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부양 출생
일제강점기의 관료 박부양. (~1974년)
일제강점기의 관료 박부양. (~1974년)
러일 전쟁의 향방을 가른 최후의 해전. 러시아 제국은 이 전투에서 일본 제국에 참패하며 사실상 전쟁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
미국의 영화배우 헨리 폰다. (~1982년)
대한제국의 외교관 이한응. (1874년~)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이헌구. (~1983년)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법조인 이홍규. (~2002년)
1905년 4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재미 한인 단체 공립협회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을 맡음. 회관을 건립하고 기관지 《공립신보》를 발행함. 흩어져 있던 재미 한인을 결집한 미주 독립운동 조직화의 기반.
프랑스의 영화 감독 장 비고. (~1934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산. (~1938년)
미국의 육군 중장 로버트 싱크. (~1965년)
러일전쟁 중 일본 육군이 1905년 3월 현재의 지바현 나라시노시 히가시나라시노 일대에 러시아군 포로수용소를 개설함. 건물 완공 전에는 포로들이 천막에서 생활했으며, 같은 해 가을 무렵 수용 인원이 약 1만 5천 명에 이름. 훗날 독일군 포로와 관동대지진 뒤 조선인·중국인을 수용한 군사시설 일대의 첫 대규모 수용 단계.
빛이 연속적인 파동만이 아니라 에너지 양자(광량자) 형태로 흡수·방출된다는 가설 제시. 금속 표면에 빛을 비추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광전효과를 이 가설로 설명. 빛의 입자성을 보인 이 논문으로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양자역학 발전의 중요한 출발점이 됨.
프랑스 공교육 확대와 함께 일반 학급의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아동에게 어떤 교육을 제공할 것인지가 정책 과제로 떠오르자 1904년 공교육부가 관련 위원회를 구성함. 비네도 위원으로 참여해 교사나 의사의 주관적 인상에만 의존하지 않는 판별 방법을 모색함.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적·의학적 검사와 함께 아동의 현재 지적 수행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방법이 요구됨. 비네와 테오도르 시몽의 연구가 이듬해 첫 지능 측정 체계 발표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제도적 배경이 됨.
1904년 귀국한 뒤 언더우드의 비서로 일하는 한편 황성기독교청년회에서 교사·학관장·학생부 간사 등으로 활동하고 경신학교 교사와 교감을 역임. 1910년 새문안교회 장로로 선출되고, 1911년 경기·충청도 장로교연합회 서기, 1912년 전국주일학교연합회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을 맡는 등 교육계와 개신교계에서 활동. 1913년 4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면서 국내 활동을 마무리함.
일본계 이민자 미야모토 조타로가 하와이 호놀룰루에 포목·양품점 '무사시야'를 엶. 일본 기모노 직물을 다루던 이 점포는 뒷날 아들 미야모토 고이치로 대에 화려한 무늬의 셔츠를 지어 파는 가게로 이어짐. 알로하 셔츠의 기원으로 거론되는 초기 점포 중 하나의 출발점.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복혜숙. (~1982년)
세르비아의 체트니크 사령관 안젤코 알렉시치. (1876년~)
오스트리아의 귀족 에른스트 폰 호헨베르크 후작. (~1954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 정치인 김무정. (~195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