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선경그룹이 주력사 유공의 사명을 'SK'로 바꾸는 동시에 그룹명을 '선경그룹'에서 'SK그룹'으로 변경함. 1953년 선경직물에서 출발한 그룹이 통신·에너지 중심의 현대적 기업집단으로 정체성을 새로 세운 전환점. 이로써 SK텔레콤·SK 등 'SK' 통합 브랜드 체계가 자리 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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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8월 20일 노태우 정부 시절 선경그룹이 컨소시엄을 통해 정부의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됨. 그러나 최종현 회장이 노태우 대통령의 사돈이라는 점을 들어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선후보 등이 '사돈 특혜' 의혹을 강하게 제기함. 거센 여론에 밀려 선경은 선정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고, 뒷날 제2이동통신 신규 진입 대신 한국이동통신 민영화 인수로 방향을 틀게 됨.
1980년 말 선경그룹이 정부로부터 국내 최대 정유 공기업이던 대한석유공사(유공)의 경영권과 미국 걸프사 보유 지분 50%를 인수함. 당시 유공은 매출 1조 원이 넘는 국내 1위 기업으로, 매출 2천억 원대의 선경이 자기보다 다섯 배 큰 회사를 삼킨 '새우가 고래를 삼킨' 인수로 평가됨. 정부는 산유국 네트워크를 통한 원유 확보력과 자금 조달 능력을 높이 사 선경을 인수자로 결정했으나, 한편으로는 신군부 실세 개입설 등 특혜 의혹도 따라붙음.
1976년 하이스가 롱아일랜드시티의 폐교(1892년 건립 공립학교) 건물에 P.S.1 현대미술센터를 엶. 그해 6월 개관전 《Rooms》에서 78명의 작가가 옛 교실에 장소 특정적 설치를 선보임. 실험적·현장 중심 현대미술의 거점이 됨.
1971년 앨러나 하이스가 비평가 브렌던 길과 함께 '도시자원예술재단(Institute for Art and Urban Resources)'을 세움. 뉴욕의 버려진 건물을 작가 작업실·전시장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 대안적 예술 조직. 훗날 MoMA PS1로 이어지는 출발점.
2024년 5월 서울고법이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위자료 20억 원과 재산분할 1조 3,808억 원을 노소영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함. 역대 최대 규모의 재산분할로, SK㈜ 지분 등 최태원의 그룹 지배력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재계가 주목함. 사건은 이후 대법원에 상고되어 최종심이 진행됨.
선대 회장 최종현이 1998년 8월 26일 폐암으로 별세한 지 일주일 뒤인 9월 2일, 장남 최태원이 38세의 나이로 SK그룹 회장에 취임함. 젊은 3세 경영인의 등판으로, 이후 SK하이닉스 인수 등 공격적 확장을 통해 SK를 재계 2위 그룹으로 키워냄. 한국 대기업 3세 경영의 대표 사례로 꼽힘.
1988년 최태원이 미국 시카고대 유학 중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장녀 노소영과 결혼해 대통령의 사위가 됨. 재계와 정치 권력이 맺어진 혼사로 주목받았으며, 훗날 SK의 제2이동통신·통신 사업 특혜 의혹이 거론될 때 배경으로 언급되기도 함. 이 결혼은 2010년대 이후 세기의 이혼 소송으로 이어짐.
2018년 MoMA 이사회 의장에 오른 사모펀드 거물 리언 블랙이,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거액(약 1억 5,800만 달러)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며 거센 비판을 받음. 아이 웨이웨이 등 작가 150여 명이 사퇴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하고 'Strike MoMA' 시위가 이어진 끝에 2021년 7월 1일 의장 연임을 포기. 미술관 후원·지배구조의 윤리를 둘러싼 논쟁을 상징하는 사건.
2019년 10월 21일 5년·4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증축·개조를 마치고 재개관함. 갤러리 면적을 약 3분의 1 늘려 16.6만 ft²로 확대하고, 철거된 포크아트 미술관 자리에 데이비드 게펜 윙을 새로 마련. 소장품 전시를 매체·지역·성별을 가로질러 다시 짜는 큰 재구성을 함께 단행.
