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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1424년의 기록 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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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초대 국왕 태조 이성계가 태상왕으로 물러난 뒤 창덕궁 광연루 아래 별전에서 승하함. 향년 74세. 태종 8년 음력 5월 24일의 일로, 양력 환산일은 1408년 6월 18일임.

태조는 위화도 회군을 거쳐 조선을 건국하고, 국호 제정과 한양 천도 등을 추진해 새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 1398년 왕자의 난 뒤 왕위를 정종에게 넘긴 뒤에도 태상왕으로 지냈으며, 사후 건원릉에 안장됨.

조선 초기 흙다리였던 광통교가 홍수에 유실되자, 이전한 정릉의 옛터에 남은 석물을 이용하여 돌다리로 다시 조성한 사건. 신덕왕후의 왕릉에 쓰였던 조각 석재가 도성의 교통시설로 전용되어 왕실의 권력관계와 도시 건설이 하나의 유구에 겹쳐진 계기. 이후 왕의 행차와 사신의 왕래, 시전으로 오가는 통행을 감당하는 중심 교량으로 기능함.

태종이 도성의 개천을 준설하는 공사를 음력 2월 15일 마무리함. 앞서 개거도감을 설치하고 지방의 인력을 동원하여 흙과 모래를 걷어내고 물길과 다리를 정비한 사업으로, 홍수를 막고 한양의 배수체계를 갖추려는 목적이었음.

공사에는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었으며 실록에는 공사 중 사망한 64명의 집에 구휼하도록 명한 기록도 남아 있음. 도성 정비의 성과와 함께 국가의 치수사업을 떠받친 노동 부담을 보여 주는 사건임.

청계천

1415년 10월 25일 백년전쟁 중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가 이끄는 군대가 프랑스 아쟁쿠르 인근에서 프랑스군에 승리. 진흙탕 지형과 잉글랜드 장궁병의 운용 등이 전투 결과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영불 전쟁의 전개에 중요한 계기가 됨.

군사권을 쥔 상왕 태종이 왜구의 근거지 대마도 정벌을 명함. 이종무가 병선 227척과 병력 1만 7,285명을 이끌고 1419년 6월 19일 주원방포를 출발해 기해동정을 감행. 대마도의 왜구 근거지를 공격하고 이후 대일 통교 질서가 재편되는 계기가 된 작전.

세종 (조선)

조선 제2대 국왕 정종 이방과가 상왕으로 지내던 중 한성 인덕궁에서 승하함. 향년 63세. 태종에게 왕위를 선양한 뒤에는 상왕으로 예우받으며 지냈고, 사후 정종의 묘호가 올려짐.

정종은 제1차 왕자의 난 뒤 왕위에 올라 수도를 개경으로 옮기고, 사병 혁파와 군정 정비 등을 추진한 군주. 재위는 길지 않았지만, 이방원을 왕세자로 책립하고 왕위를 넘기면서 조선 초기 권력 질서가 태종 체제로 넘어가는 연결 고리가 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