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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가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글·사진 등으로 기록하고 공유하는 블로그 서비스 시작. 이용자가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쌓고 이웃과 교류하는 공간으로 발전하며 한국어 생활 정보와 개인 창작의 주요 통로로 정착. 초기 서비스의 시작은 2003년 6월이며, 2023년에는 서비스 20주년을 맞아 누적 블로그 3,300만 개와 글 28억 건을 발표.

네이버·소프트뱅크·Z홀딩스·라인이 경영통합을 위한 기본합의서 체결. 라인을 공동 공개매수해 비상장화하고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의결권을 절반씩 갖는 합작 지주회사 아래에 통합 Z홀딩스를 두는 기본 구조 제시. 검색·커머스와 메신저·결제 사업을 결합하기 위한 협상 단계로, 12월 최종 계약과 2021년 통합 완료의 선행 절차.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공동으로 경영통합 과정에서 존속하는 라인의 상호를 A홀딩스로 바꾸는 계획과 임원 구성을 발표. 상호 변경일은 2월 28일로 제시되었으며, 이해진은 대표이사 회장, 미야우치 겐은 대표이사 사장 겸 이사회 의장으로 예정. 3월 1일 이사 취임과 3월 2일 대표이사 취임을 구분한 발표.

네이버 소프트뱅크

인터넷 포털 사업을 목적으로 네이버컴 주식회사 설립. 같은 달 검색 포털 네이버의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며 한국어 정보 검색을 중심으로 사업 전개. 이후 한게임과의 결합, NHN으로의 사명 변경, 게임 사업 분할을 거치며 현재의 네이버 주식회사로 이어진 법인의 출발점.

네이버

라인야후가 3월 5일과 4월 16일 행정지도에 대한 보고서 제출. 인증·직원 시스템 분리, 위탁 관계의 종료·축소·유지 범위, 그룹 보안 관리 강화 계획 제시. A홀딩스의 자본관계 재검토를 네이버와 소프트뱅크에 요청했으나 양사가 단기적인 지분 이동은 어렵다고 답했다고 설명. 후속 협의를 계속하겠다고 밝힌 단계.

온라인 기부 포털 해피빈 서비스 시작. 이용자가 인터넷 활동으로 얻은 기부용 콩이나 직접 기부금을 통해 공익단체의 모금에 참여하는 방식 마련. 일상적인 온라인 활동을 소액 기부와 연결하고 공익단체의 후원 기반을 넓히려 한 서비스.

네이버·소프트뱅크·Z홀딩스·라인이 경영통합에 관한 최종 계약 체결. 라인 비상장화, 네이버·소프트뱅크의 50대 50 합작회사 구성, 사업 분할과 주식교환을 통해 Z홀딩스 아래에 사업을 배치하는 거래 절차 확정. 2019년 11월의 기본합의를 구체적인 계약으로 발전시킨 단계.

라인야후와 일본 안팎 자회사가 사용하던 네이버·네이버클라우드의 직원용 시스템과 인증 시스템 분리를 2026년 3월 말까지 완료. 일본 사업의 서비스 기획·기능·개발 위탁은 2025년 12월 말, 네이버 기술·운영 시스템 이용은 2026년 3월 말 종료한 것으로 정리. 회계 감사·임시 백업용 잔여 데이터 삭제는 6월 말 완료. 일반 공개 서비스와 범용 API 이용, 일부 해외 사업 및 공동 계열사 협력은 위험 평가를 거쳐 유지된 예외.

네이버 비즈니스 플랫폼이 기업 고객을 위한 네이버 클라우드 플랫폼 출시. 네이버 서비스 운영으로 축적한 기술을 컴퓨팅·데이터·보안·네트워크 등 외부 고객용 상품으로 제공하는 사업 확대. 이후 네이버클라우드로의 사명 변경과 인공지능·업무 협업 도구를 결합한 기업용 서비스로 연결.

네이버

세월호 참사 보도 과정에서 유사한 내용을 반복 송고하거나 무관한 인기 검색어를 제목에 끼워 넣는 기사 어뷰징에 대한 비판 발생. 네이버가 4월 18일 언론사들에 어뷰징으로 의심될 수 있는 기사 작성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 대형 재난 보도의 정확성과 포털 노출을 위한 클릭 경쟁이 충돌한 사례.

네이버 클릭베이트

네이버가 첫 화면의 뉴스캐스트를 종료하고 뉴스스탠드를 전면 적용. 이용자가 언론사를 선택해 해당 언론사의 편집 화면을 보는 방식으로 뉴스 접근 경로 변경. 기사 제목을 통한 클릭 경쟁과 자극적인 편집에 대한 비판 속에서 이루어진 개편으로, 이후 언론사 유입량과 이용자 편의성을 둘러싼 논의 지속.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이 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한 출동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 봉기는 순천 등으로 확대되었고 정부군의 진압 과정에서 군인·경찰뿐 아니라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됨. 발단인 10월 19일과 이후 수일간 이어진 진압 및 민간인 희생을 구분해 이해할 필요가 있는 사건.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한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일부 병력이 제주4·3 진압을 위한 출동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했음. 지창수 등 남로당 계열 군인들이 주도한 봉기는 여수와 순천 및 전남 동부로 확산되었고, 이 과정에서도 경찰과 우익 인사 등에 대한 살해가 발생했음. 정부수립 약 두 달 만에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이승만 정부는 군사 진압을 추진했음.