2011년 매입한 인접 건물(2001년 톰 윌리엄스·빌리 치엔 설계로 완공)을 2014년 1월 확장을 위해 철거하기로 결정함. 완공된 지 13년밖에 안 된 호평받던 건물을 허무는 결정에 건축계가 강하게 반발. 철거 부지 옆에는 장 누벨 설계의 초고층 럭셔리 콘도 '53 웨스트 53'이 들어선, 확장과 부동산 개발을 둘러싼 대표적 논란.
2000년 제휴 10주년에 맞춰 2010년 합병을 완료하고 P.S.1 현대미술센터를 'MoMA PS1'로 공식 개칭함. 롱아일랜드시티의 현대미술 거점을 MoMA 체제에 통합. 근대미술관과 현대미술 현장을 잇는 자매 기관 관계를 제도적으로 확정.
2004년 11월 20일 일본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오의 설계로 면적을 약 2배(63만 ft²)로 넓힌 증축을 마치고 설립 75주년에 맞춰 재개관함. 8억 5,800만 달러 규모의 모금으로 진행됐고 데이비드 록펠러가 현금 7,700만 달러를 기부. 다만 성인 입장료가 12달러에서 20달러로 올라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술관 입장료로 상업화 비판을 받음.
2000년 전문·행정직원 노조 PASTA(UAW Local 2110) 소속 약 250명이 단체협약 협상 중 134일간 파업에 들어감. 노조 안정 조항(agency shop) 확보를 핵심 쟁점으로 9월 9일 합의로 마무리. 미술관 노동 환경과 직원 처우를 둘러싼 갈등을 드러낸 대표적 노동 쟁의.
뉴욕 현대미술관과 P.S.1 현대미술센터가 기관 차원의 제휴·통합 계획을 발표함. 양측은 약 10년에 걸친 통합 절차를 통해 P.S.1의 독립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MoMA의 기획, 홍보, 회원, 출판, 모금 역량을 결합하기로 함. 이 제휴는 2000년 1월 공식화됐고, 이후 P.S.1은 MoMA의 현대미술 실험 공간으로 자리 잡음.
1984년 윌리엄 루빈과 커크 바네도가 기획해 근대 거장의 작품과 아프리카·오세아니아 부족미술 약 200점을 나란히 전시함. 비서구 미술을 맥락·의미를 지운 채 모더니즘에 끼친 '영향'으로만 다뤘다는 형식주의·서구중심주의 비판을 받음. 토머스 매커블리의 비평 등으로 미술 제도의 식민주의적 시각을 둘러싼 논쟁을 촉발.
1984년 건축가 시저 펠리의 설계로 갤러리 면적을 약 2배로 넓힌 증축을 완료함. 미술관 위로 주거용 고층 건물 '뮤지엄 타워'를 함께 올려 그 분양 수익으로 확장 자금을 충당. 미술관이 부동산 개발과 결합한 운영 모델을 선보인 사례이자, 조각 정원에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비판도 받음.
큐레이터 윌리엄 루빈이 기획해 설립 50주년을 기념하며 53번가 본관 전체를 단일 작가에게 할애한 사상 첫 전시. 100만 명 이상이 찾아 보안 인력을 대폭 늘리고 온습도 조절용 급수탑까지 증설할 정도의 대성공. 미술관 '블록버스터 전시' 시대를 연, 미술관 운영의 상업화·대중화를 상징하는 전시.
1969년 미술노동자연합(Art Workers Coalition)과 함께 베트남전 미라이 학살을 고발하는 반전 포스터 《And Babies》를 제작·배포하기로 했으나, 완성된 포스터를 본 뒤 막판에 자금 지원을 철회함. 미술관의 정치적 보신주의를 둘러싼 비판을 불러온 사건으로, 미술 기관과 사회·정치적 책임의 긴장을 드러냄.
1958년 4월 15일 2층에서 에어컨 설치 작업 중 시작된 화재로 약 5.5m 길이의 모네 《수련》이 소실됨. 작업자 1명이 숨지고 여러 소방관이 연기를 들이마셔 치료를 받음. 3·4층의 작품들은 인접한 휘트니 미술관으로 대피시킨, 미술관 안전사에 남은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