11월 7일 일반에 개관. 유럽 모더니즘을 전문으로 내건 맨해튼 최초의 미술관으로, 이후 근현대 미술 제도의 출발점이 됨.
뉴욕 현대 미술관 (MoMA)
1929년 뉴욕에서 개관한,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의 근현대 미술을 전문으로 수집·전시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관 중 하나. 회화·조각·드로잉·판화·사진·건축·디자인·영화·미디어 등 폭넓은 매체에 걸쳐 20만여 점을 소장하며,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 등 근대미술의 정전(canon)을 이루는 걸작을 보유. 미드타운 맨해튼 53번가에 위치.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릴리 P. 블리스·메리 퀸 설리번 세 후원자가 1929년 발의하고 록펠러 가문이 오랜 기간 후원했으며, 초대 관장 알프레드 H. 바 주니어가 회화·조각뿐 아니라 건축·디자인·사진·영화까지 미술관의 정식 영역으로 끌어들임. 바가 근대미술을 여러 '이즘(ism)'의 계보로 체계화한 서사는 20세기 내내 '근대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표준 narrative로 작동하며 전 세계 미술관과 미술사 서술에 깊은 영향.
《근대 건축: 국제전》(1932)으로 '국제 양식'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인류 가족》(1955)·피카소 대회고전(1980) 등 기념비적 전시로 대중적 영향력을 확대. 다만 높은 입장료와 블록버스터 전시·부동산 개발로 상징되는 상업화, 인접 건물 철거를 둘러싼 건축계 반발, 이사진의 윤리 논란, 직원 노동 쟁의 등으로도 비판받아 온, 근현대 미술의 형성과 제도화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
타임라인
25개관과 함께 후기인상주의 거장 4인의 작품만으로 첫 전시를 구성함. 전적으로 대여 작품으로 꾸려졌고 47,293명이 관람하며 큰 호응을 얻음. 동시대 화가들이 특히 존경한 화가들을 골랐다는 초대 관장 바의 기획 의도가 드러난, 미술관의 방향을 예고한 첫 전시.
공동 설립자이자 손꼽히는 근대미술 수집가였던 블리스가 1931년 세상을 떠나며 세잔·쇠라·고갱 등 약 150점을 미술관에 유증함. 이 '릴리 P. 블리스 유증'은 MoMA 영구 컬렉션의 핵심 토대가 됨.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도 훗날 이 유증 기금으로 입수된, 미술관 소장품 형성의 결정적 계기.
헨리-러셀 히치콕과 필립 존슨이 기획해 1920년대 유럽 모더니즘 건축을 소개함. 이 전시에서 '국제 양식(International Style)'이라는 용어가 처음 공식화되어 건축 사조로 정착. 같은 해 세계 최초의 미술관 건축·디자인부가 신설되어, 건축과 디자인을 미술관의 정식 수집 영역으로 끌어들인 분기점.
1935년 미국 미술관 최초로 영화를 수집·연구·상영하는 부서를 세움. 제작자 존 헤이 휘트니가 초대 위원장을, 영화비평가 아이리스 배리가 초대 큐레이터를 맡아 약 8천 편의 컬렉션을 구축. 영화를 정식 예술 장르로 다룬 선구적 시도로, 1937년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표창을 받음.
초대 관장 바가 기획해 추상미술의 흐름을 통사적으로 정리함. 도록 표지에 후기인상주의에서 여러 '이즘'으로 갈라지는 추상미술의 계보를 그린 '바의 다이어그램'을 실어, 근대미술을 선형적 계보로 서술하는 관점을 제시. 같은 해 《환상미술, 다다, 초현실주의》전과 더불어 MoMA식 근대미술 narrative를 각인시킨 전시.
공동 설립자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의 아들 넬슨 록펠러가 1939년 30세에 회장으로 취임함. 화려한 추진력으로 미술관의 홍보·작품 수집·신관 확장을 주도. 1932년부터 이사로 관여했고 1946–1953년 다시 회장을 맡았으며, 훗날 뉴욕 주지사와 미국 부통령을 지낸 인물.
