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맥마흔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Becoming Led Zeppelin》이 북미 IMAX에서 개봉함.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가 레드 제플린 결성 이후 처음으로 밴드의 공식 승인을 받은 영화라고 밝힌 작품으로, 멤버 인터뷰와 미공개 공연·아카이브 자료를 이용해 결성과 초기 활동을 다룸. 2월 14일 북미 일반 상영관으로 확대 개봉함.
이벤트
총 7913건
제이크 홈스가 2010년 〈Dazed and Confused〉의 저작권 침해와 작곡 크레딧 문제를 제기하며 소송을 낸 뒤 지미 페이지와 법정 밖 합의에 도달함. 이후 레드 제플린의 관련 발매물에는 홈스의 원곡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나타내는 수정 크레딧이 사용되기 시작함.
윌리 딕슨이 자신의 곡 〈You Need Love〉와 레드 제플린의 〈Whole Lotta Love〉 사이의 가사 유사성을 문제 삼아 1985년 제기한 저작권 소송이 법정 밖 합의에 도달함. 합의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으며, 이후 후속 발매물에서 딕슨의 작곡 크레딧이 추가됨. 법원 기록상 소송은 같은 해 9월 최종적으로 정리됨.
미국 연방대법원이 2020년 10월 5일 원고 측의 상고 허가 신청을 거부한 뒤, 원고가 다시 낸 재심리 청구도 12월 7일 기각함. 이에 제9연방항소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그대로 유지되며 2014년 제기된 〈Stairway to Heaven〉 저작권 분쟁의 사법 절차가 종결됨.
제9연방항소법원 전원합의체가 2016년 배심 평결을 그대로 인정해 레드 제플린 측의 승소를 유지함. 1909년 저작권법 아래 보호 범위를 등록 악보에 한정하고, 접근 가능성이 높을수록 유사성 입증 기준을 완화하던 ‘역비례 규칙’을 폐기함. 이후 원고 측이 연방대법원에 상고 허가를 신청해 분쟁 자체는 아직 최종 종결되지 않은 상태였음.
스피릿의 기타리스트 랜디 캘리포니아 유산 관리인이 2014년 제기한 소송의 로스앤젤레스 연방지방법원 배심 재판이 마무리. 배심원단은 〈Stairway to Heaven〉 도입부가 1968년 기악곡 〈Taurus〉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 1909년 저작권법 아래 등록 악보만 보호 대상이 되는지, 유사성을 어떻게 판단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다뤄짐.
워싱턴 D.C.에서 열린 2012년 케네디 센터 명예상 행사에서 레드 제플린이 버디 가이, 더스틴 호프먼, 데이비드 레터맨, 나탈리아 마카로바와 함께 수훈 대상으로 선정됨. 생존 멤버 지미 페이지·로버트 플랜트·존 폴 존스가 참석했으며, 헌정 공연에서 레드 제플린의 음악이 연주됨.
2007년 O2 아레나 공연을 담은 콘서트 영화를 전 세계 극장에서 한정 상영. 같은 해 11월 음반·영상 매체로도 발매되며 재결합 무대의 전곡 실황이 정식 공개. 밴드가 직접 관리해 온 공연 기록을 대중에게 내놓은 사례로 이후 아카이브 발매 흐름과 이어짐.
애틀랜틱 레코드 공동 창업자 아메트 어티건을 추모하는 자선 공연의 헤드라이너로 나서 1980년 해체 이후 처음으로 약 두 시간 규모의 레드 제플린 세트를 공연함. 드럼은 존 본햄의 아들 제이슨 본햄이 맡아 열여섯 곡을 연주함. 한 차례의 공연이었지만 2천만 건이 넘는 티켓 신청이 몰리며 밴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줌.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에서 열린 제10회 헌액식에서 공연자 부문으로 이름을 올림. 에어로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와 조 페리가 헌액사를 맡고, 페이지·플랜트·존스와 본햄의 자녀 제이슨·조이가 함께 무대에 오름. 블루스·켈틱 포크·소울을 결합해 록의 틀을 넓힌 공적이 헌액 사유로 제시.
