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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중앙기념식이 열림.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독립유공자, 일본군 위안부·강제동원 피해자 등 각계 인사와 시민 약 1만 명이 참석함. 100년 전 만세의 함성을 기리며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긴 대규모 국가 기념행사.

삼일절

대한민국 정부가 1949년 10월 1일 법률 제53호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공포해 3·1절을 4대 국경일의 하나로 공식 지정함. 이로써 3·1절은 제헌절·광복절·개천절과 함께 국가가 기리는 국경일이자 공휴일이 됨. 광복 이후 대한민국이 3·1운동의 정신을 국가 차원에서 계승·기념하는 법적 토대가 마련됨.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3·1독립선언 1주년을 맞아 첫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함. 임시정부 주최 기념식과 교민단 주최 축하식, 시가행진·기념공연 등이 열렸고,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은 이날을 '국경일'로 부르며 경축함. 임시정부 시기 3·1절의 정식 명칭은 '독립선언일'이었으며, 이날이 해마다 기념되는 민족 명절로 자리 잡는 출발점이 됨.

삼일절

일본군 중위 아리타 도시오가 이끄는 군경이 경기도 화성 제암리 주민들을 교회에 모아 가둔 뒤 총격을 가하고 불을 질러 학살함. 이 사건으로 28명이 목숨을 잃고 인근 마을을 포함해 30여 채의 집이 불탐. 캐나다인 선교사 프랭크 스코필드가 현장을 사진과 기록으로 남겨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린, 3·1운동 탄압의 대표적 참상.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 시위가 평양·진남포·의주 등 북부 도시를 거쳐 전국 거의 모든 군으로 번지며 약 두 달간 이어짐. 학생·농민·노동자·상인 등 각계각층이 참여했고, 만주·연해주·미주 등 국외 한인 사회로도 시위가 확산됨. 신분과 지역을 넘어선 거족적 항쟁으로,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으로 기록됨.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 모여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한국의 독립을 선언함. 같은 시각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시민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섬. 비폭력 만세 시위로 시작된 이날의 선언이 전국으로 번지는 3·1운동의 출발점.

3·1 독립선언

천도교·기독교·불교 세 종교계가 연합해 추진한 민족대표 33인은 당초 탑골공원에서 독립을 선언하려 했으나, 유혈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장소를 인사동 음식점 태화관으로 옮김. 1919년 3월 1일 오후 이곳에 모인 대표들은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만세를 부르고 스스로 일제 경찰에 연락해 체포됨.

한편 같은 날 탑골공원에는 학생과 시민 수천 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에 나섬.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의 함성은 곧 평양·의주 등 전국으로, 나아가 국외 한인 사회로까지 들불처럼 번져 거족적 항쟁으로 발전함.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CD-11) 사전 공개판을 발표하며, 트랜스젠더 관련 진단을 정신·행동장애 범주에서 제외함. 기존 ICD-10의 ‘성전환증’과 ‘성정체성 장애’는 ‘성별 불일치’로 재정의되어 성 건강 관련 상태로 옮겨졌으며, 이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정신질환으로 보지 않겠다는 국제 보건 기준의 전환으로 평가됨. 다만 관련 진단을 ICD에서 완전히 삭제한 것은 아니며, 성별확정 의료와 보험·보건 서비스 접근성을 유지하기 위해 별도 건강 분류로 남겨둔 조치임.

세계보건총회가 공식 채택한 날짜는 2019년 5월 25일. ICD-11 공식 발효는 2022년 1월 1일.

이란에서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어 보수 강경파 성향의 에브라힘 라이시가 당선됨. 선거에 앞서 헌법수호위원회가 알리 라리자니 전 국회의장,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 등 주요 후보들을 대거 배제하면서 경쟁 구도가 제한되었고, 투표율은 약 48.8%로 당시 이란 대선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함. 이 선거는 하산 로하니 정부 이후 이란 권력 구도가 강경 보수 진영 중심으로 재편되는 계기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