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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영이 가나출판사의 실질적 경영자 측과 출판계약에서 정한 출판권을 제외하고 2차적 저작물 작성권과 캐릭터 상품화권 등을 포함한 저작재산권을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함. 계약에는 양수인이 제3자에게 저작권을 양도하거나 2차적 저작물을 제작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됨.

이 계약은 이후 《올림포스 가디언》 애니메이션과 극장판을 둘러싼 저작인격권·2차적 저작물 분쟁의 핵심 근거가 됨. 2007년 법원은 이 계약 등을 고려해 극장판이 홍은영의 동일성유지권과 성명표시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함.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저작권·인세 분쟁

홍은영과 가나출판사가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에 관한 출판계약을 체결함. 2007년 서울중앙지법 판결이 인정한 기초사실에 따르면 가나출판사는 이 계약에 따라 같은 해 11월부터 2003년 말까지 홍은영이 그림을 맡은 1~18권을 출간함.

이 계약은 이후 판매부수와 인세 정산 의무, 계약 해지의 효력을 둘러싼 민사분쟁의 출발점이 됨. 2005년 법원은 가나출판사의 인세 정산 의무 위반을 중대한 계약 위반으로 판단해 홍은영의 계약 해지 통보가 유효하다고 인정함.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저작권·인세 분쟁

홍콩 영춘체육회와 홍콩수인대학이 2025년 11월 8일 엽문의 홍콩 교습 75주년을 기념하는 국제교류회를 공동 개최함. 해외 영춘권 단체와 연구자들이 교습 역사와 전승 현황을 논의하고 시연·전시를 진행함. 1950년 시작된 엽문의 홍콩 공개 교습을 문파 확산의 기준점으로 되짚은 행사.

영춘권

2021년 6월 10일 국무원이 제5차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성 항목 목록을 공포하며 불산 영춘권을 확장 항목으로 포함함. 국가 단위 전문가 심사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한 소수의 전통 무술 항목 가운데 하나로, 불산의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은 이로써 15개로 늘어남. 지방 무술이 국가 차원의 보호·전승 체계에 편입된 사건.

2013년 불산에서 5천 명이 한자리에 모여 영춘권 투로를 동시에 시연함. 중국 비물질문화유산망은 이 행사를 기네스 세계기록 사례로 소개하지만 기네스 공식 공개 기록은 별도로 확인되지 않아 대규모 시연 사실만 확정함. 무형문화유산 홍보와 도시 마케팅이 결합된 전승 방식의 사례.

2012년 1월 불산 남해구 사산진 로촌 연성촌에 800제곱미터 규모의 엽문기념관이 문을 열고, 엽씨 종사와 생가, 광장 등 부대 시설을 함께 갖춤. 연간 6만 명이 찾는 방문지가 되어 매주 일요일 지역 협회 사범들의 시연이 이어짐. 엽준이 해마다 이곳에서 강습반을 열어 사오십 명씩 수강생을 받음.

영춘권

2012년부터 불산 남해구 사산진에서 세계 영춘권 대회가 여러 차례 열리며 첫해 415명이던 참가자가 2018년 1,934명으로 늘어남. 30여 개 국가·지역의 단체가 해마다 문화 뿌리찾기 여행과 무술 대회에 참가를 신청. 2020년에는 온라인 대회 형식으로 전환해 1천여 편의 참가 영상을 접수.

2011년 불산 영춘권이 광둥성 무형문화유산 대표성 항목 목록에 오르며 지방정부의 공식 보호 대상이 됨. 이를 발판으로 불산은 세계 영춘권 대회를 잇따라 개최하고 초·중학교 43곳의 방과후 과정에 권법 교습을 도입. 같은 해 불산 영춘권 총회가 세워져 무관과 전승자를 묶는 조직 정비도 진행.

견자단 주연·엽위신 연출의 전기 영화 《엽문》이 2008년 12월 19일 홍콩에서 개봉해 개봉 주 흥행 1위를 기록함. 중일전쟁기 불산을 배경으로 엽문의 삶을 극화했으며 제28회 홍콩 영화금상장에서 작품상과 무술감독상을 수상함. 홍콩 정부가 2009년 해외 문화행사 상영작으로 소개할 만큼 대표적인 홍콩 무술 영화로 자리 잡고 후속 연작으로 확장됨.