필라델피아 JFK 스타디움에서 열린 자선 공연에 페이지·플랜트·존스가 함께 올라 해체 후 첫 합동 무대를 가짐. 필 콜린스와 토니 톰프슨이 드럼을, 폴 마티네즈가 베이스를 맡아 〈Rock and Roll〉·〈Whole Lotta Love〉·〈Stairway to Heaven〉을 연주. 리허설 부족으로 연주가 흐트러져 멤버들 스스로 실패한 무대로 회고했고, 이후 오랫동안 공식 영상 공개를 꺼린 계기.
해체 이후 계약 정리와 아카이브 정돈을 겸해 1969년부터 1978년 사이 정규 앨범에 실리지 않았던 녹음을 모은 《Coda》를 발매함. 본햄의 드럼 솔로 〈Bonzo's Montreux〉를 비롯한 미발표 세션 트랙이 수록됨. 밴드 해체 이후 레드 제플린 명의로 정리된 첫 주요 아카이브 앨범.
본햄 사망 두 달여 뒤 남은 세 멤버와 매니저가 공식 성명을 내고 활동 종료를 선언. 새 드러머를 들여 활동을 잇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1968년 결성 이후 12년의 활동이 마무리. 멤버 교체로 명맥을 유지하는 관행과 달리 원 편성의 완결성을 택한 결정으로 자주 인용.
북미 투어 리허설 뒤 지미 페이지의 자택에 머물던 중 잠든 채 9월 25일 오후 숨진 상태로 발견. 검시 결과 질식에 의한 사고사로 판정됐으며 32세로 사망. 밴드 사운드의 핵심이던 드러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예정된 북미 투어가 취소되고 활동이 중단됨.
스웨덴 폴라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8집을 스완 송 레코드로 발매. 존 폴 존스의 신서사이저·키보드 비중이 크게 늘고 라틴 리듬과 팝적 편곡이 도입되어 이전 앨범들과 뚜렷이 다른 질감을 형성. 여섯 종의 서로 다른 커버를 갈색 종이봉투에 넣어 유통한 패키지로도 화제를 모으며 미국·영국 차트 1위 기록.
아들을 잃은 뒤 약 2년, 영국 공연으로는 4년 만에 네브워스 하우스 야외 무대에 복귀. 8월 4일과 11일 두 차례 헤드라이너로 출연함. 결과적으로 해체 전 밴드가 영국에서 가진 마지막 공연으로 남음.
뉴올리언스로 이동하던 중 로버트 플랜트가 다섯 살 아들 카락이 위장 질환으로 숨졌다는 소식을 접함. 남은 미국 일정 열 차례 공연이 전면 취소되며 밴드는 2년 가까이 무대에 서지 않음. 직전 오클랜드 공연이 결과적으로 미국에서의 마지막 무대가 되며 활동 후반기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남음.
오클랜드 앨러미다 카운티 콜리시엄의 ‘데이 온 더 그린’ 공연 뒤 프로모터 빌 그레이엄 측 직원이 백스테이지에서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함. 이후 매니저 피터 그랜트, 드러머 존 본햄, 투어 매니저 리처드 콜, 경호원 존 빈던이 사건과 관련해 체포됨. 밴드는 다음 날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공연했으나 이후 미국에서 다시 공연하지 않음.
플랜트의 부상 회복 기간에 단기간 집중 작업으로 완성한 7집을 발매. 어쿠스틱·건반 편성을 덜어내고 기타 중심의 건조한 사운드를 택했으며 10분 길이의 〈Achilles Last Stand〉가 대표 트랙. 투어 없이 발표된 앨범으로 밴드 후반기의 불안정한 상황이 반영된 작품으로 평가.
그리스 로도스섬에서 휴가 중 타고 있던 차량이 도로를 이탈하는 사고로 플랜트와 가족이 다침. 플랜트는 발목과 팔꿈치 등에 중상을 입었고 아내 모린도 크게 다쳐 예정된 투어가 연기됨. 장기간 회복하는 동안 다음 앨범 《Presence》 작업이 진행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