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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5958건

1949 7건
77년 전

대한민국 해병대가 경남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신현준 초대 사령관을 필두로 해군에서 차출된 장교 26명, 부사관 54명, 병 300명 등 380명의 소수 병력으로 창설. 948년 여순 사건을 계기로 해안 방어와 초기 진압의 필요성이 증대되었고, 해군 산하의 상륙 작전 전문 부대의 필요성이 대두. 초대 사령관 신현준 중령.

1948 13건
78년 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한 알프레드 샤힌이 어머니 메리 샤힌의 도움으로 호놀룰루에 자신의 기성복 의류 회사를 설립함. 샤힌은 알로하 셔츠와 여성복을 중심으로, 가족의 맞춤복 사업을 대량 생산이 가능한 기성복 사업으로 확장함.

회사는 이후 ‘Shaheen’s of Honolulu’과 ‘Surf ’n Sand’ 브랜드를 통해 원단 디자인·실크스크린 인쇄·봉제·유통을 한곳에서 처리하는 수직 통합 체제를 구축함. 1949~1950년 수입 원단 공급이 막히자 고물상에서 구한 부품으로 염색·가공 장비를 제작해 자체 직물 생산에 나섰고, 이는 알로하 셔츠를 관광 기념품 수준에서 디자인과 품질을 갖춘 패션 상품으로 끌어올리는 기반이 됨.

알로하 셔츠 (하와이안 셔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선거에 관한 사무를 행정기관인 내무부 산하 '선거위원회'가 관장함. 선거관리기구가 집행부에 소속돼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구조였음. 훗날 3·15 부정선거를 거치며 독립된 선거관리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배경이 됨.

빛과 전자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계산에서 끝없이 나오던 무한대를, 재규격화 기법으로 제거해 정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함. 세 사람이 각자 다른 길을 거쳐 같은 이론에 도달했고, 파인만 다이어그램으로 대표됨. 이 공로로 셋은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음.

약 한 달 보름만에 계엄령 해제. 이 계엄령은 법적 근거 없이 선포된 불법적인 조치였고, 수많은 무고한 희생을 나은 학살의 배경이 됨.

참고로 계엄법은 1949년 11월 24일 법률 제69호로 최초로 제정.

제주 4·3 사건 당시 군경의 무자비한 초토화 작전을 정당화하려는 시도. 같은 해 11월 21일 제주도 전역 확대. 중산간 마을을 소각하여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초래한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짐. 당시 일부 마을에는 소개령이 전달되지 않거나 전달되기 전 진압군이 들이닥쳐 집단학살을 당함.

그동안에도 분별없는 총살이 곳곳에서 벌어지긴 했지만 그 강도와 피해 규모 면에서, 그리고 전 지역에 걸쳐 동시에 벌어졌다는 점에서 11월 중순 이후는 이전 기간과 뚜렷한 차이가 있음.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 주둔 14연대 군인 2,000여 명이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한 사건. 김지회와 지창수 등 남로당 계열 군인들이 주도. 이승만 정부 수립 2개월 만에 발생한 이 사건으로 진압 과정에서 전남 동부 지역의 민간인들이 대거 희생됨. 반란군에 의해 약 150명이 살해된 것에 비해 정부 측 진압 군경에 의해 살해된 민간인은 약 2,500여 명에 달하는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남겼음.

1948년 11월부터 5개월 동안 진행된 초토화 작전으로 진압군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상함. 중산간 마을 134개가 모두 불에 탐. 제주 4.3 사건 희생자의 2/3인 9,700 여명이 초토화 작전으로 목숨을 잃음.

김구와 김규식, 남북협상에 참여한 정당·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통일독립촉진회를 결성. 남북한에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되는 상황에서 외세 의존을 배제하고 남북협상을 통한 자주적 통일정부 수립을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을 표방. 남북협상의 성과와 합의를 이어가기 위한 정치적 연대기구로 활동함.

김규식 (우사) 공동 결성 지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