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릴 메레츠코프 출생
소련의 군인 키릴 메레츠코프. (~1968년)
앤서니 이든 출생
영국의 정치인, 총리 앤서니 이든. (~1977년)
노르웨이 의회, 평화상 선정위원회 구성
노르웨이 의회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고를 위원회를 구성함. 같은 해 4월 의회가 맡기로 한 역할이 8월 위원회 설치로 구체화된 과정. 노벨의 유산을 관리할 재단의 법적·재정적 준비가 이어진 뒤 1901년 첫 평화상 시상으로 연결됨. 스웨덴 기관들이 다른 노벨상 부문을 담당하는 가운데 평화상만 노르웨이의 5인 위원회가 선정하는 제도적 토대 마련.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 의례를 거행함. 조선 국왕을 황제로 높이고 독립된 황제국의 지위를 대내외에 드러내려는 조치로, 이튿날 대한제국의 국호와 황제국 체제가 공식 선포됨. 고종의 거처였던 경운궁은 대한제국의 황궁이 되어 전각과 의례 공간을 확대·정비하게 됨. 즉위 의례의 장소인 환구단과 황궁인 경운궁은 서로 구분되는 공간.
국호 대한과 황제국 선포
고종이 국호를 대한으로 정하고 군주의 칭호를 황제로 바꾼 사실을 공식 선포한 사건. 전날 환구단에서 거행한 황제 즉위 의례에 이어 광무 연호와 황후·황태자 등 황실의 지위를 공포한 조치. 조선 왕조를 계승하면서 독립된 황제국의 위상을 대내외에 천명한 대한제국의 출범.
독립협회 토론회에서 노비를 사고파는 관행의 부당성을 논의하고 노비 해방에 뜻을 모은 사건. 약 500명이 지켜본 토론 뒤 참석자들이 자신에게 속한 노비 100여 명을 풀어 준 것으로 전해지는 민권 의식의 확산 사례. 1894년 갑오개혁에서 이루어진 법적 노비제 폐지 이후에도 남아 있던 예속 관행에 대한 실천적 대응.
프랑스의 소설가, 극작가 알퐁스 도데. (1840년~)
1897년 미국으로 유학해 1903년까지 버지니아주의 로어노크대학에서 수학하고, 이듬해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귀국. 미국 유학을 통해 쌓은 영어 능력과 서구 학문에 대한 이해는 훗날 국제 외교 무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데 활용됨.
당시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 지배에 맞서 독립 전쟁 중이었으며, 메인호(USS Maine)는 쿠바 내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파견.
경운궁 태극전의 중화전 개칭
고종이 경운궁의 태극전을 중화전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명함. 당시의 태극전은 오늘날의 즉조당에 해당하며, 황제국의 공식 정전 역할을 맡기 위해 명칭과 용도를 바꾼 조치. 1902년 별도의 중층 중화전을 새로 세운 일과 구분되는 초기 황궁 정비 과정.
밤 9시 40분, 메인호가 원인 불명의 폭발로 침몰. 354명의 승조원 중 260여 명이 사망. 불안정한 폭약으로 인한 폭발로 추정되기도 했으나, 미국은 이를 스페인의 테러라고 단정.
종로에서 첫 만민공동회 개최
독립협회 회원과 한성 시민이 종로에서 첫 만민공동회를 열고 러시아의 군사·재정 간섭에 반대한 사건. 상인과 학생 등 여러 계층이 참여하여 군사교관과 재정고문의 철수, 자주독립과 국권 수호를 요구한 대중 집회. 배재학당 학생 이승만도 군사권과 재정권을 러시아에 넘기는 데 반대하는 연설에 참여한 활동.
토론과 신문 논설로 전개되던 개혁 요구가 대규모 공개 정치집회로 확대되는 계기. 배재학당과 협성회에서 신학문과 토론을 경험한 이승만에게도 대중을 상대로 정치적 주장을 펼치는 무대. 같은 해 이어진 그의 독립협회·언론 활동 및 11월 독립협회 지도자 체포에 항의하는 운동과 연결되는 경험.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 출생
미국의 수학자이자 인류학자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 (~1944년)
대한민국의 농학자 우장춘. (~1959년)
대한민국의 음악가, 지휘자 홍난파. (~1941년)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은 쿠바 문제를 해결하고 스페인과 전쟁을 하기 위해 의회에 군사 개입 승인을 요청.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 (1826년~)
메인호 폭발 사건으로 미국 내 전쟁 여론이 높아진 상황에서 공동결의안이 상/하원에서 통과. 핵심 내용은 쿠바는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임을 선언하고, 스페인에 쿠바에서의 주권 포기와 군대 철수를 요구하고, 매킨리 대통령에게 스페인을 상대로한 무력 사용 권한을 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