정부는 10월 21일 광주에 토벌 지휘부를 설치하고 22일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음. 정부군이 주요 지역을 다시 장악하는 동안 주민들을 모아 반란 가담자를 가려내는 색출이 진행되었고, 고발이나 지목만으로 법적 절차 없이 처형하는 일이 일어남. 이후 김지회가 지휘를 맡은 반란군 일부는 지리산 등 산악지대로 이동했고, 군·경의 토벌과 주민 희생은 도시 탈환 이후에도 이어짐.

여순사건은 이승만 정부가 군 내부의 좌익 세력을 제거하는 숙군을 확대하고, 1948년 12월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됨. 진압 과정의 민간인 집단희생과 유족에 대한 낙인은 장기간 지속됨.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의 해설은 정부군의 진압과 부역자 색출을 국가폭력의 구체적 과정으로 설명함.

이청준의 단편소설 「서편제」가 잡지 『뿌리깊은나무』에 발표. 남도의 소리꾼을 다룬 ‘남도 사람’ 연작의 첫 작품으로, 훗날 임권택의 영화 《서편제》로 이어지는 문학적 바탕의 형성.

소릿재 주막을 찾은 사내가 소리의 사연을 듣고 헤어진 가족의 삶을 되짚는 이야기. 소리꾼 남매의 기구한 운명과 한의 정서를 통해 예술과 삶의 관계를 탐구한 작품.

한국영상자료원이 창립 40주년을 맞아 발표한 ‘한국영화 100선’에서 《서편제》가 공동 9위에 선정. 영화 전문가 62명이 참여한 조사에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영자의 전성시대》·《바보선언》과 같은 순위에 오른 결과.

개봉 당시의 흥행작을 넘어 한국영화사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은 이정표. 전통예술과 가족의 상처를 결합한 이야기, 판소리와 풍광을 살린 영화적 표현이 오랜 시간 비평과 감상의 대상으로 이어져 온 위상.

한국영상자료원이 《서편제》의 디지털 복원판을 수록한 블루레이 출시.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을 4K 해상도로 스캔하고 색보정을 거친 복원본을 원소스로 사용한 발매.

임권택·김홍준·김명곤·오정해·김수철이 참여한 음성해설과 2006년 녹음 해설, 복원 전후 비교 영상, 예고편, 이미지 자료를 함께 수록한 구성. 판소리의 어투와 내용을 이해하도록 돕는 판소리 버전 자막도 제공한 판본.

정성일과 김경현의 글, 보존센터의 복원과정 설명을 담은 소책자를 더해 작품의 미학과 제작 경험을 살필 수 있도록 한 보존·소개 작업.

임권택과 정일성이 전남 완도군 청산도 당리마을의 돌담길에서 《서편제》의 41번 장면 촬영. 유봉과 송화·동호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걸어오는 모습을 5분 40초 동안 이어 담은 롱테이크의 제작.

밭을 둘러싼 돌담과 굽은 길, 소리를 주고받는 세 사람의 움직임을 한 화면 안에서 결합한 장면. 남도의 실제 공간과 인물의 삶, 노래의 흥이 어우러진 영화의 대표 이미지이자 이후 ‘서편제길’로 알려진 촬영지의 배경.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기획 프로그램에서 《서편제》 상영. 한국영화사의 대표작 열 편을 돌아보는 자리에 포함되어 새 세대 관객과 다시 만난 작품.

정한석의 프로그램 노트가 임권택의 민족적 정서와 문화 탐구, 그리고 대중의 호응이 만난 성취로 조명한 영화. 소리꾼 가족의 유랑과 예술적 흥취, 서울 관객 100만 명을 처음 넘긴 역사적 의미를 함께 되짚은 상영.

《서편제》가 1994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되어 소개. 국내에서 판소리와 가족의 삶을 통해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 유럽 영화제 관객과 만난 해외 상영.

베를린 파노라마를 이끈 빌란트 쉬펙의 한국영화 소개 활동에 포함된 작품. 1993년 상하이국제영화제에서의 성과에 이어 임권택의 영화 세계가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과정의 한 장면.

오정해가 영화 데뷔작 《서편제》에서 송화를 연기해 제14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수상. 유봉에게 소리를 배우고 동호와 헤어진 뒤에도 판소리를 이어 가는 인물을 맡아, 소리꾼으로서의 역량과 배우로서의 출발을 함께 보여 준 성과.

1992년 미스춘향 진으로 선발된 뒤 임권택의 영화에 발탁되어 관객과 만난 배우. 송화의 삶과 한을 표현한 데뷔 연기가 청룡영화상의 신인상으로 이어지며 본격적인 영화 활동의 기반이 된 계기.

《서편제》가 제14회 청룡영화상 한국영화 최다관객상 수상. 제작사 태흥영화사가 수상 주체로 기록되며, 장기간 이어진 관객의 호응이 연말 영화상에서도 확인된 성과.

판소리를 소재로 한 작품이 한국영화 최초로 서울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서며 거둔 흥행의 결실. 서울을 기준으로 집계되던 당시의 관객 기록을 바탕으로, 전통예술을 다룬 영화가 폭넓은 대중과 만난 의미를 보여 준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