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인명·지명 표기를 통일하기 위한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1940년 6월 7일 최종 확정하고 발표(공표), 1941년 1월 간행함. 맞춤법 통일안 제정에 착수할 때부터 준비해 온 작업으로, 맞춤법·표준어와 함께 어문 3대 규범을 완성함. 『큰사전』의 외래어 표기 기준으로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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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월 귀국한 이극로가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맡아 우리말 연구와 보급의 한복판에 섬. 조선어사전 편찬과 한글 규범화 작업을 이끌며 흩어진 말과 글을 바로 세우는 일에 매진. 식민지 한글운동을 조직적으로 이끈 지도자로 자리 잡음.
중국 상하이 동제대학을 거쳐 독일로 건너간 이극로가 1927년 베를린대학(현 훔볼트대학)에서 학위를 받음. 유학 중 대학에 한국어 강좌를 열어 우리말을 알리는 데도 힘씀. 서구 학문을 익히고 돌아와 한글운동에 투신하는 밑바탕이 된 시기.
1893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남. 뒷날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성장해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 데 일생을 바친 인물. 호는 고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애플이 인텔과 미국 내 칩 설계·생산 협력에 합의했다고 언급한 뒤, 인텔 주가가 장중 약 11% 급등함. 애플과 인텔은 당시 계약을 공식 확인하지 않았으나, 시장은 이를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가 대형 외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
구글 AI 칩 생산 가능성, 엔비디아 등 잠재 고객 유치 기대와 함께 인텔의 파운드리 전환 전략이 재평가받는 계기가 됨. 다만 실제 양산 계약과 물량은 공개되지 않아, 기대가 선반영된 주가 움직임이라는 한계도 남음.
2025년 8월 미국 정부가 CHIPS법 등에서 약속된 보조금 89억 달러를 인텔 지분으로 전환, 약 4억 3,330만 주(약 9.9%)를 확보하며 최대 주주의 하나로 등장. 단, 의결권이 없는 비의결 주식. 경영난과 공정 경쟁력 약화 속에 이뤄진 이례적 정부 개입. 한때 세계 반도체를 호령하던 기업의 위상 변화를 보여준 상징적 장면.
2021년 인텔이 전직 임원이자 VM웨어 CEO였던 팻 겔싱어를 새 CEO로 영입, 자체 제조와 외부 위탁생산(파운드리)을 병행하는 'IDM 2.0' 전략 발표. 공정 미세화 지연과 AMD·TSMC의 약진으로 흔들린 기술 주도권 회복이 목표. 그러나 성과 부진 속에 겔싱어는 2024년 물러남.
WWDC 2005에서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향후 매킨토시에 인텔 CPU를 탑재하겠다고 발표, 모토로라·IBM 파워PC를 쓰던 애플의 전환으로 업계에 충격. 이로써 고성능 서버·메인프레임을 제외한 거의 모든 PC가 인텔 계열 칩을 사용하는 구도 완성. 인텔의 CPU 시장 지배가 정점에 이른 상징적 사건.
1994년 펜티엄의 부동소수점 나눗셈(FDIV)에서 드물게 계산 오류가 나는 결함이 공론화되며 대규모 리콜·교체 사태로 비화. 초기 대응 미숙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으나 결국 결함 칩 전면 교체를 단행하며 막대한 비용 감수. 기술 신뢰와 기업 위기 대응의 교훈을 남긴 사건.
1993년 인텔이 펜티엄(Pentium) 프로세서를 출시하며 80x86식 숫자 명명에서 상표 이름으로 전환. PC용 인텔 칩 최초로 슈퍼스칼라(병렬) 처리를 도입해 속도를 크게 끌어올리고, 310만 개 트랜지스터 탑재. 윈도와 결합해 멀티미디어 PC 대중화를 견인한 제품.
1991년 인텔이 부품 제조사로는 이례적으로 최종 소비자를 겨냥한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 브랜드 캠페인 시작. PC 제조사 광고에 인텔 로고와 효과음을 넣는 공동 마케팅으로, 보이지 않던 칩을 소비자 브랜드로 각인. 반도체 부품의 브랜딩을 개척한 마케팅사(史)의 이정표.
1981년 IBM이 첫 양산형 개인용 컴퓨터(IBM PC)의 CPU로 인텔의 16비트 8088을 채택, 인텔을 포춘 500대 기업 반열에 올림. IBM PC와 그 호환 기종(클론)의 폭발적 수요로 x86 칩이 PC 표준으로 고착.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와 결합한 '윈텔' 지배 구도의 토대.
1980년대 들어 일본 업체의 부상으로 D램 시장 점유율이 1974년 82.9%에서 1984년 1.3%까지 붕괴하자, 인텔이 1985년 메모리 사업에서 사실상 철수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집중하는 전략 전환 단행. 앤디 그로브가 주도한 이 결정은 위기 속 사업 재정의의 대표 사례로 회자. 이후 인텔이 CPU 기업으로 정체성을 재확립한 분기점.
창립 10주년인 1978년 인텔이 첫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8086을 출시하며 x86 명령어 집합 아키텍처의 계보 개시. 이후 수십 년간 PC와 서버 CPU의 사실상 표준이 되는 아키텍처의 시발점. 8086에서 파생된 8088이 곧 PC 산업의 핵심 부품으로 부상.
1971년 인텔 엔지니어 테드 호프·페데리코 파긴·스탠 메이저가 일본 계산기 회사(비지컴)의 의뢰로 4비트 단일 칩 마이크로프로세서 4004를 개발해 출시. 연산 기능을 하나의 칩에 담은 세계 최초의 상용 마이크로프로세서로, 모든 사물에 지능을 심는 디지털 시대의 출발점. 같은 해 인텔은 기업공개(IPO)로 상장.
1968년 7월 페어차일드 반도체 출신의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캘리포니아에 인텔을 창립, 아서 록이 주선한 250만 달러로 출발. 집적회로 공동 발명자(노이스)와 R&D 책임자(무어)라는 검증된 기술자들이 세운 회사. 반도체 메모리에서 출발해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세계 컴퓨팅을 주도하게 되는 기업의 시작.
1979년 1월 26일 뉴욕시의 사무실에서 심장마비로 70세에 별세. 4선 주지사와 부통령을 지내고 막대한 부와 예술 후원, 라틴아메리카 관여로 한 시대를 풍미한 공인의 마지막. 동부 기득권 자유주의 공화당의 상징적 인물의 퇴장.
워터게이트로 닉슨이 사임하고 포드가 대통령직을 승계한 뒤, 수정헌법 25조에 따라 부통령으로 지명됨. 수개월의 의회 인준 청문회를 거쳐 1974년 12월 19일 상·하원 인준으로 제41대 부통령 취임. 그러나 보수 진영의 견제로 1976년 재지명을 포기하며 1977년 1월 임기 종료.
1973년 12월 18일 네 번째 임기 도중 주지사직을 사임. 미국의 중대 과제를 연구하는 민간 위원회(Commission on Critical Choices for America) 활동과 차기 대권 구상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 14년에 걸친 뉴욕 주지사 시대의 종료.
1973년 5월 마약 범죄에 강제 최소형을 부과하는 강경한 마약 단속법안에 서명, 이른바 '록펠러 마약법' 제정. A급 중범죄에 최고 15년~종신형의 의무형을 규정하는 등 미국에서 가장 가혹한 마약법의 하나로 평가. 대량 수감과 인종 불균형 논란을 낳으며 미국 마약 정책과 형사사법에 장기적 영향을 끼친 입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