필립 굿윈과 에드워드 듀렐 스톤이 국제 양식으로 설계한 53번가 신축 건물을 1939년 5월 10일 개관함. 백색 대리석과 유리 외벽의 6층 건물로, 주변 타운하우스들과 뚜렷이 대비되는 모더니즘 건축. 개관식에는 6,000여 명이 모였고 백악관에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라디오로 축사를 보낸, 미술관의 현 위치 정착을 알린 사건.
초대 관장 바가 주도하고 시카고 미술관과 공동으로 피카소 40년의 작업을 망라함. 피카소를 당대 최고의 예술가로 자리매김시키며 이후 MoMA 회고전의 전형을 세움. 한 작가에 대한 재해석을 제도적으로 각인시킨, 국제적 주목을 받은 전시.
보몬트 뉴홀이 1940년 사진을 독립된 예술로 다루는 부서를 세움. 이후 에드워드 스타이컨(1947–1961)·존 자코우스키(1962–1991) 등이 이끌며 세계 최고 수준의 사진 컬렉션으로 성장. 사진을 미술관 미술의 정식 영역으로 끌어올린, 사진사적으로 중요한 제도화.
1941년 릴리 P. 블리스 유증 기금으로 반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1889)을 입수함. 미술관 컬렉션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소장품 중 하나가 됨. 설립 후원자의 유증이 어떻게 영구 컬렉션의 핵심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사진부장 에드워드 스타이컨이 68개국에서 모은 사진 503점으로 인류 보편의 삶을 주제로 기획함. 전 세계를 8년간 순회하며 9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사진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전시 중 하나. 200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됨.
1958년 4월 15일 2층에서 에어컨 설치 작업 중 시작된 화재로 약 5.5m 길이의 모네 《수련》이 소실됨. 작업자 1명이 숨지고 여러 소방관이 연기를 들이마셔 치료를 받음. 3·4층의 작품들은 인접한 휘트니 미술관으로 대피시킨, 미술관 안전사에 남은 사건.
1969년 미술노동자연합(Art Workers Coalition)과 함께 베트남전 미라이 학살을 고발하는 반전 포스터 《And Babies》를 제작·배포하기로 했으나, 완성된 포스터를 본 뒤 막판에 자금 지원을 철회함. 미술관의 정치적 보신주의를 둘러싼 비판을 불러온 사건으로, 미술 기관과 사회·정치적 책임의 긴장을 드러냄.
큐레이터 윌리엄 루빈이 기획해 설립 50주년을 기념하며 53번가 본관 전체를 단일 작가에게 할애한 사상 첫 전시. 100만 명 이상이 찾아 보안 인력을 대폭 늘리고 온습도 조절용 급수탑까지 증설할 정도의 대성공. 미술관 '블록버스터 전시' 시대를 연, 미술관 운영의 상업화·대중화를 상징하는 전시.
1984년 건축가 시저 펠리의 설계로 갤러리 면적을 약 2배로 넓힌 증축을 완료함. 미술관 위로 주거용 고층 건물 '뮤지엄 타워'를 함께 올려 그 분양 수익으로 확장 자금을 충당. 미술관이 부동산 개발과 결합한 운영 모델을 선보인 사례이자, 조각 정원에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비판도 받음.
1984년 윌리엄 루빈과 커크 바네도가 기획해 근대 거장의 작품과 아프리카·오세아니아 부족미술 약 200점을 나란히 전시함. 비서구 미술을 맥락·의미를 지운 채 모더니즘에 끼친 '영향'으로만 다뤘다는 형식주의·서구중심주의 비판을 받음. 토머스 매커블리의 비평 등으로 미술 제도의 식민주의적 시각을 둘러싼 논쟁을 촉발.