2002년 11월 9일 불산시박물관 조묘 안에서 엽문당(葉問堂) 개관식이 열려 국내외 동문과 내빈 2천여 명이 참석함. 엽준이 준비위원회 주석을 맡아 불산시 문화국·박물관과 함께 800여 제곱미터 규모의 전시관을 조성하고, 문파의 원류와 세계 각지 전개를 상설 전시로 정리. 발원지 불산이 전승의 상징 공간을 갖추게 된 계기.

영춘권

홍콩 영춘체육회가 1999년 11월 홍콩에서 제1회 세계 영춘 동인대회를 열고 유럽·미국·캐나다·호주와 중국 본토의 사범·문하생 800여 명을 모음. 참가자들이 무대에서 권법과 도법·곤법·장법을 시연하며 계열별로 갈라져 있던 전승을 한자리에서 교차 확인. 대회 다음 날에는 순덕·불산 교류단을 조직해 발원지 방문을 이어감.

영춘권

량정이 1973년 7월 24일 홍콩에서 자신의 이름을 붙인 무술협회를 세워 표준 교습 과정과 등급 제도를 갖춘 조직 운영을 시작함. 1975년 말 국제 명칭을 더하고 1983년 다시 개칭한 뒤 오늘날의 국제영춘권협회로 정착. 사범 개인의 도장 단위를 넘어 국제 조직 형태의 무술 단체가 등장한 사례.

영춘권

1969년 겨울 량정이 홍콩침회학원 시설에서 제1회 영춘권술 대회 겸 시연회를 열고 엽문과 여러 계열 지도자를 초청함. 량정의 대학 교습반 개설은 협회 공식 연혁상 1968년의 별도 사건이므로, 이 항목은 1969년 공개 대회에 한정함. 비공개 대련 중심이던 무술이 학교와 공개 행사의 틀로 옮겨간 사례.

엽문의 지시를 받은 일곱 제자가 1967년 8월 24일 홍콩 영춘체육회를 정식으로 세우며, 홍콩에 등록된 가장 이른 국술 단체 가운데 하나가 됨. 이듬해 구룡 수거도에 회지를 매입해 영구 수련장을 마련하고 교습 자격과 대회를 관리. 개별 사범들의 느슨한 연결이 문파 표준을 관리하는 총회 체계로 제도화된 사건.

영춘권

1967년 7월 9일 자신의 수첩에 절권도(截拳道, Jeet Kune Do)라는 명칭을 처음 기록함. 상대의 공격이나 의도를 가로막는다는 뜻과 함께 단순성·직접성·자유를 핵심 원리로 제시함. 고정된 체계의 창시일이라기보다 계속 발전하던 개인적 무술 표현에 이름을 부여한 시점.

영춘권

1964년 엽문이 제자들이 각자 무관을 열어 교습을 이어가는 상황에 만족을 표하며 상설 체육관 운영을 접고 예약제 개인 지도로 전환함. 통채가의 아파트를 거처로 삼는 한편 문하생들에게 문파 총회를 조직하도록 지시. 개인 사범 중심 구조가 단체 조직으로 넘어가는 분기점.

영춘권

홍콩 영춘체육회 연혁은 1954년 청년 황순량이 엽문의 무관을 찾아 대련을 거친 뒤 문하에 입문했다고 기록함. 이후 황순량은 여러 비무에 나서며 홍콩에서 영춘권의 실전성을 알린 대표 제자로 알려짐. 당시 문파가 도전과 비무를 통해 명성을 넓히던 홍콩 무술계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례.

영춘권

브루스 리 재단은 이소룡이 13세 무렵인 1954년 홍콩에서 엽문 계보의 영춘권 수련을 시작했다고 소개함. 근접전과 중심선 운용을 중시하는 영춘권은 훗날 자신의 무술 표현을 발전시키는 주요 기반이 됨. 다만 일부 자료는 시작 시점을 1953년 또는 1956년으로 기록해 세부 연도에는 이견이 존재함.

영춘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