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민공동회의 헌의 6조 채택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집회에 정부 대신들이 참여한 관민공동회에서 헌의 6조를 채택한 사건. 외세 의존 배격, 재정의 공개와 통일적 관리, 재판 절차의 보장 등을 요구한 개혁안. 황제 중심의 국가 운영과 함께 민권 보장 및 국민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국면.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집회에 정부 대신들이 참여한 관민공동회에서 헌의 6조를 채택한 사건. 외세 의존 배격, 재정의 공개와 통일적 관리, 재판 절차의 보장 등을 요구한 개혁안. 황제 중심의 국가 운영과 함께 민권 보장 및 국민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국면.
1898 파리 조약 (The Treaty of Paris of 1898). 1898년 파리 조약은 미국-스페인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하기 위해 체결된 강화 조약. 스페인은 쿠바에 대한 모든 주권을 포기했고, 푸에르토리코와 괌을 미국에 무상으로 할양함. 미국은 스페인에 2천만 달러를 지불하고 필리핀의 소유권을 넘겨 받음.
이 일로 미국이 본격적인 해외 식민지 보유국이 되며 미국 제국주의 시작을 알렸고, 스페인 제국은 마지막 주요 식민지를 잃으며 스페인 지국의 종말을 맞이함. 또한, 미국-필리핀 전쟁으로 이어짐.
정부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활동을 불법화하고 해산을 명한 사건. 12월 23일 군대와 경찰을 동원한 집회 진압 및 24일 계엄에 이어 이루어진 조치. 시민의 정치 참여와 의회적 개혁 요구가 억압되고 황제 중심의 통치 체제가 강화되는 분기점.
안창호가 독립협회에 참여하고 평양에서 관서지부 조직을 주도함. 평양 쾌재정에서 열린 집회에서 정부와 관리의 무능을 비판하고 민중의 각성과 근대화를 촉구하는 연설을 하며 대중적 명성을 얻음.
관립일어학교를 졸업하고 대한제국 정부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자혜의원의학교에서 서양의학 수학을 시작함.
구엘의 섬유공장 노동자 거주지에 세울 교회를 계획함. 매달린 모형을 활용한 구조 실험과 경사진 기둥 등은 이후 가우디 건축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례가 됨.
이승만이 박영효 계열의 고종 폐위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됨. 이후 1904년 8월까지 한성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했음.
1899년 1월 9일, 이승만이 박영효 계열의 고종 폐위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됨.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개혁운동이 탄압받던 시기의 일이었음. 같은 달 탈옥을 시도했으나 다시 붙잡혔고, 이후 종신형을 선고받음.
수감 기간에 그는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독서와 번역, 집필을 계속했음. 옥중에서 학교와 도서실을 운영했으며, 《제국신문》에 논설을 보냄. 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에는 국민 계몽과 국가의 독립을 논한 《독립정신》을 집필했음. 이 책은 출옥 뒤인 191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 출판됨. 이승만은 1904년 8월 9일 석방되어 약 5년 7개월의 수감 생활을 마쳤음.
칙령 제7호로 의학교 관제를 반포하여 국가가 운영하는 의학교의 조직과 교육 체계를 마련한 사건. 근대 의학 교육과 의료 인력 양성을 국가 제도 안에서 추진하기 위한 조치. 광무개혁기에 이루어진 전문 인력 양성 정책의 사례.
미국의 재즈음악가 듀크 엘링턴. (~1989년)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1992년)
한성전기회사가 운영하는 전차가 한성에서 개통한 사건. 동대문 차고의 개통식을 거쳐 도시의 주요 구간을 잇는 전기 교통수단이 등장한 변화. 황실의 도시 정비 구상과 외국 기술·자본의 도입이 결합한 근대 교통 기반시설의 확충.
빅토리아 여왕이 애스턴 웨브의 증축안에 따른 정초식에 참석한 시기에 현재 명칭이 채택됨. 명칭에는 여왕과 함께 박물관 설립을 후원했던 앨버트 공의 역할을 기린다는 뜻이 담김.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 (1825년~)
프랑스의 작곡가 에르네스트 쇼송. (1855년~)
일본의 작가,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1972년)
황제 직속 군사 통수기구인 원수부의 규칙을 반포한 사건. 황제의 군 통수권을 강화하고 군령 체계를 정비하여 중앙군과 지방군의 확충을 추진한 조치. 국방력 강화와 황제권 집중이 함께 나타난 광무개혁기의 군제 개편.
대한제국의 국가 체제와 황제의 권한을 규정한 9개 조항의 대한국국제를 반포한 사건. 대한제국을 자주독립국이자 세습적 전제군주국으로 규정하고 군사·입법·행정·인사·외교 권한을 황제에게 집중시킨 국가 기본법. 국민의 권리나 의회의 권한을 규정하기보다 황제의 통치대권을 명문화한 체제 정비.
대한제국과 청이 15개 조항의 한청통상조약을 체결한 사건. 대한제국의 박제순과 청의 쉬서우펑이 조인하여 양국의 외교·통상 관계를 정비한 계기. 조선과 청의 종래 책봉·조공 관계를 벗어나 상호 대등한 조약 관계를 제도화한 외교적 성과.
경인선의 노량진·제물포 구간이 개통하여 한국에서 철도 영업을 시작한 사건. 증기기관차를 이용하는 근대 육상 교통의 출현으로 한성과 인천 사이 이동 방식이 변화한 계기. 미국인에게 허가했던 부설권이 일본 측으로 넘어가 건설되어 교통 근대화와 외국의 이권 확대가 함께 진행된 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