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공드리가 케미컬 브라더스의 〈Let Forever Be〉 뮤직비디오를 연출함. 한 여성의 일상과 꿈을 오가면서 인물이 반복·증식하는 화면을 실제 안무와 영상 합성으로 구현한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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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공드리가 다프트 펑크의 〈Around the World〉 뮤직비디오를 연출함. 서로 다른 무용수 집단의 움직임을 곡의 음악 요소와 대응시키며 곡의 구조 자체를 안무로 시각화한 작업.
미셸 공드리, 스미노프 〈Smarienberg〉 광고 연출
미셸 공드리가 스미노프 레드의 〈Smarienberg〉 광고를 연출함. Partizan이 제작하고 BUF와 The Mill이 후반 작업에 참여한 광고로, 뮤직비디오와 함께 공드리의 시각효과 실험이 대형 상업광고로 확장된 사례.
미셸 공드리, 비요크 〈Hyperballad〉 뮤직비디오 연출
미셸 공드리가 비요크의 〈Hyperballad〉 뮤직비디오를 연출함. 비요크의 얼굴·풍경·전자 이미지를 여러 층으로 중첩해 실사와 영상 이미지를 결합한 작품으로, 공드리의 다중노출 실험을 대표하는 작업 가운데 하나.
미셸 공드리가 롤링 스톤스의 〈Like a Rolling Stone〉 뮤직비디오를 연출함. 여러 시점을 연결하는 모핑 기법을 활용해 인물 주변에서 시간이 멈추거나 공간이 회전하는 듯한 화면을 구성한 작업.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리바이스 501 광고 〈Drugstore〉가 1995년까지 33개의 광고상을 받아 당시 TV 광고 최다 수상 기네스 기록에 등재됨. 공드리가 1994년 감독 부문 황금사자상을 받고 광고 자체도 Grand Clio를 수상하는 등 광고가 그의 주요 영상 작업 영역으로 자리 잡은 사례.
미셸 공드리, 비요크 〈Human Behaviour〉 뮤직비디오 연출
미셸 공드리가 비요크의 〈Human Behaviour〉 뮤직비디오를 연출함. 동물이 인간을 관찰하는 시점을 모형·수작업 질감과 애니메이션적 표현으로 구성한 비요크와의 초기 협업으로, 공드리의 국제적인 뮤직비디오 활동이 확대되는 계기가 됨.
옴니버스 영화 《도쿄!》 한국 개봉
미셸 공드리·레오 카락스·봉준호가 도쿄를 배경으로 각각 한 편씩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 《도쿄!》가 한국에서 개봉함. 공드리는 도쿄에 정착하려는 젊은 연인을 다룬 〈Interior Design〉, 카락스는 〈Merde〉, 봉준호는 〈Shaking Tokyo〉를 연출함.
2023년 7월 27일 연방준비제도·통화감독청(OCC)·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바젤 III 최종 요소를 미국 대형은행에 적용하기 위한 자본규제 강화안을 공동으로 제안하고 의견수렴을 시작함. 총자산 1,000억 달러 이상 은행을 중심으로 위험가중자산 산정과 자본요건을 개편하는 내용으로, 미국의 바젤 III 엔드게임 이행 논의를 본격화한 사건.
제롬 파월이 2018년 2월 5일 재닛 옐런의 뒤를 이어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에 취임함. 취임 전에는 2012년부터 연준 이사로 재직했으며, 의장 취임과 함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이끄는 역할을 맡음.
버냉키, 제14대 연방준비제도 의장 취임
벤 버냉키가 2006년 2월 1일 앨런 그린스펀의 뒤를 이어 제14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장에 취임함. 전날 상원 인준을 거쳐 취임했으며,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을 이끄는 연준 의장으로 재임함.
1982년 연방준비제도가 1979년부터 사용해 온 비차입 준비금(nonborrowed reserves) 중심의 통화정책 운용 절차를 중단함. 통화량 증가율을 통제하기 위해 준비금 관리에 중점을 둔 방식에서 벗어나 이후 연방기금금리 등 단기금리 운용이 다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 정책 운영상의 전환점.
볼커 연준, 연방기금금리 20% 안팎까지 끌어올림
1981년 중반 볼커 연준의 강한 통화긴축 아래 연방기금금리가 20% 안팎까지 상승함. 높은 차입비용으로 주택·제조업 등 금리에 민감한 부문이 크게 위축됐고, 1981~1982년 경기침체와 실업 증가로 이어짐. 인플레이션 기대를 낮추기 위해 매우 높은 금리를 감수한 볼커 긴축의 정점에 해당함.
G. 윌리엄 밀러가 아서 번스의 뒤를 이어 1978년 3월 8일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에 취임함. 기업인 출신으로 연준 의장에 오른 인물로, 인플레이션이 높은 수준을 이어가던 시기에 재임함. 1979년 8월 재무장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후임 폴 볼커가 의장에 취임함.
아서 번스, 연방준비제도 의장 취임
아서 번스가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의 뒤를 이어 1970년 1월 31일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에 취임함. 대인플레이션이 진행되던 시기에 연준을 이끌며 1978년까지 재임함. 재임기에는 높은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가 함께 나타나 통화정책 운용이 주요 과제로 부상함.
12개 연방준비은행, 일제히 업무 개시
1914년 11월 16일 12개 연방준비은행이 같은 날 업무를 시작함. 제1차 세계대전으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조직·인력·설비를 단기간에 갖추고 개점했으며, 연방준비법으로 설계된 중앙은행 제도가 실제 운영 단계에 들어간 시점.
연방준비은행조직위원회, 12개 연방준비구 확정 발표
1914년 4월 2일 연방준비은행조직위원회(Reserve Bank Organization Committee)가 미국 전역을 12개 연방준비구로 나누고 각 구의 경계와 연방준비은행이 들어설 도시를 발표함. 연방준비법이 규정한 지역은행 체계가 구체적 형태로 확정된 절차로, 이후 12개 연방준비은행 설립의 직접적 기반이 됨.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연방기금금리 목표 범위를 0-0.25%에서 0.25-0.50%로 인상하기로 결정함. 코로나19 충격 이후 유지한 제로금리 정책에서 벗어나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금리 인상 사이클을 시작한 사건. 변경된 목표 범위는 3월 17일부터 적용됨.
볼커 연준, 고금리 긴축으로 인플레이션 진압 추진
볼커 연준이 통화량 증가 억제를 우선하는 긴축 기조를 지속하며 높은 시장금리를 감수한 반인플레이션 정책을 추진함. 연방기금금리는 1980년 말 20%까지 치솟았고, 1981년에도 약 19% 수준의 고금리가 이어짐. 이는 기업과 가계의 차입 비용을 급격히 높이며 투자·소비 위축과 유동성 압박을 초래함.
미국 경제는 1980년 경기침체와 1981-1982년의 더 깊은 침체를 연이어 겪었고, 실업률은 1982년 말 거의 11%까지 상승함. 반면 인플레이션은 1980년 고점 이후 빠르게 둔화해 1982년 말에는 약 4-5% 수준으로 낮아짐. 볼커의 정책은 큰 사회적 비용을 수반했지만, 1970년대식 고인플레이션과 기대인플레이션의 고착을 끊어낸 전환점으로 평가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출생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18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