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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단 조립 시작
WDR - Wet Dress Rehearsal, 발사체에 실제 연료와 산화제를 채우고 발사 직전까지의 모든 과정을 동일하게 수행하는 ‘발사 전 비연소 종합점검 (리허설)
누리호 총조립 완료
누리호 발사대로 이동 및 기립
국민의힘, 한동훈 제명
새벽 1시,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 (위원장 윤민우)가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 결정문에서 "피조사인(한동훈) 가족이 행한 것으로 인정되는 조직적 게시글 활동은 그 내용과 활동 경향성으로 볼 때 당헌·당규의 위반이 분명히 인정된다." 라고 명시.
한동훈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라고 게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당일 기자들에게 "이미 윤리위원회 결정이 나온 마당에 그 결정을 곧바로 뒤집고 어떤 다른 해결을 모색하는 것은 우선은 따로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고 인터뷰.
당시 들랑브르(Delambre)와 메섕(Méchain)이 덩케르크와 바르셀로나 사이의 측량 결과를 발표하며 1미터의 길이를 443.296리뉴(lignes)로 고정. 공화력 8년 프뤼메르 19일 (1799년 12월 10일) 법령으로 이 수치를 1m 로 정의. 1kg 은 18,827.15그레인(grains)으로 규정.
참고로 미터법 이전 프랑스의 길이 단위 리뉴와 무게 단위 그레인을 설명하면,
1리뉴((ligne)는 1 파리 인치(pounce)의 1/12로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약 2.255829mm. (1/144 파리 피트(pied) = 1/12 파리 인치(pounce)) 1그레인(grain)은 약 0.05311g.
명량 해전
명량 해전(鳴梁海戰) 또는 명량 대첩(鳴梁大捷). 1597년(선조 30) 음력 9월 16일(양력 10월 26일) 정유재란 당시 조선 수군이 이순신 장군의 지휘 아래 일본 수군의 대규모 함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전투. 당시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였다가 모함으로 파직된 상태고ㅗ, 원균이 지휘를 맡아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여 제해권을 상실한 상태. 이에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으나, 계급을 낮춰 지휘 체계의 혼란이 발생. 당시 조선 수군은 전선이 12척에 불과.
일본항공 351편 공중 납치 사건
새벽 2시, 남로당 김달삼 등 350여 명이 무장을 하고 제주도 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급습. 또한 경찰, 서북청년회 숙소와 독립촉성국민회, 대동청년단 등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지목해 습격.
이승만, 대통령직 하야 성명 발표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분출된 시민과 학생들의 거센 하야 요구에 오전 10시 30분 라디오 방송을 통해 하야 성명 발표
하야 성명 전문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들어와서 우리 여러 애국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지내왔으니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한이 없으나, 나는 무엇이든지 국민이 원하는 것만 알면 민의를 따라서 하고자 하는 것이며 또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보고를 들으면 사랑하는 우리 청소년 학도들을 위시하여 우리 애국애족하는 동포들이 내게 몇 가지 결심을 요구하고 있다 하니 여기에 대해서 내가 아래 말하는 바를 할 것이며, 한 가지 내가 부탁하고자 하는 바는 이북에서 우리를 침략하려고 공산당이 호시탐탐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말도록 힘써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첫째는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직을 사임할 것이며,
둘째는 지난 번 정·부통령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었다고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고,
셋째는 선거로 인연한 모든 불미스러운 것을 없애게 하기 위해서 이미 이기붕 의장이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가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넷째는 내가 이미 합의를 준 것이지만 만일 국민이 원하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할 것이다.
이상은 이번 사태를 당해서 내가 굳게 결심한 바이니 나의 이 뜻을 사랑하는 모든 동포들이 양해해 주어서 이제부터는 다 각각 자기들의 맡은 바를 행해 나가며 다시 질서를 회복시키도록 모든 사람이 다 힘써주기를, 내가 사랑하는 남녀 애국동포들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이승만, 하와이로 망명
대통령직 사퇴 후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하와이로 망명. 처음엔 영구 망명을 생각하지 않았지만, 국내의 냉담한 여론과 허정 과도내각과 장면 정권이 귀국을 허락하지 않음
게리 카터 출생
미국의 야구 선수 게리 카터.
카를 비트겐슈타인 출생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기업인 카를 비트겐슈타인. (~1913년)
에드문트 후설 출생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 (~1938년)
허우샤오셴 출생
우장춘 출생
대한민국의 농학자 우장춘. (~1959년)
코피 아난 출생
가나의 외교관, 제7대 UN 사무총장 코피 아난.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