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화가) 출생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박영선. (~1994년)
대한민국의 서양화가 박영선. (~1994년)
운동 중단 뒤 남은 의연금의 처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1909년 조직된 국채보상금처리회가 1910년 4월 18일 국민대총회를 개최함. 참가자들은 토지를 매입하고 그 수익을 교육비로 사용하기로 결의함. 국채 상환이라는 당초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국민이 모은 자금을 교육구국사업으로 전환하려 한 시도였으나, 같은 해 병합으로 실행되지 못함.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 (1835년~)
네덜란드의 동화 작가 레오 리오니. (~1999년)
영국의 국왕 에드워드 7세. (1841년~)
영국의 화학자 도러시 호지킨. (~1994년)
독일의 의사, 미생물학자 로베르트 코흐. (1843년~)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이 국권을 잃자, 일제가 태극기의 공식 사용을 금지하고 일장기를 강요함. 공적 영역에서 사라진 태극기는 도리어 빼앗긴 국권과 민족을 상징하는 표상이 되어, 이후 독립운동의 깃발로 되살아나는 계기가 됨.
통감부가 1909년 발행인 어니스트 베델의 사망 뒤 대한매일신보 매수를 추진하고, 1910년 5월 신문을 장악함. 한일병합조약 공포 다음 날인 1910년 8월 30일 대한매일신보에서 ‘대한’을 떼고 제호를 매일신보로 변경. 한말 항일 민족지가 조선총독부의 한국어 기관지로 전환된 상징적 사건.
1910년 8월부터 1926년 9월까지 시종원 전의, 이왕직 전의 및 촉탁의로 황실 진료에 참여함. 고종과 순종이 위독한 시기에도 의료진으로 진료에 관여함.
1910년 12월 15일자 《매일신보》는 교육기본금관리회가 관리하던 국채보상금 9만여 원이 12월 12일 총감부에 납입되고, 국채보상금총합소 관계자들이 관리하던 4만 2,000원이 12월 14일부터 경무총감부 보관으로 이전되었다고 보도함. 교육사업에 사용하려던 계획이 무산되고, 국민이 모은 의연금이 일제 통치기구의 관리 아래 들어간 국채보상운동의 사실상 마지막 단계.
안창호가 국권피탈 전후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의 새로운 거점을 모색함. 산둥성 칭다오에서 독립운동 지도자들과 회의를 열고 북만주에 집단 거주지와 군사교육 기반을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자금 부족과 노선 차이로 실현하지 못함.
인도의 최장수인, 영국의 마라톤 선수 파우자 싱. (~2025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 주덕해. (~1972년)
프랑스의 정치인, 언론인 모리스 슈만. (~1998년)
대한민국의 의병장 안규홍. (1879년~)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로버트 존슨. (~1938년)
대한민국의 목사 방지일. (~2014년)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 윤석중. (~2003년)
미국의 장로교목회자, 선교운동 지도자 아서 태펀 피어슨. (1837년~)