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 자유대학 연설을 통해 정부 차원의 남북 경제협력과 한반도 평화 정착, 이산가족 문제 해결, 당국 간 대화를 제안함. 민간 교류를 넘어 남북 당국이 직접 협력할 용의를 공개적으로 밝힌 구상이었음.
이 제안은 뒤이어 추진된 특사 접촉과 정상회담 준비의 배경이 되었음. 3월의 베를린 선언은 김대중의 대북 제안이며, 6월 두 정상이 공동으로 발표한 6·15 남북공동선언과는 다른 문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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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 자유대학 연설을 통해 정부 차원의 남북 경제협력과 한반도 평화 정착, 이산가족 문제 해결, 당국 간 대화를 제안함. 민간 교류를 넘어 남북 당국이 직접 협력할 용의를 공개적으로 밝힌 구상이었음.
이 제안은 뒤이어 추진된 특사 접촉과 정상회담 준비의 배경이 되었음. 3월의 베를린 선언은 김대중의 대북 제안이며, 6월 두 정상이 공동으로 발표한 6·15 남북공동선언과는 다른 문서임.
로버트 드 니로가 제64회 칸영화제 장편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함. 5월 11일부터 22일까지 열린 영화제에서 국제 심사위원단을 이끌고 경쟁작의 수상 결과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음.
제77회 칸 영화제 폐막식에서 조지 루카스가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함. 영화제는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를 비롯한 대중영화의 영향력, 제작과 기술 혁신에 남긴 공헌을 기렸으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상을 전달함. 그해 경쟁작 중 한 편에 주어지는 황금종려상이 아니라 영화인 개인의 장기적 공로를 기리는 명예상이었음.
1992년 칸 영화제에서 영화 경력 전체에 대한 로베르토 로셀리니상을 수상함. 특정 작품의 수상이 아니라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경력에 수여된 상으로 기록됨.
《비열한 거리》가 1974년 칸 감독주간에서 상영됨. 마틴 스콜세지와 로버트 드 니로는 이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처음 칸을 방문함. 공식 경쟁부문 수상이나 작품의 최초 개봉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 병행 행사인 감독주간의 초청 상영이었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72회 칸 영화제 장편 경쟁부문 황금종려상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함. 한국 장편영화가 칸 영화제의 최고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였음. 2013년 문병곤의 《세이프》가 받은 단편 황금종려상과는 부문을 구분할 필요가 있음.
임권택 감독이 조선 후기 화가 장승업의 삶과 예술적 열정을 다룬 《취화선》으로 제55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함. 《펀치 드렁크 러브》의 폴 토머스 앤더슨과 공동으로 받은 상이었음. 최민식의 장승업 연기와 한국 회화·풍경을 결합한 작품으로, 한국 감독이 칸 장편 경쟁부문 감독상을 처음 받은 이정표가 됨.
이냐리투의 장편 데뷔작 《아모레스 페로스》가 2000년 5월 칸 국제비평가주간에서 상영되고 대상을 수상함. 멕시코시티의 여러 삶을 교차시키는 이야기가 국제적으로 주목받으며 감독과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을 알리는 계기가 됨. 5월 14일은 첫 상영일로 알려져 있으며, 수상일과 혼동하지 않도록 이 사건은 월 단위로 표시함.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제53회 칸영화제 공식 장편 경쟁부문에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음. 판소리 《춘향가》의 소리와 춘향·이몽룡의 이야기를 영화적 장면으로 결합했으며, 이효정과 조승우가 주연을 맡음. 한국 장편영화의 칸 경쟁부문 첫 진출로, 임권택의 전통예술 탐구가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는 계기가 됨.
《용쟁호투》 복원판이 제61회 칸 영화제 칸 클래식 부문에 선정돼 시네마 드 라 플라주에서 야외 상영됨. 워너 스튜디오 특별 프로그램의 하나로 공개됐으며, 칸 영화제가 작품을 복원 프린트 상영작으로 소개함.
개봉 35년 뒤 《용쟁호투》가 세계적인 고전영화 복원·재상영 프로그램에 포함되면서, 대중적 무술 영화를 넘어 보존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음.
제2차 세계대전으로 1939년 개최가 무산됐던 국제영화제가 전후 프랑스 칸에서 처음 정식 개막함. 19개국이 참여한 행사로 출발해 세계 영화인들이 다시 만나 작품을 교류하는 자리가 됨. 전쟁 전의 창설 구상과 실제 첫 개최를 구분할 때 기준이 되는 날짜임.
새로 지어진 팔레 데 페스티발 에 데 콩그레가 영화제의 중심 공간이 됨. 늘어난 상영·취재·시장 활동을 수용하는 시설 변화였으며, 뤼미에르 대극장과 붉은 계단은 영화제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음.
질 자코브의 집행위원장 취임과 함께 여러 프로그램이 ‘주목할 만한 시선’으로 정비되고 데뷔 장편을 위한 황금카메라상이 만들어짐. 전자는 공식 선정의 한 부문이며, 후자는 공식 선정·비평가주간·감독주간의 첫 장편을 가로질러 심사하는 상임. 서로 다른 제도를 구분해야 칸의 신인 발굴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음.
1968년의 위기 이후 감독들이 주도한 독립 병행 행사 감독주간이 처음 열림. 피에르앙리 들로가 이끈 첫 행사는 ‘자유로운 영화’라는 방향 아래 폭넓은 작품을 소개함. 공식 선정과 별개의 통로가 생기면서 칸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의 범위가 확장됨.
프랑스의 학생·노동자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영화인들이 연대를 요구하고 심사위원 사임과 출품작 철회가 겹치면서 영화제가 중단됨. 그해 경쟁부문 수상작은 선정되지 않았음. 영화가 사회 현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축제 운영 자체를 바꾼 사건이었음.
프랑스 영화비평가들이 신진 영화인을 소개하는 비평가주간을 시작함. 전년 셜리 클라크의 《커넥션》 상영에 대한 반응을 계기로 새로운 영화에 독자적인 소개 공간을 마련한 것임. 공식 경쟁부문과는 다른 선정 주체를 가진 병행 행사라는 점이 중요함.
칸 영화제 주변에서 이루어지던 영화 거래가 영화시장인 마르셰 뒤 필름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함. 작품을 감상하고 평가하는 축제와 제작·판매·배급을 연결하는 시장이 나란히 성장하면서, 칸은 예술적 인정과 국제 유통이 만나는 장소가 됨.
칸시의 문장에 쓰인 종려나무를 형상화한 황금종려상이 도입되고 델버트 맨의 《마티》가 첫 수상작이 됨. 최고상의 시각적 상징을 확립한 변화였음. 다만 이 명칭이 이후 계속 유지된 것은 아니며, 1964~1974년에는 그랑프리로 돌아갔다가 1975년 복원됨.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통상적인 형태의 영화제가 열리지 못한 가운데 56편의 장편 공식 선정작을 발표함. 경쟁부문을 정상 개최했다는 뜻이 아니라, 선정작의 극장 개봉과 다른 영화제 상영을 지원하기 위해 칸 2020 명칭을 부여한 조치였음. 영화제의 역할이 현장 행사뿐 아니라 작품을 관객에게 연결하는 일에도 있음을 보여줌.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신애를 연기한 전도연이 제60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음. 한국 영화의 국제적 성취가 감독과 작품의 평가를 넘어 배우의 연기에도 이어진 사례였음. 장편 경쟁부문 연기상이며 영화 자체에 수여되는 황금종려상과는 구별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