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일본 히로시마에 우라늄 건배럴 방식의 원자폭탄 Little Boy를 투하함. 오펜하이머가 이끈 로스앨러모스는 사용된 핵무기의 설계·개발을 담당했지만 실제 투하의 군사적 명령권자는 아니었음. 히로시마시는 정확한 사망자 수를 확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하며 1945년 말까지 약 1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함. 피해자에는 일본인뿐 아니라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대만 출신자와 중국인, 외국인 포로 등도 포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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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트루먼 대통령과 영국 애틀리 총리, 소련 스탈린이 참가한 포츠담 회담이 1945년 8월 2일 종료됨. 연합국 지도자들은 독일의 비군사화·비나치화와 점령 관리, 배상 문제, 외무장관회의 창설 등 전후 질서에 관한 주요 합의 내용을 발표함. 동아시아에서는 회담 중 발표된 포츠담 선언이 일본에 항복을 요구해 한반도의 식민지 지배 종식 및 전후 처리와 연결되었음. 포츠담 선언일(7월 26일)과 회담 종료일(8월 2일)은 구분됨.
스즈키 총리의 선언 묵살 발언
스즈키 간타로 일본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포츠담 선언을 카이로 선언의 반복으로 낮게 평가하고, 묵살하며 전쟁을 계속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일. 미국이 감청한 일본 방송의 번역문에 남은 기록. ‘묵살’이라는 단어의 의도와 번역에는 논쟁이 있지만, 이를 단순한 번역 실수 하나가 원자폭탄 투하를 초래했다는 인과관계로 단정할 수는 없음.
미국·영국·중국이 일본의 항복 조건을 제시하면서 카이로 선언의 이행을 요구한 사건. 일본의 주권을 혼슈·홋카이도·규슈·시코쿠와 연합국이 정할 작은 섬들로 제한한다는 제8항의 명시. 점령과 비군사화, 전쟁범죄 처벌 및 평화적 경제활동의 원칙이 함께 제시되면서 이후 항복과 강화조약의 기준 마련.
처칠, 대일 공동선언 문안에 동의
처칠 영국 총리가 트루먼에게 서한을 보내 대일 선언의 현 문안에 영국 정부를 대표해 서명할 뜻을 밝히고 조속한 발표를 요청한 일. 경제활동을 다룬 제11항의 문구 수정을 제안한 기록. 이튿날 장제스의 전문 동의와 함께 미국·영국·중국 세 정부 명의의 발표로 이어진 협의.
『독립신문』 충칭판, 제7호 발행
『독립신문』 충칭판이 1945년 7월 20일 제7호 발행.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비정기적으로 간행된 중국어 판본의 마지막 확인 호수로, 임시정부의 대외 활동과 한국광복군 관련 소식, 국제 정세 및 항일전선 관련 기사를 수록.
포츠담 정상회담 개막
트루먼·처칠·스탈린이 독일 포츠담에서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는 정상회담을 시작한 일. 유럽의 국경과 독일 점령 문제가 주요 의제였지만, 회담 기간에 일본에 대한 항복 요구문도 마련된 배경. 미국·영국·소련의 회담 참가국 구성과 미국·영국·중국의 포츠담 선언 발표국 구성을 구별할 필요가 있는 회의.
오펜하이머가 이끈 로스앨러모스, 트리니티 핵실험 성공
오펜하이머가 이끄는 로스앨러모스 연구진이 뉴멕시코 사막에서 플루토늄 내폭형 핵장치 Gadget을 폭발시켜 세계 최초의 핵폭발 시험에 성공함. 실험은 1945년 7월 16일 새벽 실시되었으며 로스앨러모스가 개발한 내폭 시스템의 실제 작동 가능성을 입증함. 이후 같은 기본 방식이 나가사키에 투하된 Fat Man에 사용됨.
헨리 스팀슨 미국 전쟁장관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대일 경고와 전후 처리 구상을 담은 메모 및 선언 초안을 제출한 일. 일본 본토 침공의 큰 피해를 피할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항복과 점령·비군사화의 조건을 미리 알리자는 제안. 최종 승인된 문서가 아니라 포츠담 회담을 앞둔 검토안으로, 이후 선언의 형성 과정을 보여 주는 사료.
50개국 대표, 샌프란시스코에서 국제연합 헌장 서명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기구에 관한 연합국 회의가 폐막하며 50개국 대표가 국제연합 헌장에 서명. 헌장은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 국가 간 우호관계 발전, 국제협력과 인권 존중을 기구의 목적으로 규정.
총회·안전보장이사회·경제사회이사회·신탁통치이사회·국제사법재판소·사무국의 6개 주요 기관을 설치하고,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지위와 표결 절차를 명시. 헌장은 각국의 비준을 거쳐 1945년 10월 24일 발효.
오펜하이머·엔리코 페르미·아서 콤프턴·어니스트 로런스로 구성된 임시위원회 과학패널이 원자폭탄의 최초 사용 문제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함. 과학자들의 의견이 기술적 시범부터 직접 군사 사용까지 갈렸음을 밝히면서, 전쟁을 종결할 가능성이 있는 순수한 기술 시범을 제시하지 못했고 직접적인 군사 사용에 대한 수용 가능한 대안도 찾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힘.
대한민국의 천주교 수녀, 시인 이해인.
영국 군정이 폭스바겐베르크를 압류해 신탁 관리를 시작한 전후 재건의 출발점.
점령군용 차량 생산 필요와 이반 허스트 소령의 재건 작업을 바탕으로 공장 해체를 피하고 민간 자동차 기업으로 전환할 기반 확보. 원료 조달과 품질 개선, 판매·정비망 구축을 지원한 영국군 관리기의 시작.
류영수 출생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류영수.
메러디스 빅토리호 진수
캘리포니아 조선회사가 미국 해사위원회를 위해 건조한 빅토리급 화물선의 진수. 제2차 세계대전 말 대규모 해상 수송 수요에 대응한 선박으로, 5월 1일 기공 뒤 한 달 안에 진수한 신속한 건조. 노스캐롤라이나의 메러디스 대학에서 이름을 따고 태평양과 대서양의 정부·상업 화물 운송에 투입된 출발점.
길이 455피트·폭 62피트의 일반 화물선으로 등록된 선체. 병참 물자를 대양 너머로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선박이라는 점에서, 훗날 수많은 민간인을 태운 흥남 항해는 원래 설계 목적과 다른 긴급 운용. 메러디스 대학의 전시 모금과 지원 활동을 기리는 명명은 학교 공동체와 전시 조선 사업이 연결된 배경.
나치 독일의 SS 친위대 전국지도자 하인리히 히믈러. (1900년~)
남상국 (기업인) 출생
대한민국의 기업인 남상국. (~2004년)
소련의 과학자, 광물학자 알렉산드르 페르스만. (1883년~)
맹호림 출생
대한민국의 배우 맹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