뉴욕 현대미술관과 P.S.1 현대미술센터가 기관 차원의 제휴·통합 계획을 발표함. 양측은 약 10년에 걸친 통합 절차를 통해 P.S.1의 독립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MoMA의 기획, 홍보, 회원, 출판, 모금 역량을 결합하기로 함. 이 제휴는 2000년 1월 공식화됐고, 이후 P.S.1은 MoMA의 현대미술 실험 공간으로 자리 잡음.
2000년 전문·행정직원 노조 PASTA(UAW Local 2110) 소속 약 250명이 단체협약 협상 중 134일간 파업에 들어감. 노조 안정 조항(agency shop) 확보를 핵심 쟁점으로 9월 9일 합의로 마무리. 미술관 노동 환경과 직원 처우를 둘러싼 갈등을 드러낸 대표적 노동 쟁의.
2004년 11월 20일 일본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오의 설계로 면적을 약 2배(63만 ft²)로 넓힌 증축을 마치고 설립 75주년에 맞춰 재개관함. 8억 5,800만 달러 규모의 모금으로 진행됐고 데이비드 록펠러가 현금 7,700만 달러를 기부. 다만 성인 입장료가 12달러에서 20달러로 올라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술관 입장료로 상업화 비판을 받음.
뉴욕 현대미술관 MoMA와 P.S.1이 영화·사진·설치를 아우르는 대규모 전시 《Abbas Kiarostami: Image Maker》를 개최함. 미국에서 조직된 가장 포괄적인 키아로스타미 전시로, 그의 작업이 영화관을 넘어 미술관의 맥락에서도 해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줌.
2000년 제휴 10주년에 맞춰 2010년 합병을 완료하고 P.S.1 현대미술센터를 'MoMA PS1'로 공식 개칭함. 롱아일랜드시티의 현대미술 거점을 MoMA 체제에 통합. 근대미술관과 현대미술 현장을 잇는 자매 기관 관계를 제도적으로 확정.
2011년 매입한 인접 건물(2001년 톰 윌리엄스·빌리 치엔 설계로 완공)을 2014년 1월 확장을 위해 철거하기로 결정함. 완공된 지 13년밖에 안 된 호평받던 건물을 허무는 결정에 건축계가 강하게 반발. 철거 부지 옆에는 장 누벨 설계의 초고층 럭셔리 콘도 '53 웨스트 53'이 들어선, 확장과 부동산 개발을 둘러싼 대표적 논란.
2019년 10월 21일 5년·4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증축·개조를 마치고 재개관함. 갤러리 면적을 약 3분의 1 늘려 16.6만 ft²로 확대하고, 철거된 포크아트 미술관 자리에 데이비드 게펜 윙을 새로 마련. 소장품 전시를 매체·지역·성별을 가로질러 다시 짜는 큰 재구성을 함께 단행.
2018년 MoMA 이사회 의장에 오른 사모펀드 거물 리언 블랙이,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거액(약 1억 5,800만 달러)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며 거센 비판을 받음. 아이 웨이웨이 등 작가 150여 명이 사퇴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하고 'Strike MoMA' 시위가 이어진 끝에 2021년 7월 1일 의장 연임을 포기. 미술관 후원·지배구조의 윤리를 둘러싼 논쟁을 상징하는 사건.
그 외 사실들
기록
회화·조각·드로잉·판화·사진·건축·디자인·영화·미디어 등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의 작품 20만여 점을 소장하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근대·현대 미술관 중 하나로 평가됨.
논란
2004년 재개관 때 성인 입장료를 12달러에서 20달러로 올린 데 이어 현재 30달러로, 미국에서 가장 비싼 미술관 중 하나. 블록버스터 전시·디자인 스토어·인접 부지의 럭셔리 콘도 개발 등과 맞물려 미술관의 과도한 상업화라는 비판이 이어짐.
프랜시스 스토너 손더스 등은 냉전기 MoMA가 추상표현주의를 '자유세계'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미국 CIA의 문화 선전에 이사진·재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평가함. 미술관과 냉전 정치·이데올로기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의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